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있다. 우리가 보는 바다는 바다가 아니다. 단지 바다의 껍데기일 뿐..바다의 껍데기를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물고기들도 있고 조개들도 있고 해초들도 있고..많은 것들이 바다를 이루며 살아간다.
그것이 바다다. 우리가 아는 파도와 물결은 단지 바다를 가리고 있는 겉모습일 뿐.
조제는 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다. 갑자기 문득..그녀는 바다를 보았지만 그전에 물고기가 보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이 깊은 심해에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심해에서 필사적으로 헤엄쳐 나왔다고 했다. 츠네오를 만나기 위해서 깊고 어두운 바다를 빠져나왔다고 했다. 사실은 츠네오가 조제를 깊은 바다에서 구해준 건데 조제는 그렇게 말했다.
조제는 모든 세상을 칼을 들고 경계했다. 자신의 두다리가 없는 삶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모든 것과 맞서야 했기 떄문에 그녀는 날이 선 칼만큼이나 자신을 갈고 갈아서 세상에 맞서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세상을 보고 싶었을 뿐 세상을 부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녀에게 그럴 만한 용기를 가져다주지 않았다. 자칫 한발 내밀다가 그 첫 발걸음이 자신의 두발이 아님을 세상에게 비웃음당할까봐 그녀는 용기를 내기가 힘들었다.
츠네오는 어쩌다보니 그녀의 집에서 밥을 먹게 되었고 그녀가 만든 밥이 꽤나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에게 세상으로 한발 내딛는 법을 알려주려다 호된 벽에 부딪치고 그녀를 잊지만 상처입은 그녀에게 다시 되돌아가서 그녀를 매만져준다. 그리고 그녀를 비로소 세상으로 끌어낸다. 그녀를 동정해서가 아닌 그녀를 사랑함으로써 그녀가 갈 수 없는 세상의 두 다리가 되어준다.
둘은 헤어진다. 눈물도 싸움도 없지만 둘은 헤어진다. 그냥 그렇게 이별해야 될 시기를 알고 둘은 헤어진다. 조제는 그냥 그렇게 생선을 한마리 구워서 밥을 먹고 츠네오는 갑자기 길 한가운데에서 설움에 복받친 울음을 터뜨린다.
장애인과 정상인 사이의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은 현실을 영화는 별다른 여흥없이도 자연스럽게 그 벽을 융해시킨다. 무언가 특별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 그냥 어디선가 얼핏 들었던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하듯 시종일관 묵묵한 표정으로 영화는 진행된다. 그러나 영화는 무언가 독특한 속마음을 지니고 있다. 무언가 느낌이 확 오는 건 없지만 마음속에 쌓여있는 묵직한 슬픔이 영화의 엔딩과 함께 발견된다.
그네들의 그저 그런 연애담정도로 말하는 영화의 화법에 비해서 영화의 속내는 많은 추억들이 서서히 쇠잔해가는 옛 사랑의 그리움을 진솔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조용하면서도 비범하게 이 영화는 관객들을 숙연하게 만든다. 영화는 잔잔하게 쌓여가는 슬픔이 바다의 물결위를 출렁이다가 자칫하면 쏟아질 것만큼만 남겨두고는 말문을 닫는다. 마치 책상서랍에서 오래된 사진 한장을 발견하고는 묵혀두었던 옛 추억과 조우하는 듯한 감동이 이 영화에 심어져 있다.
무언가 나즈막하지만 강렬한 여운이 박히는 영화다. 츠네오는 조제를 다시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본인의 말처럼 '헤어져도 친구로 지낼 수 있는 연인은 있지만 조제와는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라고 했던 것처럼 그네들의 인연은 과거형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 추억도 한번씩 꺼내들 때마다 점점 흩어져가고 아득해질테다. 그래도 조제는 이제 세상을 피해 숨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보고 싶다던 호랑이를 보기로 했을 때부터 그녀는 이미 세상에 나서기로 했으니까. 다시 심해위를 혼자 구른다해도 그녀에게는 사랑했던 지난 세월이 남아있으니까. 언젠가 다시 그 깊은 심해에서 헤엄쳐 나올 때는 조금더 쉽게 그리고 힘차게 나올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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