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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얻기 위해 열을 버리다 새드무비
sieg2412 2005-11-16 오후 2:52:41 1327   [8]

한 남자가 대형 마트의 유리문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이별대행업에 종사하는 이 청년은 자기 애인의 의뢰를 받아 수행하는 중이다. 유리문 너머의 여자친구를 보며 눈물섞인 이별 선고를 마친 청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비를 맞을 것이 걱정되어 우산을 귀퉁이에 놓고 가고, 여자는 그 우산을 주워 쓰고 가다 우산의 고장난 부분을 보고 멈칫한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가슴아픈 이별의 순간을 겪는다. <새드무비>는 바로 그런 슬픈 이별의 순간을 아름답게 담으려는 영화다. 소방관인 진우와 수화통역사인 수정, 놀이공원에서 인형 탈을 쓰는 수정의  동생 수은과 놀이공원에서 그림을 그리는 미대생 상규, 일하느라 바쁜 커리어우먼 주영과 그런 엄마가 서운한 휘찬, 이들 네 커플은 서로의 사랑을 만들고 또 아름답게 이별하려 한다. 그러나 그 이별의 순간을 만들기 위해 <새드무비>는 적어도 세 가지의 우를 범하고 말았다.

<새드무비>가 범한 첫번째 우는, 다중 플롯을 '섣불리'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매그놀리아>와 <러브 액츄얼리>, <내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 집단극의 스타일을 그 나름에 맞게 성공적으로 소화한 예를 보았기 때문에 플롯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매그놀리아>는 '우연의 필연성'이라는 주제를 형상화하는 데에, <내생애>는 내러티브의 사실성을 포착하는 데에 이 플롯을 이용했다. <러브 액츄얼리>와 <새드무비>는 이들과 달리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기 위해 집단극을 연출했다. 그럼에도 <새드무비>의 어떤 커플도 나이든 록가수나, 사랑의 열병을 앓는 아들과 새아버지의 이야기만큼 깊이를 갖고 있진 못하다. 그것은 서사의 진중하지 못함이 아니다. 다중 구조의 오용으로 인해 <새드무비>의 각 이야기는 설득력을 가질 만한 여유분의 시간을 배분받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새드무비>의 두번째 우가 연이어 발생하게 된다. 지나치게 단선화된 스토리는 몇 줄의 시놉시스를 영상을 옮겨 놓은 데 그치거나, 심지어 그마저도 표현되지 못하기까지 한다. 소방관인 진우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프로포즈뿐이고, 진우의 뒷배경에서 나올 수 있는 그 이상의 잔가지는 과감하게 스크린에서 내쳐진다. 하석은 영화 시작과 동시에 숙현에게 이별 선고를 받고, 그 자신의 러닝타임 내내 숙현을 되찾는 데 분주할 뿐이다. 그 외부와 완벽히 단절시킨 서사의 가지치기는 설령 몰입도 상승에 도움을 줄지언정 역시나 설득력을 얻는 데는 마이너스로 작용한다. 진우와 수정이 소방관이라는 직업 때문에 겪을 법한 내적, 외적인 갈등은 일절 표출되지 않고, 휘찬이 거짓 일기를 쓰게 한 주영의 원인 제공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하석의 이야기는 하석이 이별대행업을 하면서 겪는 타인들의 에피소드를 늘어놓으며 자잘한 웃음거리를 주는데, 이것은 하나의 이야기로 100분을 상회하는 러닝타임을 소화하는 장편영화에서나 보여질 법한 그야말로 소소한 - 없어도 되는 - 이야기일 뿐이다. 디테일의 결핍은 공감의 부재를 가져온다.

그러나 상규와 수은의 이야기는 조금 다른 것이, 이들은 이미 이루어진 커플이거나 막 이별을 시작한 커플, 혹은 혈연적 관계로 묶여진 선천적인 커플이 아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상규와 수은이 첫만남을 가지고, 사랑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풀어나가려 한다. 이별을 다룰 이야기가 사랑의 시작에서 출발하는 것은, 100미터 뛰라고 준 20초에 200미터를 뛰려는 격이다. 200m를 20초에 뛰는 것은 세계 기록에 가까운 것처럼, 커플마다 배분된 평균적인 러닝타임 20분 동안 사랑의 기승전결을 풀어나가는 것은 어지간한 연출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이들의 이야기는 네 커플 중 서사의 완성도가 가장 떨어진다. 다른 에피소드에 비해 농밀함이 떨어지는 이야기를 가장 무리한 조건으로 소화하려는 이 이야기에서 보여지는 실수가 바로 <새드무비>의 세번째 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드무비>를 폄하하기 어려운 단 하나의 이유는,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담아낸 이들의 이별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죽음을 예감하고 화재현장의 CCTV를 통해 마지막 말을 남기는 소방관과 그 테이프를 보고 오열하는 여자, 유리문에 비춰진 자신에게 직접 이별의 메시지를 읊는 남자와 그 남자의 마지막 흔적을 알아채는 여자, 잠시나마 가슴이 뛰는 풋풋한 사랑을 나눈 청춘 남녀의 포옹과 화려하게 반짝이는 놀이공원의 불빛 장식, 병상에 누워 아파하는 엄마와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빗속에서 통곡하는 어린 아들. 이들이 담아낸 이별의 순간은 과연 현실적이지 못할지언정 찬란한 이별이 분명하다. 하나를 얻기 위해 열을 버린 <새드무비>를 수작이라 할 수는 없지만, 고생 끝에 얻어낸 그 하나가 너무 매력적이기에 <새드무비>를 쉽사리 졸작이라 부를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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