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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시절에 꾼 달콤한 백일몽 웰컴 투 동막골
vinappa 2005-09-11 오후 10:12:55 1536   [5]

    그리 호의적으로 평하지 않은 영화의 대사를 인용하자니 뒤가 좀 켕기는게 사실이지만 염치불문하고 <달콤한 인생>의 대사 한 단락을 인용할까 한다. 아니, 대사가 아니라 선우의 나레이션을 인용할까 한다.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것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즈막히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장 진 원작의 연극을 영화로 옮긴 <웰컴 투 동막골>은 슬프도록 달콤한 백일몽같은 영화다. 꿈이 아니고서야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모두가 거스르려하는 순리를 머리보다 마음으로 따르고 사는 공간과 공동체라니. 어디에도 있을 것 같지 않은 아니, 결단코 존재할 수 없는 동막골은 과학의 시대, 곧 파괴와 카니발리즘의 시대에 반동하는 사람들의 옹골찬 유토피아다. 초자연적인 녹음으로 뒤덮인, 완전하게 폐쇄되고 무결하게 비과학적인 공간. 총을 작대기라 부르고, 수류탄 안전핀을 가락지라 부르고, 어떤 목적을 가진 방문자인지도 모르면서 방문에 대한 답례로 인사부터 건네는 천진하고 탈관념적인 인물들이 천수를 누리며 사는 공간. 어쩌면 이렇게도 공간과 인물들이 닮아 있나 싶을 정도로 동막골 자체는 너무나 완벽하다. 너무 완벽하다보니 오히려 그것이 낯설고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영화가 개봉한지 어느덧 1개월이 지났고, 그간 전문인과 비전문인을 막론하고 목청높혀 갑론을박을 펼쳤을테니 그 팽팽한 대립으로부터 살짝 비껴나 꿈같은 얘기나 늘어놓도록 하자. 속 편하게. 미지의 세계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입구부터 찾아야 한다. 동막골을 방문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의 수고를 겪어야 한다. 동막골의 입구는 오직 하나다. 가깝고 험한 길을 기어 오르든지 멀고도 평탄한 길을 돌아서 오든지 동막골에 이르기 위해서는 호박등 켜진 좁은 길을 지나야만 한다. 이 좁은 길이 이승과 저승을 잇는 길인지 아니면 현실과 초현실을 잇는 길인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냥 이유막론하고 꼭 한번 지나가보고 싶다는 충동만이 일뿐이었다. 그 좁은 길을 지나 펼쳐지는 동막골의 전경은 교과서적으로 말해 몽유도원이요, 감정적으로 말해 눈이 뒤집혀질만한 별천지다. 감독 박 광현이 장자의 호접몽을 염두에 두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사시사철 나비가 날고, 그 나비가 수호하는 세상이라면 이미 인간의 세계와는 동떨어진 곳임이 분명하다.

    무협지에 단골로 등장하는 선풍도골의 백염노인은 없지만 그들의 삶 자체가 도인의 경지다. 감자와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는 것으로 보아 육식을 하지 않는듯 하고, 폭력성이라고는 애초에 가져본 적이 없는 이들이야 말로 도인이 아니면 무엇이겠나. 수시로 침범하는 멧돼지들을 퇴치하기 위해 내놓는 의견이 기껏 눈탱이 세대 갈겨서 돌려 보내자는 것이 이들이 가진 최고의 폭력성이다. 그러니 죽고 죽이는 살겁의 현실에 정신을 잡아먹힌 외부로부터의 방문자 모두가 대책없이 무장해제당할 수 밖에. 꿈같은 얘기지만 동막골은 갈등을 해소시키는 중화작용의 공간이자, 이념의 대립을 와해시키는 완충지대이고, 지배 질서의 완전한 외곽이다. 누구는 동막골을 공산주의에 기반한 이론적으로만 완벽한 대안의 공간이라고 말하지만 글쎄, 그냥 꿈에나 그려봄직한 초월의 공간으로 부르는 것이 났지 현실적인 대안으로 간주함이 온당한 일일까?

    1950년의 가을무렵 이 곳 동막골에 세 부류의 방문자가 찾아 든다. 수천의 비명을 가위눌림으로 짊어진 국군 소위 표현철과 국군 탈영병 문상상, 내색이야 않지만 얼굴의 상처만큼 깊은 번민을 가슴에 묻고 있을법한 인민군 상위 리 수화와 두명의 인민군(족히 아버지와 아들 만큼의 나이 차이가 나는 장 영희와 서택기), 그리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연합군 스미스(스미슨지 스미순지 여하튼 몸떼이 찌딴한 이 친구에게 특별한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대재앙의 씨앗이라는 호칭외에는 특별히 챙겨줄 것이 없으므로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기막힌 우연처럼 같은 날에 각기 다른 경로로 동막골에 도착한 이들은 단절된 세계가 선사하는 거대한 환상을 경험한다. 내부에서 자생한 것이 아닌 외부로부터 유입된 주의에 길들여진 이들에게 동막골은 이해도 설명도 불가능한 환상 그 자체다. 이념이나 주의 따위의 관념적 가치가 존재하지 않고, 공존과 공생의 미덕과 그들만의 상식이 지배하는 곳이 공간으로서의 동막골과 공동체로서의 동막골이기 때문이다.

    동막골이 폭력과 폭력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도 이념이나 주의같은 첨예한 대립의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념이라는 것이 따지고 보면 재화의 소유 개념과 지배 질서의 구조적 차별성에 지나지 않지만 열전과 냉전의 시대를 통털어 이념만큼 중시된 가치는 없었다. 정치적 이해득실과 이념 분쟁의 마지노선 선점을 위해 발발한 그때 그 전쟁의 상황에서 민족과 혈통은 참고사항이 될 수 없었다. 오로지 유일한 가치, 이념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 공간과 공동체 내에서는 이념의 대립이라는 것이 통용되지 않는다. 민족과 혈통도 별차반 의미가 없다. 오직 중요한 것은 인간애와 예의다. 인간애와 예의를 뒷받침하는 절대적인 가치는 상식이다. 현실적으로 통용되는 상식이라는 것이 정치와 밀접하게 관련하고 집단의 성향이 강하게 작용하는 관념적 가치라면 동막골의 상식은 원론으로서의 상식이다. 이는 곧 외부로의 통로가 열려있는 - 실제로 내왕한 이도 있는 - 동막골을 완전하게 폐쇄된 공간이라 전제한 이유이고 더불어 지배질서의 외곽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뛰어난 원작을 각색한 영화라는 특혜를 감안하더라도 <웰컴 투 동막골>은 잘빠진 영화다. 더군다나 젊은 감독의 장편 입봉작으로 보기에는 그 뚝심과 재능이 예사롭지 않다. 흠결로 지적할만한 부분들, 예를 들자면 단순하게 반복되는 상황의 아이러니와 뜬금없는 인물들의 간섭이 감정의 결을 거스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허약한 드라마라는 앙상한 가지에 부조화하게 치장된 색깔만 뚜렷한 장식품으로 소구되지 않고 드라마적으로 실팍한 줄기를 이룬다는 점에서 그 흠결들도 끌어 안고 싶다. 김 소영 교수가 지적한 바, '순박한 영화에서 발견되는 순박한 정치적 순종'이라는 끔찍한 오류가 발견될지언정 이 영화에 대한 지지의사를 꺾고 싶지 않다. 이 영화에는 전쟁과 낭만의 부적절한 근친관계 대신 전쟁이라는 참혹한 현실과 그것을 거스르는 꿈만이 있거나 혹은 있는척 한다. 그 애꿎은 몸부림을 매정하게 외면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인지에 따라 희극과 비극이 결정지어진다면 애석하게도 이 영화는 비극의 범주에 넣어야 하고, 그 비극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누구도 원하지 않았는데 전쟁은 벌어졌고, 그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 전쟁을 해석하는 시각이 짐승의 시대였던 전후 40여년간의 것과는 확연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전쟁의 책임을 오로지 적(?)에게만 묻고 그 대가로 저 혼자 발 뻗고 편히 자려는 이기적이고 불공정한 의도가 이 영화에는 없다. 또한 우리가 그들을, 그들이 우리를 적이라 말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이 영화는 알고 있는듯 하다.

2005. 09. 10. 山ZIGI VINAP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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