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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들의 귀환? 글쎄.... 씬 시티
vinappa 2005-07-18 오전 1:40:32 1638   [2]
    <신 시티>의 비주얼에 관해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완벽을 위해 아무 것도 짓지 않고 모든 것을 그려낸 비주얼에 무슨 허점이 있겠는가. <신 시티>의 도시 베이신 시티는 한마디로 허구의 엑기스다. 순도 100퍼센트의 가상의 도시. 무(無)의 장막 위에 그려낸 전지전능의 도시. 공허한 마천루에서부터 괴기스러운 교회를 거쳐 절대권력자의 황폐한 농장에 이르기까지 원하는 대로 뜻하는 대로 모든 것을 이루어낸 도시. 느와르적인 너무나 느와르적인 해가 뜨지 않는 도시. 흑과 백,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콘트라스트의 대척, 그 첨예한 대립 위로 너무도 선명하게 내리 찍히는 원색의 액센트들. 피사체를 압도하는 여백의 위력과 입체를 추진하는 평면의 괴력. 그 무한의 우주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초현실적 캐릭터들. 아무리 애둘러 말하려 해도 <신 시티>의 공간과 인물은 기묘하고 소름끼치는 그로테스크의 정점이다. 더불어 영화도 만화도 아닌듯하지만 그 둘을 동시에 끌어안는 비주얼의 신천지를 <신 시티>는 당당하게 제시하고 있다. 감독이 배짱을 부릴만도 했다. 오죽했으면 만화를 영화로 각색하는 것이 아니라 만화를 스크린에 그대로 옮겨 놓겠다고 했을까. 감독과 원작자의 요구가 이처럼 완벽하게 수용된 비주얼은 이 영화 이전에도 없었고 이 영화 이후에도 나오기 힘들 것이다. 그러니, 이 영화의 비주얼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말을 삼가자.

    로드리게즈의 반골 기질과 프랭크 밀러의 펄프 총론, 거기에 쿠엔틴 타란티노의 기이한 농담이 가세해 탄생시킨 영화 <신 시티>는 미국 사회 전반에 대한 단도직입적인 반항과 비아냥의 파노라마다. 종교도, 정치도, 법도 이 영화가 난도질하는 사회악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자체가 악의 근원으로 묘사된다. 이 영화에서 미국은 다양한 인종과 계급과 문화가 공존하는 이상적 국가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지만 - 하나의 거대한 게토에 불과하다. 인체 해부도만큼이나 복잡할 것 같은 나라가 미국이지만 알고 보면 미국은 단세포 국가다. <신 시티>의 도시 베이신 시티는 그 자체로 미국의 메타포이고 뉴욕의 캐리커쳐다. 단지 거주자가 100명도 채 안될뿐이다. 위선과 명분, 범죄와 처벌만이 존재하는 나라. 슈퍼맨이 또는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이 그 사회의 영웅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이 단순졸렬한 국가정체성 덕분이다. 영웅이 없으면 한시도 지탱이 되지 않는 나라, 영웅을 내세워 눈가림을 하지 않으면 추악한 몰골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나라 미국. <신 시티>는 이에 덧붙여 말하기를 '폐물이건, 쓰레기건 마음만 먹으면 영웅이 될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라고 공언한다.

    이처럼 미국의 위상이 곤두박질 친 만큼 <신 시티>의 남성들도 졸렬하기 그지 없다. 이 영화에서 남성은 악의 화신 아니면 제멋에 설쳐대는 얼치기 마초이거나 위험을 끌어들이는 화근일 뿐이다. 하티건, 마브, 드와이트, 그들 모두 과분한 진지함으로 목소리를 내리 깔지만 목소리의 무게에 비해 존재감은 한정도 없이 가볍다. 이 영화에서 남성은 영웅이나 해결사가 아니라 꿩대신 닭이거나 혹은 반신반의의 대상이다. 그래서 그 어떤 남성도 완벽한 정의를 실현하지 못한다. 이 도시 베이신 시티에서 정의는 그나마 책임감있는 은퇴 직전의 늙은 경찰도 아니고, 흉악한 몰골로 주먹을 앞세우는 마초도 아니고, 올드 타운의 매춘부 자경단에 협조하는 느끼한 고독남도 아니다. 이 도시의 정의는 여성이고,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훨씬 탁월하게 그 정의를 실천하고 있다. 그녀들이 그물 스타킹 아래 탱탱한 엉덩이를 절반이나 내놓고 있다하더라도 음흉한 시선으로 훑어보지 말지어다. 미호의 일본도는 철판도 뚫는 신검이니.

    몇 번을 - 한 번은 극장에서 너댓번은 부적절한 경로로 - 다시 봐도 <신 시티>는 매력적이다. 압도적으로 황홀한 비주얼보다 시궁창 냄새 물씬 풍기는 스토리가 더 매력적이다. 스토리보다 몇배는 더 황홀한 캐릭터의 향연. 부패한 도시에서 한국산 라면마냥 저 혼자 부패하지 않은 늙은 경찰보다, 돈 주고도 섹스를 할 수 없는 털빠진 고릴라같은 지진아 마초보다, 제법 지능적인척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얼빵한 올드타운의 느끼남보다, 다리가 잘리고 남은 몸땡이가 개밥이 되어도 야릇한 미소를 잃지 않는 케빈이 더 매력적이고, 남성의 보호를 거추장스러워 하는 게일의 무리들이 더 매력적이다. 하티건과 마브와 드와이트가 그 많은 대사들을 독백으로 남발하는 동안 한마디 말도 없이 눈빛과 칼로 끝장을 보는 미호는 또 얼마나 매력적인가. 색체의 왜곡없이 찍어졌더라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던 장면들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보게 만드는 잔혹한 변조의 위력. 미키 루크는 <신 시티>와 로드리게즈에 대해 평생 보은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만일 그를 마브로 탈바꿈시키지 않았더라면 어느 영화에서 그가 이 만큼 활개를 칠 수 있었겠는가. 배우를 재창조한 영화.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매력적이다.

    매체는 이 영화에 '영화의 미래'라는 영광스런 호칭을 수여했다. 그것은 아마도 시스템의 독재에 휩쓸리지 않고 연출의 독립성을 쟁취한 로드리게즈의 결단에 대한 예우 차원의 발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예견으로 인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영화는 과학의 발전이 미진했던 시대에 문화의 주류를 독식했던 모든 문화 양식들 - 예를 들자면 문학, 음악, 회화, 연극 기타 등등 - 을 굴복시키고 나아가 그들을 자기 연방의 일부로 복속시킨 과학시대의 문화양식의 제국이다. 그런데, 그 위대한 제국의 미래를 만화도 아니고 영화도 아닌 이 한편으로 결론짓는다는 건 성급해도 너무 성급한 판단이다. 테크날러지의 위력이 아무리 막강하다한들 영화 그 자체의 아이덴티티를 정복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영화는 영화의 미래가 아니라 영화 제작의 새로운 방식과 그 방식으로 완성된 하나의 스타일을 제시할 뿐이다. 굳이 이 영화를 '영화의 미래'와 연관짓는다면 이 영화가 제시한 미증유의 제작방식이 유일하다. 영화는 - 그 아닌 무엇이든 - 언제나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발 호들갑은 삼가 주시라.



2005. 07. 17. 山ZIGI VINAP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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