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때, 농촌 활동을 줄기차게 쫓아다녔던 나로서는 이 영화가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동네마다 한 둘씩은 꼭 있었던 마흔의 장가 못간 농촌 총각(혹은 아저씨)들과 술잔을 나눠본 경험이 있었으니까. 물론, 본인 의지에 따라 독신주의를 내세우는 사람들도 없진 않았겠지만 말 그대로 십 중 팔, 구는 장가를 안 간 것이 아니라 ‘못’ 간 것이었다.
평생 결혼을 못하느니 금발의 푸른 눈이라도 만나볼 심산으로 베트남도 아니고, 중국도 아닌 저 머나 먼 중앙 아시아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나는 두 주인공. 요새는 촌사람이라고 해도 그 정도로까지 촌스럽지 않은데, 한껏 멋을 낸 희철(유준상)조차도 그 볼썽사나운 복대라니…(그건 1990년대 초반, 우리 할아버지가 타이로 관광을 떠날 때 메고 갔던 바로 그 모양이다. ㅡ.ㅡ;;)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 때문에 여자 얼굴을 바로 보지 못하는 만택(정재영)이나 처음에는 너스레로 인기 좀 끌다가 뭐가 또 틀어졌는지 잘되던 여자마저도 놓치는 희철. 덤 앤 더머처럼 번갈아 사이좋게 사고를 쳐대는 그들에겐 금발의 푸른 눈도, 한국을 선망하는 고려인도 쉽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이 어리버리한 농촌 총각들이 그렇게 실패하면 영화가 되질 않았을 것이고, 결국 만택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얼음 같은 냉랭함으로 중무장한 통역인 라라( = 탈북자 순이)를 사랑하게 된다. 희철 역시 자신의 바보 같은 모습을 닮아 내쳤지만, 마음만은 진심이었던 여자에게 무릎을 꿇는다. 절규하듯 질렀던 ‘다 자빠뜨려’ 덕분이었을까. 강제로 헤어졌던 그들은 결국 다시 만나게 된다.
이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해피엔딩이어야만 마음이 편해지는 영화이기도 하고…
코믹 터치이긴 하지만, 하루 걸러 한 명씩 목숨을 버리는 암담한 농촌 사회의 현실이 곳곳에 반영되어 있다.(뭐, 물론 요새는 젊은 농민들이 좋은 기술과 경영법을 바탕으로 제법 부농이 되기도 하더라마는.) 그래서인지 정재영과 유준상의 그 맛깔나게 천연덕스러운 연기를 보면서도 간혹 눈물이 나기도 했다.
전원 일기의 수남 엄마(고두심)가 이상형인 이 멸종 위기의 순박한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부디 여우같은 마누라, 토끼 같은 자식들이랑 알콩달콩 예쁘게 살기를… 기생충 없는 배추도 많이 재배해 주시고… ^-^
딴 얘기 :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농민 대회가 있었다. 격렬한 시위 끝에 다친 사람들이 생겼다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신자유주의도 좋고, 농업 경쟁력 고취도 좋은데, 당장 살아갈 방법부터 마련해 줬어야지. 대지와 같이 우리를 먹여 살린 농민들에게 우리는 너무 야박하다. 현실도 이 영화만큼 해피엔딩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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