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와 야수>의 무도회씬에서 벨의 노란 드레스가 너무나도 예뻐 엄마를 졸라 극장에 세번 갔고 <라이온킹>의 영화음악과 '기억해라, 난 너의 아버지다' 라는 대사 - 저 대사가 맞나 모르겠지만 - 에 반해 여덟번이나 극장에 갔었다. 그리고 <스파이더맨2>에서 주인공 피터의 갈등과 <콘스탄틴>에서 루시퍼를 향한 존의 손가락욕에 매료되 - 주인공의 갈등에 매료되다니, 나도 참 특이한 사람이다 - 평일이고 야간이고 할것없이 세번씩이나 저 영화들을 봤다.
저것들은 이유가 있다.
그런데 왜? 왜 나는 <형사>를 다섯번이나 봤을까? 대체 왜 그랬을까?
다섯번이면 나에게는 평이한 기록인데, 나는 왜 이토록 <형사>에 열광할까?
1. 이야기에 지쳐있었다. 그래서 화면과 음향을 원했다. 이야기를 원한다면 그것들은 소설책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난 스크린에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손이 흠뻑 젖을 것 같은 색을 원해고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소리를 원했다. 그때가 내가 막 우리나라 영화들을 몰아서 보기 시작했을때였다.
색감과 5.1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영화는 보지 못했다. 그리고 <연인>을 보니 질투가 났다. 장예모도 저렇게 하는데, 우리나라엔 저렇게 할 감독이 없단말이야? - <연인>을 극장서 본건 아니었지만, 서플먼트를 보니 장예모가 얼마나 독하게 화면과 색감에 신경을 쓰며 영화를 찍었는지 알 수 있었다. 존경스럽단 말이 절로 나왔지만 그것도 결국은 질투로 끝났다.
2. <형사>의 공개촬영 기사를 봤다. 기사 몇줄에 나는 그 영화를 내 리스트(?)에 올렸다. 몇장의 사진에 담긴 장터의 모습만으로도, 기대에 가득찼다. 어떤 그림이 나올지...
- 그리고 얼마 후 티져예고를 봤다. 처음 예고를 상영하던 날. 나는 입을 떡~ 벌린채 그 장면을 지켜봤다. 무채색이 저렇게 예쁠수가... 저 몸짓은 또 뭐란말인가...
3. 9월 2일 유료시사가 시작되고 한번 예정이었던 유료시사는 매일 2회 개봉일 전까지로 확정됐다.
모니터 스피커 볼륨을 죽여놨지만 칼소리는 경쾌하게 들려왔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화면은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멀찌감치에서 봐버리면 김이 쑥- 하고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일할때도 <형사>가 상영되는 관은 열심히 외면했다. 그렇지만 소리는 어쩔 수 없이 들려왔다. 칼소리에 심장이 오그라들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4. 유료시사가 끝나는 시점에서 한차례 프린트 교체가 있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배경음이 일부 바뀌었단다. 보정작업도 있었단다. 도대체 유료시사때 상영되었던 필름은 어땠길래? 난 아직까지도 시사때 상영됐던 필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감독의 최종적인 것은 교체후의 필름이라 생각하고, 잊어버리기로 했다.
5. 9월 12일. THX라이센스를 받은 영화관에서 처음 봤다. 옆에 아가씨들이 런닝타임 내내 떠들지만 않았어도 괜찮았을텐데. 그것때문에 화면도 소리도 어느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하게 THX와 <형사>는 어울리지 않았다. 뭔가 부족한 느낌이 확실히 들었다. 같이 보러갔던 나의 자매님(우리언니;;)은 '기와지붕에 널려있던 푸른색, 빨간색 봤냐. 진짜 끝내준다.', '홍등 색들이 너무 예쁘다.' 라고 떠들어댔지만 내 느낌은 떫떠름했다.
6. 9월 16일. 결국은 내가 일하는 곳에서 보게됐다.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것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어떻게 보나 궁금했다. 저녁시간이라 자리는 만석이었고 대부분 20대 관객들이었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영화에 빠져들었다. 내 오른쪽 옆에 앉은 아가씨는 영화 시작한지 40분이 지나자 울기 시작했고, 나는 한시간쯤 지나서 울었다. 그리고 왼쪽 옆에 아가씨는 영화가 거의 끝나갈무렵 울었다. 난 내가 왜 울었는지, 그 아가씨들이 왜 울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는 엔딩크레딧이 끝날때까지 눈물을 훔치며 자리를 지켰다. 그런데 난 아직까지도 그때 내가 왜 울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남순이 생각을 하니 슬펐다. 곧 있으면 슬픈눈이 죽을텐데, 남순이가 나중에 그 사실을 알면 얼마나 슬플까... 그 생각만 들었다.
- 초반 김보연의 다섯채널을 모두 이용한 대사, 서라운드로만 표현된 슬픈눈의 대사, 멀리서만 들었던 경쾌한 칼소리, 초반 돌담길씬에서 느낄 수 있었던 두 주인공의 거친 숨소리... 나는 속으로 몇번이고 이명세 만세를 외쳤다.
인터뷰에서만 봤던 것들을 직접 느끼니, 그 파장은 엄청났다. 충격도 컸다.
7. 9월 22일. 일 끝나고 아는 언니와 함께 또 한번 관람을 했다. 일하는곳에서 봤지만 관은 바뀐 후였다. <형사>가 거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때쯤... 언니와 나 모두 세번째 관람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늦은 점심을 먹으며 우리는 어둠에 쌓인 돌담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여러 영화속에서 여러가지 어두움, 밤, 저녁이 있었겠지만 <형사>의 그 어두움은 형용할 수 없을만큼 멋졌다. 라는 주제로 몇시간을 이야기하고 공감했다.
'이명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8. 10월 9일. 늘 가는 피프의 일정에 어김없이 <형사>도 끼어있었다. GV에 사활을 걸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리와 영상에 관해 감독에게 궁금한게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았고, 자리도 딱 질문하게 좋은곳에 걸려 의문을 풀수 있겠구나 했지만 주연배우 강동원의 영향력(?)때문에 GV는 10분만에 끝났고 질문들은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 감독님의 왕팬을 자처하는 아저씨의 길고긴 발언에는 엄청난 박수를 쳤지만.
문득 상영관 입구 앞에서 만난 감독의 머리위에 걸려있던 THX 액자가 생각났다. 아니라는건 알고있었지만, 처음 봤던곳과 동일하게 출력된 사운드때문에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9. 11월 13일. 카페의 1차단관도 놓치고 2차단관도 갈 수 없어 동원사노모 단관에 꼈다. 메가박스 1관이 궁금했다. 우리나라에선 최고라고 할 수 있는곳 아닌가. 거기선 어떤 소리와 어떤 색감이 나타날까... 10일에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보러 갔다가 어둡고 가물거리는 화면을 보고 단관때도 저러면 어쩌나 했는데, 그 사이 램프라도 교체한건지 <형사>를 상영할땐 밝고 깨끗한 화면을 만났다. 그리고 타 극장보다도 화면이 밝음을 느낄 수 있었다. - 그치만 화면이 밝아 색감이 제대로 표현됐던건 피프때였던것 같다. - 그렇지만 센터에서 흘러나온 슬픈눈의 대사는 의문이었고 그건 지금도 안풀렸고.... 아무도 왜 슬픈눈의 대사가 센터에서 나왔는지 모르는듯 하다.
그리고 현재. 나는 <형사>를 보고싶단 생각을 간절하게 하고있다.
DVD가 문제가 아니다. 사실 TV스피커로 5.1과 DTS를 어떻게 느끼겠는가. (DTS도 들어갈 예정이다.)
더군다나 우리집 TV는 스피커가 좋은편도 아니다.
슬픈눈과 남순의 사랑이야기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둘이 사랑하는건 알겠으니 니들 맘대로 해라 솔직히 그런 맘이었다.
내가 장예모를 질투까지 해가며 찾던, 기다렸던 영화가 <형사>였고, <형사>는 기대이상의 그것들을 내게 선사해줬다. 그리고 나는 나도 모르던 무언가를 보게되고 느끼게되고 깨닫게 됐다. 지금의 모든것이 전부가 아닌, 또 다른것들이 있음을 알게됐다.
참 신기하다. 어떻게 영화 하나를 보고 이렇게 내 시야가 트이게된걸까?
그건 나도 모른다.
이명세는 나에게 너무 많은 대답을 줬고, 그만큼의 의문도 줬다.
그 의문은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
까놓고 말해서 내 의문이 아직 풀리지 않았기때문에 극장에서 다시 <형사>를 보길 원하고 있는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무턱대고 그렇게 글을 올린걸지도 모르고...
의문이건 애정이건... 결국 <형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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