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바이(alibi)란 '다른곳에'라는 뜻으로써 상황 자체와의 공간적 연관성의 결여됨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단어다. 그리고 이 단어는 범죄상 용의자의 의심여부의 확증을 가늠하기 위한 잣대로도 활용되는 전문용어이다. 말 그대로 알리바이가 입증된 이는 사건과의 무관함을 증명함으로써 용의자 선상에서의 탈출에 성공했다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범죄행위가 아닌 평범한 시민 중에서도 알리바이가 필요한 이들이 있다. 특히나 가정내에서 일탈을 행하시는 못된 아버지, 어머니들에게 그들만의 사생활 유지를 위해서는 그럴듯한 변명이 절실히 필요해질 때가 있는 것. 그런 그들을 위해서 친절하게도 알리바이를 공급해주는 회사가 설립되었으니 전세계의 바람둥이들에게는 희소식이 되어줄 법하겠지? 어쨌든 이 기묘하고도 염치없는 회사가 조금은 궁금하지 않은가?
이 영화는 일단 시작부터 코믹하다. 시작부분에서 나레이션과 함께 펼쳐지는 플래쉬영상은 관객에게 영화가 지니고 있는 장난끼를 살짝 드러내보임에 충분하다. 그리고 독특한 소재이니 만큼 독특한 매력이 있음을 도입부부터 관객에게 강하게 어필한다.
레이 엘리어트(스티브 쿠건 역)는 알리바이 컨설턴트 회사의 사장으로써 그의 주고객은 조금 있으신 바람남과 바람녀들..주로 사모님과 사장님이 되시겠다. 어쨌든 그는 고객님들의 주체하지 못하는 바람끼에 생기는 일상의 구멍을 메우면서 수고비를 받는, 나름대로의 전문직종에서의 프로페셔널이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이다. 그 나름대로는 가정의 평화에 기여한다고 생각한다니 나름대로 사회적으로 공헌하는 바도 있겠다.
사실 이런식의 영화, 즉 어떤 일탈의 행위로 벌어먹고 사는 인물들에 관한 형태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영화들은 대부분 경쾌한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건 사실 그들의 행위가 사회적으로는 손가락질 받을 수 밖에 없는 행위임은 분명하기 때문에 관객의 웃음을 유도함으로써 그들의 행위에 대한 면최부를 획득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겠다. 이영화 역시 그러한 형태를 취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주인공의 단도직입적이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대사와 상황 처리는 관객들에게 절묘함의 재미를 선사한다. 또한 그러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인물에게서 흥미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는 시종일관 무료하지 않게 관객에게 적당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결말의 묘미가 있다. 주로 심리전의 측면에서 한방을 노리는 영화는 그 응축된 플롯의 물음표를 느낌표로 전환하는 능력에서 가치를 평가받는 법이다.
'가이리치'의 '락 스토킹 투 스모킹 배럴스' 같은 영화를 보면 우연적인 상황에서 전혀 상관없는 인물들이 서로간의 동선의 교차만으로 서로의 행위에 영향력이 발생하고 그렇게 서로 엉킨 매듭이 결말부에서 순식간에 풀어지면서 지켜보는 관객은 명쾌해지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 영화도 비슷하다. 다만 이 영화에서는 전혀 상관없는 인물들간의 우연성이 기초가 된 것이 아니란 것이 위의 선례와는 차이라고 볼 수 있겠다.
나름대로 탄탄대로를 걷던 레이에게 인생이 꼬이는 소리가 들려오면서부터 영화의 낯빛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유쾌하기만 하던 영화에 무슨 일이 일어나리라는 기대감이 감돌기 시작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기대감에 이 영화는 부응할 줄 아는 착실함을 지니고 있다.
주인공이 꾸미는 계책이 준비될 때까지만 해도 관객은 적당한 의문을 떠안아야 한다. 하지만 그 의문의 정답이 공개되기 시작하는 순간 탄성이 절로 흐르는 감격을 만날 수 있다. 주인공의 묘책으로 주변인물들의 동선이 맞물리면서 다소 황당한 시츄에이션이 펼쳐진다. 복잡하면서도 세련된 묘수로 자신의 위기를 극복하는 주인공은 동시에 관객에게 감탄까지 안겨준다.
시종일관 지루함은 느낄 수 없고 특히나 막판의 클라이막스에서 폭발하는 응집력이 빛나는 영화다. 탄탄한 시나리오라는 기본 재료의 질이 좋고 배우들의 연기라는 양념이 더불어 잘 조리된 수작이라고 볼 수 있겠다. 특히나 이 영화에는 우리가 잘 아는 배우들은 찾기 힘들다. 어디선가 얼핏 본 기억은 나지만 영화에서 중심축을 이루던 배우들은 찾을 수가 없는 것. '80일간의 세계일주'에 등장한 '스티브 쿠건'이나 '엑스맨'에 '사이클롭스'로 등장하는 '제임스 마스던' 정도나 눈에 들어올 법하다. 어쨌든 그래서 이영화가 더욱 괜찮은 모양새로 다가온다. 그만큼 신선한 느낌도 나는 법이고.
이야기 구조의 헛점따위는 찾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관객에게 머리아픈 추리를 강요하는 영화도 아니다. 단지 그냥 그 남자의 위기상황 대처능력을 유심히 지켜보고 감탄을 얻어내면 되는 영화다. 흥미진진한 호기심 앞에 유쾌한 인물들이 명쾌한 해답을 던져주는 영화랄까. 현실에서도 재현되기에는 힘든 구석이 있겠지만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유쾌함은 그 자체로 영화의 가치를 높여주는 법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상력의 현실화가 바로 영화가 지니는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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