사람이라면 누구나 욕망은 가집니다. 그러나 그 욕망을 모두 실현시키며 사는 사람은 없죠. 현실적으로, 사회적으로 욕망의 해소는 분명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욕망을 간직하고, 은밀하게 그것의 실현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선재(김혜수)도 그런 인물이에요. 그녀의 구두에 대한 관심은 여성으로서의 관심일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감춰둔 모든 내적 욕망에 대한 관심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그 욕망은 실현시키지 못한 채 박제된(진열된) 욕망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그 욕망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 해소될 때 그녀는 분노하게 됩니다.
하지만 인간의 분노는 그 파괴적인 에너지로 인해 감정 주체를 파괴해버리기도 하죠. 스스로를 불태워 돌진하는 에너지, 그것이 분노의 장점이자 함정이거든요. 결국 분노는 그 주체를 인간이 지닌 추악한 내면과 직면시키고, 그 순간 인간은 파멸합니다.
영화 <분홍신>은 인간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과거나 현재나 변함없이 인간과 욕망은 함께 해 왔기에 영화는 그 점에서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하나로 연결시킵니다. 어느 순간 누군가 집착하는 최고의 욕망을 분홍 구두로 형상화시켜 게이꼬와 선재에게 던져주는 겁니다. 그런 까닭에 아무도 분홍 구두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어른도, 아이도, 친구도, 엄마도 상관없어요. 그들의 위치, 직함이 무엇이건 간에 삶을 포기하거나 해탈하지 않는 한 욕망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분홍신>은 자신이 경계했던 대상으로부터 스스로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선재가 분열된 자아와 추악한 내면과 마주하게 되는 영화의 마지막은 이 영화 최고의 하이라이트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 밝혀지는 비밀 덕택에 이제껏 끌어왔던 영화의 주된 분위기가 묘하게 희석되고 맙니다. 원혼의 존재를 긍정도, 부정도 못하게 되고 애매한 싸이코 드라마의 흔적 속에 의미만 넘쳐나는 영화로 남게 되거든요. 스스로도 말해오지 않았던가요?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부른다고. 남의 것을 탐하는 것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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