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두 가지 요소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미스터리 스릴러이고, 다른 하나는 풍자에요. 미스터리 스릴러는 살인 사건의 용의자를 찾아내는 상황에서 발생하고, 그것이 영화의 핵심 줄거리이므로 이 영화의 뼈대라 하겠습니다. 그 뼈대에 풍자라는 살이 붙습니다. 사건 과정을 방송사에서 생중계하고 시청률을 위해 한바탕 가식적인 쇼를 벌인다는 점에서 그것은 현 대중매체의 횡포에 대한 풍자가 됩니다. 그러나 맘 놓고, 넋 놓고 그 풍자의 대상을 비웃을 일은 아니에요. 그랬다간 그 조소가 고스란히 그 주인에게로 되돌아올 테니까요.
영화에서 사건을 생중계하는 방송사는 시청률을 걱정합니다. 시청률은 다시 말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시선이자 관심을 의미하죠. 그런데 그 시선에 문제가 있습니다. 브라운관 건너편, 또는 모니터 너머에 자리 잡은 시선은 그 집중 대상을 철저하게 제3자화해서 남의 일로 치부해버리거든요. 그런 이유로 '나'와 '너'가 배제된 관심은 무서우리만치 즉흥적이고 무책임합니다. 때론 분노하고 흥분하고 안타까워하지만 아무런 책임의식을 지니지 않죠(더 심하게는 자신을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그런 관심이 요구하는 것은 사건 또는 현상의 봉합, 딱 하나 뿐입니다. 진실 여부를 떠나서,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제껏 쏟아 부은 관심을 마무리해 줄 무엇인가만 있으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영화는 쇼를 통해서 사건을 마무리 짓습니다. 무책임한 시청자들에게 어울리는, 자극적이고 어딘가 모르게 가벼운 이야깃거리로 그들의 관심을 충족시켜 주면서요. 시청자들은 방송이 결말지어준 대로 인물들의 이미지를 간직할 테고, 그마저도 길지 않은 시간 내에 망각 속으로 내던지겠죠. 하지만 진실은 다른 데 있습니다(진실을 밝히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직접 보시길). 표면화된 현상 이면에 다른 현상들이 숨겨져 있고, 결국엔 그 현상들이 불빛이 되어 어두운 진실을 드러냅니다. 물론 그 진실에 관심 있는 자는 당사자들과 사건 담당자들뿐일 테지만요.
<박수칠 때 떠나라>는 관객들에게 모든 진실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지만 생각할수록 뒷맛이 개운치가 않습니다. 그것은 영화 속에 알게 모르게 스멀거리며 존재하는 시선이 곧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선 시청률로 대변된 그것은 인터넷에선 조회수란 말로 표현 가능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조차 많은 사람들이 그 조회수를 보태가며 무언가를 보고 있습니다. 상당수가 즉흥적 관심을 사회에 대한 우려로 착각하면서요. 대중매체의 횡포는 그런 착각을 양분 삼아 커 가기에 이 영화가 내포한 대중매체에 대한 풍자는 곧 우리 모두에 대한 풍자입니다.
질문 하나. 영화를 보면서 살해당한 정유정이란 인물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나요?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피해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관심을 가져본 적은요? 아마도 둘 다 없을 겁니다. 영화는 그렇다치더라도 현실에서마저 사람들은 '왜?'와 '누가?'라는 질문밖에 관심이 없거든요. 영화 속 정유정은 어쩌면 정 많고, 사심없이 사랑했고, 아주 깨끗한 인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그렇게 보지 않았고, 세상은 아예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새벽에 올렸던 글이 사라져버렸군요. 다시 올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