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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극이 아니라고 말을 했어야지! 박수칠 때 떠나라
sieg2412 2005-09-12 오후 8:50:27 1978   [9]

올해 최고의 흥행작이라는 <웰컴 투 동막골>의 뒤를 바짝 쫓아 달리는 스코어를 보기 무안하게도, <박수칠 때 떠나라>는 그다지 흥행성이 검증되지 않은 작품이었다. 물론 설경구의 <역도산>, 최민식의 <꽃피는 봄이 오면>, 송강호의 <남극일기> 등을 통해 '빅 3'의 티켓파워가 송두리째 부정된 지금 문근영과 함께 당대 최고의 티켓파워를 가진 차승원의 출연 같은 것은 호재로 작용할 수 있지만, 수사극이란 장르가 크게 흥행되는 장르가 아닐뿐 더러, 무엇보다 장진 작품의 흥행성적이 크게 눈에 띄는 점 없이 '고만고만'했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면 <아는 여자> 정도가 제외될 듯 싶다.

 

이 영화는 <동막골>보다는 <금자씨>에 가깝게, 혹평과 찬사가 정확히 반을 가르는 열띤 토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혹평의 대부분은, '과학 수사가 후반부에 가서 너무 허물어진다'라는 점인데, 이 점에 있어서 영화의 핵심을 간파하느냐 못하느냐가 나뉘어진다. 왜냐면 '살인에 있어 가장 화려한 수사'라는 이 영화에 있어 '搜査'로서의 수사는 맥거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한국영화사상 가장 다이나믹한 도입부를 통해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김영훈을 영화 시작 3분 가량만에 검거하게 되고 사실상 영화는 용의자에 대한 심문부터 시작하게 된다. 또한 최연기는 김영훈이 범인이냐 아니냐를 가리기보다 김영훈을 범인으로 단정짓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데, 가만 생각해 보면 이것은 상당히 특이한 징후이다. <살인의 추억>이 끝까지 범인을 밝히지 못했고 <공공의 적> 역시 우리는 알지만 강철중은 범인을 잡으려 노력했음을 볼 때,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용의자를 체포하고 시작하는 수사극이란 김이 빠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김영훈이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용의자와 증인의 구분이 무분별한 것 역시 생각해 볼 일이다. 수사가 미궁에 빠진 순간 수사팀은 CCTV에 잡힌 가느다란 그림자를 포착하고, 그것이 맹인 안마사의 지팡이임을 추리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맹인 안마사의 역할은 정유정이 죽기 전에 울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에 그친다. 초반에 말이 많았으며 웃음 포인트도 갖고 있던 주유원의 역할은? 그 역시 그의 신 이후로 일체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은 헛소리를 늘어놓는 일본인 부부도 마찬가지이며, 심지어는 최종적으로 진범으로 지목된 지배인마저도 영화 후반까지 어떠한 암시를 줄 만한 노출을 보이지 않는다. 수사관과 범인을 비롯한 용의자들, 증인의 관계가 명확한 수사극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런 관계는 과연 범인을 찾으려는 의지가 충분한 것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해 볼 때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영화의 비교적 탄탄한 미스터리적 구조에도 불구하고) 장진은 애시당초 범인이 누군가를 밝히는 수사극에는 흥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영화의 최종 부분에서 무당의 딸이 가리킨 104호가 열리면 오직 최연기에게만 보이는 정유정의 죽음이 리바이벌되는데, 그 내막은 약봉지에 담긴 절연산을 먹은 정유정의 자살로 끝난다. 이 장면에서 허무감을 느낀 관객들이 혹평을 남기기도 하는 것인데, 사실 이 '자살'이란 결론은 가리키는 것이 있다.
극중의 살해사건을 보도하는 특집 생방송의 제목은 <정유정 살해사건, 누가 그녀를 죽였는가?> 이다. 제목이 노골적으로 밝히듯 영화의 인물들은 도대체 '누가' 정유정을 죽였는가에 대해 골몰하고 있다. 그런데 그녀는 자살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누가 죽인거냐'며 시종일관 달려왔는데 오고 나니 '아무도 안 죽였다'라는 막다른 길이었다. 애초에 길이 두 갈래 있었는데, 그것은 '누가 죽였을까'와 '왜 죽었(였)을까'의 길이었다. 이 중 하나는 막다른 길인데, 결국 모두가 막다른 길을 향해 달렸을 뿐 정작 정유정이 어째서 죽었는가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지배인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한무숙과 김창화의 범행은 사실상 정유정 사후에 이루어졌음을 밝혀낸 뒤, 정유정 죽음의 숨겨진 진실이 밝혀진다. 이것은 국과수에서 날아온 한 통의 팩스로 밝혀지는 데, 여기서 의아한 것은 팩스의 발송 시점으로 팩스는 모든 수사가 종결된 후 - 엄밀히는 TV 생방송이 막을 내린 뒤 - 에 단지 최연기에게만 배달된다. 그리고 이 팩스는 그간의 모든 추리로 밝혀진 지배인, 김창화와 한무숙, 김영훈으로 이어지는 정유정에 대한 살해 시도 이전에 정유정의 자살이 있었음을 밝히는데, 이 팩스가 주는 허무감은 급격하다. 48시간 이내에 범인이 잡히지 않자 방송국은 떨어진 흥미를 되찾기 위해 무당의 쇼를 등장시키게 되고, 이러한 '살풀이' 끝에 남겨진 것은 결국 덮여진 진실만이 남았을 뿐이다. 최연기는 진실을 알게 되었고, 그 진실은 수사팀과 방송국이 펼쳐온 그 진풍경을 단숨에 무위로 만드는 종이 쪽지에 의해 폭로된다. 팩스가 도착하기 위한 - 부검이 마무리되기 위한 - 48시간이라는 시간 제한은 결국 매스미디어의 극단성을 끄집어 냈고, 러닝타임 내내 이루어진 수사와 중계의 모든 행위와 팩스 한장이 이루는 부조화의 역학 관계는 마치 장진의 전작 <간첩 리철진>에서 리철진의 부단한 노력과 '남측의 유전자 양도'를 알리는 짤막한 뉴스의 관계를 상기시키며, 장진의 부조리를 조소하는 유머의 극치는 다시 한번 무대를 떠나 은막에 형상화되고 있다.

 

<박수>는 확실히 어느 한 쪽의 갈피를 잡지 못한 영화다. (나는 이미 장진이 수사극을 할 생각이 없었다고 결론을 내린 상태지만) 수사극이라 일컫기엔 이 영화는 너무 공상의 길로 빠져들어간다. 그러나 그것을 '수사극을 가장한 풍자극'으로 결론을 내렸을 때 모든 것은 맞아떨어지지만, 실제 방송 중계를 보여주는 데에 다소 허술했던 점과 복역중인 칼잡이에 대한 내용 같이 잔가지를 미처 쳐내지 못한 점, 결정적으로 관객이 수사극과 풍자극의 사이에서 작품의 의도를 명확히 알아차리지 못하게 한 점은 <박수>에 있어 '참고할 점'으로 느껴진다.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연극 이식과 차승원의 티켓파워 확인, 여름 극장가 한국영화의 부활 등의 성과를 남겼지만, <박수>는 (연극 연출가로서) 장진이 보여왔던 씁쓰름한 유머와 (영화감독으로서) 거듭 세련되어진 장진의 연출 감각이 조화를 이룬 최초의 영화로 기록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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