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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괴상한 욕망 형사
freia 2005-11-26 오후 3:33:00 766   [16]

청룡 영화상 후보작 상영제에 당첨되어, <형사>관람의 행운을 얻었다. 얼마만의 조우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추석 연휴 끝에 보고 나서 다시 보는 영화이니, 두어 달은 된 듯하다. 영화에 대한 첫 인상이 강렬했던 만큼, 다시 볼 기회를 가진다는 것이 기쁘고 설레었다.

 

역시, 눈앞에 펼쳐지는 한장면 한장면은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장터 장면에서 가짜 돈주머니를 향해 뛰는 사람들의 움직임, 귀면탈을 쓴 슬픈눈을 향해 남순이 쌍비단도를 빼드는 장면부터 시작해서, 칼로 나누는 남순과 슬픈눈의 애절하고도 비현실적인 연정이 돌담길의 어둠속으로 사라질때까지, 나는 여전히 커다랗게 눈을 뜨고, 벌어진 입을 다물기 위해 간간이 정신을 가다듬는 것 외에는 꼼짝 않고 앉아서 멍하게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그저 보고 듣고, 대사조차도 운율을 맞춘 무엇인가처럼, 사뿐사뿐 시간을 건너가 버렸다.

 

이 영화에는 가을과 겨울이 배경으로 나온다. 가을이 배경인 장면들에서는 저놈의 색깔들 하며 때로 화면 구석까지 넘치는 색에 당황하기도 했다. 움직이는 것 따라가기도 바쁜 영화가 아닌가. 단풍과 이끼는 그냥 기본 화면처럼 깔려있고, 그 외에도 시장을 매운 조화, 지붕 위에 뿌려진 염료가루, 병판의 연회장 입구에 수술 달린 휘장과 상을 덮은 은색 천, 홍등가에 색등 위로 흩날리던 색종이 까지, 순수한 노란색이 안 나와 미쳐 버릴 것 같다는 화가의 말이 떠오를 정도로, 화면을 채워줄 색에 대한 강박이라도 있는 건가 싶었다. 겨울로 가면 좀더 비장하고, 색조는 거의 흑,백,홍으로 집약되면서, 색체의 어지러움은 덜해지지만, 여전히 영상은 강력하며, 흩날리는 눈발이 화면 구석까지 가만두질 않는다! 그뿐이던가, 영화의 음악과 음향은 ‘상영 시간 내내 귀를 내버려 두는 순간이 있었던지’ 기억이 안 난다.

 

그런데, 이렇게 생소하고 강력하게 달려가는 영화의 에너지는 이상한 몰입을 안겨준다. 아마도 생각할 겨를이 없이 흘러가서 그러는 건지도 모르겠다. 엔딩크레딧이 오를 때, 솔직히 말하자면 머리로 생각할 틈은 없었지만, 이 영화를 처음 관람하고 영화관을 나설 때 나의 욕구는 분명했다. <나는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 였다.

 

두어 달이 지나 청룡상 후보작으로 오른 <형사>를 다시 관람하면서, 이 영화에 대한 나의 또 다른 욕구 하나를 발견했다. 영화에 대한 욕구 치고는 독특해서, 처음엔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이 생각이 나를 아작아작 먹어치우더니, 온전히 이 생각만이 되풀이 되고 있음을 느꼈다.

 

이 욕구는 가방을 사거나 옷을 사는 것과 같이 구체적이고 물질적이었으며, 단순했다. 길다란 설명을 붙인 욕구는 단순히 <나는 이 영화를 갖고 싶다>였다.

 

소파에 앉아 DVD틀어 놓고 보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다. 벽지, 전등, 블라인드, 커튼 같은 것처럼, 걸어 놓고 늘 보고, 듣고 싶다. 벽면에 그림을 때어내고, 가구나 집기들과 구도를 맞추어서 얇은 벽걸이 화면을 설치하고, DVD로 <형사>를 계속 틀어 놓았다가, 멈춤 화면으로 두기도 하고, 분위기에 따라 스틸컷을 바꾸어 놓고, 기분에 따라서는 구간 반복을 해서 장면을 계속 반복되게도 해놓고, 소리는 높였다 낮췄다 없애 버렸다 하는 식으로, 생활 공간 속에 장식품의 일부로 걸어두고 싶다. 기왕이면 화면은 고화질에 명암비도 높으면 좋겠고, 플레임도 공간에 맞는 디자인과 색상을 고를 수 있다면 좋겠다.

 

써놓고 보니, 영화에 대한 욕구 치고는 괴상하다. 그리고, 이것이 영화의 기능이냐고 묻는다면 할말도 없다. 그러나, 선사시대에 동굴화나 암각화를 보며, 사적 공간에 그 돌조각을 떼어 붙이는 상상은 괴상했을 것이다. 매체에 대한 인간의 상상이나 욕구가 변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생각이 영화에 대해 그렇게 까지 불손할 것도 없는 것 같다.

 

영화 <형사>에 대한 손에 쥐일듯한 감각적 욕구, <나는 이 영화를 소유하고 싶다> 손목위의 시계처럼.                                                        

 

 

<추신> 책상 옆에 외국 미술관 한정판인 샤갈 그림 프린트와 어느 잡지에선가 오려낸 안윤모의 그림이 걸려있다. 나는 이 그림을 거의 매일 보지만, 원작을 볼 기회가 생긴다면, 기꺼이 달려갈 것이다. 영화 <형사> 역시 크고 시설 좋은 스크린에서 영화의 맛을 더욱 살려준다면, 달려갈 것이며, 그럴 기회를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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