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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pper] 눈씻고 다시 봐 줘야할 영화 ★★★★ 왕의 남자
cropper 2006-01-02 오전 10:28:25 1658   [8]
 
삼국지의 고사에 보면 오나라의 왕인 손권이 무술에는 능하나 학문이 짧은 장수 여몽을 나무라자
여몽이 학문에 정진하기 시작하였는데 후에 여숙이 찾아가 보니 전과 달리 식견이 높아진
그를 보고 놀라자 여몽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선비가 사흘 동안 보이지 않다가 나타났을 때에는 당연히 눈을 비비고 다시 봐야 합니다'.
 
기존의 사극을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낸 '황산벌'은 계백과 김유신의 징하고 거시기한 사투리
덕분에 오히려 낯선 영화로 신선하게 다가왔었지만 여러모로 완성도가 아쉬운 영화였다. 
2005년의 대미와 2006년의 서두를 멋지게 열어 제낀 - 원작 김태웅의 연극 '爾' <이> -
[왕의 남자] 로 돌아온 '황산벌'의 이준익 감독이야 말로 여몽의 '괄목상대(刮目相對)' 를
절로 떠올리게 한다.
 
 
광대판이 벌어지고 나면 늙은 대감들의 성적 노리개감이 되곤 하는 공길의 손을 잡고 장생은
한양으로 도망가기로 결심한다.  한양에서 육갑패거리와 의기투합하여 임금인 연산과 장녹수의
행실을 풍자극으로 꾸며 인기를 모으던 그들은 연산군의 관심을 사게 되어 궁궐로 진출한다.
그러나 그들을 궁으로 불러들인 내시의 우두머리 처선의 정치적 음모로 장생의 광대패는
정치적 꼭두각시로 전락하게 되고 공길은 왕의 총애를 받게 되는데...
 
영화 [왕의 남자]는 '계급에 관한 영화' 이다.  왕은 그 존재함에 있어 위가 없는 최상위 권력자
이고 광대는 천하디 천한 상것 들 중에서 가장 아래이다.
왕은 모든 것을 가졌으나 공신들의 견제에 옭매여 괴롭고,  광대는 아무것도 가진것이 없으나
너무나 천해서 오히려 표현과 행동에 거침이 없다. 
 
정치적 한계에서 오는 답답함과 선왕의 업적으로부터 오는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수많은
후궁들과 기생출신 장녹수의 사타구니를 탈출구로 삼던 연산군. 
장생 패거리의 탈춤판을 통해 자신의 억눌린 욕구를 분출하는 한 편, 아름다운 외모의 남자,
공길을 사랑하게 되면서 두 사람은 알 수 없는 연민과 동정을 함께 하게 된다.
 
물처럼 흐르는 시간 그 어디에 마디가 있어서 이렇게 한살씩 잘라 붙혀지는지 모르나
사람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자유를 잃어간다.  어릴적엔 책임질 일이 없으니 광대처럼 마음껏 풍류
하고 마음대로 말할 수 있었으나 나이만큼  책임이 생기고 양손에 딸린 식구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연산군 처럼 직장에서건 사회에서건 속내를 말하는것 조차 마음먹은대로 하지 못한다.
대중은 그러한 답답함을 대신할 광대를 원하게 되고 그 광대는 때론 영웅이 되기도 하지만
장생 패거리 처럼 꼭두각시로 전락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기도 한다. 

장생과 임금.   두 사람의 관계는 관객의 입맛과 자유로운 표현사이에서 방황하는 감독과,
자기만의 잣대로만 바라보는 관객의 관계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극단의 날 끝에 서 있는 두 계급이 한편으론 맞닿고 한편으론 여전히 융화되지 못하는 기묘한
설정속에서 영화 [왕의 남자]는 매우 설득력 있고 매혹적인 상황을 끝없이 만들어 내면서
웃음과 감동을 짜임새 있게 그려낸다.
 
원작이 탄탄해서 기본적인 뼈대가 좋았다고 하더라도 관객에게 얼마나 공감을 얻느냐 하는것은
또 다른 문제일진대 감독은 그 좋은 뼈대위에 흠잡을데 없는 멋진 작품을 탄생시켰다. 
(원작에서의 동성애 코드는 남자들 간의 서로에 대한 연민과 아픔을 보듬어 주는 내용으로 
선회시키면서 보다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비현실적인 외모로 현재 네티즌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공길역의 이준기는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고 '그것이 알고 싶다'의 배우 정진영 또한 그의 연기력에 방점을 찍을 만했고
최근 물오른 연기를 선보이는 감우성도 이 육중한 영화의 중심에서 안정적인 줄 타기를 하고 있다.
(감우성은 외줄타기 장면의 상당 부분을 실제로 해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마지막 장면, 중종반정이 일어나는 찰라,  장님 타령을 즐겨하던 장생은 두눈을 잃은 상태로
외줄을 타면서  "그렇게 눈이 멀어서 볼 걸 못보고, 어느 잡놈이 그 놈 마음을 훔쳐가는 걸 못 보고,
그 마음이 멀어져가는 걸 못 보고,  그 마음 훔쳐간 잡놈도 불쌍하고, 너무 늦게야 알게된 나도 불쌍하여.."
사설을 읊조리고 공길은 울부짖으면서 다시 태어나도 '광대'로 태어나겠다고 외치는 장면은
차곡차곡 쌓아온 영화의 무게를 한 점 새어나감 없이 고스란히 감동으로 전이시키는 놀라운 내공을
선보인다. 

특히 연산군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그림자극 장면이나 패왕별희를 연상시키는 가극장면, 그리고
마지막 장면의 장생의 사설은 두고두고 기억될 만한 명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영화를 보고나서  얼마나 가슴이 답답하고 막막하던지.. 
늘 목말라하지만 점점 내 손을 떠나가는 자유라는 것.  나는 단 한번도 원한적이 없는데도 나이를 먹으면
책임이라는 것과 맞교환되어져 가는 나의 자유. 
 
그러나 나는 광대가 될 지언정 꼭두각시는 되지 않으련다.  얼쑤! 
 
Filmania  cropper

(총 0명 참여)
countcar
리뷰 너무너무 잘 읽었습니다^^ 여태까지 쓰신글 많이 봐왔는데 이번에두 공감 팍팍! 가네요^^   
2006-01-07 17:28
milky226
마지막 대사는 혹시 연극대본에 있는거 아니에요? 영화에는 없는대사^^   
2006-01-05 12:25
silriver23
그 마음이 멀어져가는 걸 못 보고, 그 마음 훔쳐간 잡놈도 불쌍하고, 너무 늦게야 알게된 나도 불쌍하여.." 이런 대사는 없었는대요???   
2006-01-04 23:44
nachnine
마지막 장면 ... 뛰어오르는 장면 줌인 한것과, 그 이후의 상상 ... 정말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_-bbbb   
2006-01-02 18:32
1


왕의 남자(2005)
제작사 : (주) 씨네월드, 이글픽쳐스 / 배급사 : (주)시네마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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