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그 강박증때문에
가장 화려한 시절에, 가장 주목받게 되는 때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떼야하는 암묵적 시선..
영화관 불이 켜지고 퍼뜩 드는 생각은
말..도 아니고 느낌..도 아닌
생야채즙을 갈아마신 듯한 그 텁텁한 맛..이었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소위 쿨한 문장을 닮은 청량감이라기 보다는
오랜기간 묵혀둔 청국장을 떠먹고난 후의 입 속처럼
양치질에다가 자이리톨까지 씹어줘야하는 재래식의 뭉근함.
아는 여자에서의 '안다고 알았던 그, 그녀'를
알고봤더니 '몰랐던' 그들에 이어
쿨한줄 알았더니 재래식의 뭉근함을 지닌 '역설적 문장'은
전반적인 영화의 흐름을 관통한다.
이 영화는 오프닝부터 매우 '쇼'스럽다.
강렬한 음악과 더불어 현란한 영상이 가미된
TV 쇼프로그램의 타이틀처럼 시작되어
극장안 관객들을 처음부터 TV시청자로 담궈 버린다.
그리고
가장 '감동스럽고 손에 땀을 쥐게하는' 결말만을 얻기를
드라마의 소비자처럼 '사건'위의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누가 정유정을 죽였는가? 라는 시사 프로그램처럼
'누가'라는 가해자만 있을뿐 '정유정'이란 피해자는 이미 없다.
볼거리에 치중하고 최대한 극적인 결과가 도출되길 바랄뿐..
외려 그 용의자가 '정말 가해자'이길 바라지 않는
쉬운 게임이 되지 않기를 은연중에 바라고
심장터질듯한 스포츠 경기처럼 역전에 역전을 기대한다.
어찌된 일인지 기대한 데로 일은 점점 꼬이고
풀릴 것만 같았던 그 사건은 다시 원위치 되어버린다.
그 사이에 긴박감 넘치던 사건은 '늘어지는 대본'이 되어버리고
마치 시청률을 위해 '베드신'이라는 과감수를 두는 듯
'굿판'이라는 볼거리를 끼워넣고야 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육감수사, 과학적 탐문수사를 거쳐도
더이상 진전되지 않았던 사건의 실마리가
무당의 굿판한번에 해결되어 버리니
그것도 영화의 클라이막스처럼 인물들의 갈등이 터지면서
도저히 참을 수 없던 복수의 칼날처럼 차차 정리되니
그 실제상황 이야기에 사건수사자들과 시청자들은
충격적 실화와 조각난 퍼즐이 마지막을 꿰 맞춘듯
예상했던 개운함에 안도했을 것이다.
그리고 모두에게 박수받은 그 화려한 수사는
영화속 시청자가 아닌 극장안 관객들에게는
박수치고 있는 그 손을 허무하게 만들어 버린다.
화려함과 긴박함을 주제로 한 쇼에서
차마 밝히지 못한 진실..
카메라로는 찍을 수 없던 그것은
사건의 피해자였음에도 내내 관심받지 못하고 동정받지 못했던
정유정. 그녀의 뒷모습같았다고 할까..
계속 따라가 어깨를 짚지 않으면
뒤돌아봐주지 않을 그녀의 얼굴처럼..
'더이상 흥미없다. 볼거리가 안된다. 장사 끝이다'라는
냉정한 쇼 비즈니스 사회에서
감추어진 진실을 파헤지는 건
외려 그 진실을 덮어두느니만 못한 것이라는
그저 망자의 몸에 여러번 칼날을 휘두른 것뿐이라는
고마운 우리네들의 망각 때문일까..
여러번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영화는..
볼때 무릎을 치고 깍깍대고 웃고 보다가
뒤늦게야 한 사람의 죽음앞에서
내가 이 뭐하던 짓인가 하는 섬뜩함에 새삼 놀랐었다.
사건은 종료되었지만 그 박수의 의미가 무의미했던
박진감있는 볼거리에 치중해 진지해질려치면
되려 채널을 돌려버리는 냉정한 '승부사'에 휘몰리고 말았던
진실이라는 난제..
쇼라는 프로그램처럼 극마저도 쇼처럼 여러 장르를 섞이게 만들어
영화 자체를 비틀어버리는 장진의 재주가 너무도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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