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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과연 정의로운가? 야수
kharismania 2006-01-04 오후 8:09:14 1487   [9]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봐야 세상을 알게 된다고 한다. 융통성없는 절제와 규율이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는 그 밀폐된 체계안에서의 생존이야말로 사회의 비열한 처세술에 대한 극단적인 지침서가 아니던가. 있는 성격 없는 성격 다 죽인 채 참고 견디며 버틴 2년여의 시간동안 어린 시절 멋모르고 갈고 닦았던 날카로운 자존심이 억압과 통제된 질서에 닳고 닳아 결국 무뎌딘 끝에 남겨진 생존력은 타인의 권위앞에 길들여질 수 있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회성으로 거듭난다. 말 그대로 사회 생활 잘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명분과 정의는 그 자체로도 무언가 빛이 나지만 쉽게 얻을 수 있는 진리는 아니다. 추악한 만용과 위선적인 거짓이 흐르는 하수도같은 내면이 방출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탁해지는 것이 아름답고 살만한 세상의 위선적 가면 속 표정 아닌가. 명분과 정의는 밤하늘의 별과 같다. 손에 소유할 수 없는 아득한 진리는 곁에 맴도는 삶의 실용성있는 거짓과 가식만 못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으니까.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세상에 길들여져 가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길들여지지 못한 이들은 결국 낙오자라는 오명과 함께 격리되고 폐기되는 것이 다수를 위한다는 이 사회의 오만한 변명이 제시하는 선택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우리가 학창시절 도덕과 윤리 교과서를 통해 배운 아름다운 이 세상은 사회에 한발자국 내미는 순간 신기루처럼 흩어진다. 진리는 있으되 그것이 통용되지 않는 세상의 편법이 옳은 길보다 빠르고 쉬운 길로 가는 방법으로 손을 내밀게 되는 것에 익숙해지는 세상의 비정한 정의일지도 모른다.

 

 야수는 거칠다. 그 거침은 타고난 짐승적 본능이다. 야수는 타협할 줄 모르고 필요에 따라 몸을 사리지도 않는다. 그저 공격적인 눈빛을 머금고 자신의 영역에 침범한 상대를 응징할 발톱을 세우고 이빨을 드러낸다. 야수는 난폭하지만 그 난폭함은 순수함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는 자신의 순수성이 길들임을 강요하는 세상에 대한 공격성으로 돌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순수한 정의에 대한 열정으로 세상의 비열한 타협에 거칠게 저항하는 야수같은 두 남자의 이야기를 털어놓아 볼까한다.

 

 장도영(권상우 역)은 거칠고 터프한 형사다. 그의 앞에 놓인 먹잇감은 죄다 물어죽여야만 직성이 풀리는 본능적인 공격성으로 무장한 그는 야수적인 본능 그 자체만으로 세상을 거칠게 표류한다. 그러나 그의 스페셜해 보이는 인생은 그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 형사로써 배다른 동생을 감방에 보내야 했고 병원에서 인생의 마지막날을 기다리듯 살아가는 의붓어머니를 간병해야 함과 더불어 마련할 수 없는 수술비는 그와 행복이란 단어의 거리를 아득하게 벌려놓는다. 행복은 단지 타인의 이야기처럼 의미없이 맴돌뿐.. 

 

 오진우(유지태 역)는 독단적이면서도 정의로운 검사다. 그는 자신이 노린 먹잇감을 배회하며 슬슬 기회를 엿보고 타이밍을 재며 서서히 숨통을 죄다가 기회가 오면 공격을 감행하여 승리를 차지하는 그는 지능적이지만 자신의 정의를 위해 타협하지 않는 야수적인 고집으로 세상의 더러운 물살을 가른다. 하지만 그는 결국 세상의 오염된 정의에 의해 상처를 입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다시 한번 전투를 감행한다. 오로지 자신의 본능적인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두 사내의 이야기를 통해 영화는 우리에게 이 세계의 정의에 대한 물음표를 던진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비정한 이 세계의 조악함과 그러한 현실 안에서 비굴하지만 천연덕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조롱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학창시절 12년에 충분히 배웠건만 지행이 불일치되는 이 사회의 오류는 과연 어디서 기인하는지 영화는 관객의 멱살이라도 잡을 듯이 거칠게 묻고 묻는다.

 

 특히나 가식적인 웃음으로 사회와 맞닿은 채 여전히 사회의 그늘에서 힘을 과시하는 유강진(손병희 역)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은 이 사회의 더러운 속내를 여과없이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볼 수 있다. 정의를 좇는 사람들이 몰락하고 타협에 쉽게 손내미는 사람들이 출세하는 이 세상의 비정한 현실앞에서 관객들은 쓴웃음을 삼킨채 세상에 대한 분노를 머금게 된다.

 

 물론 영화가 극단적이긴 하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을 보라. 과연 이 사회가 정의롭다고 말할 수 있는가. 부정한 방식으로 재산을 긁어모으고 권력을 차지한채 그 부귀영화를 지키기 위해 젊은 날 정의를 외치던 사람들의 목숨을 쉽게 거두어 간 사람들이 오늘날까지 떵떵거리며 사는 우리 세상의 정의가 올바르던가. 웃음으로 포장된 채 암묵적인 커넥션으로 몇몇 사람들만의 이기적인 행복을 위해 다수의 불행을 방관하는 이 사회의 행태가 바람직하던가. 이 영화에 공감할 수 있음은 힘과 권력에 어쩔 수 없이 길들여진 채 단지 소주한잔에 불공정한 현실을 원망해 보기도 하지만 불만을 토로하기엔 힘도 권한도 없기에 막연히 묵인해왔던 이 세계의 비뚤어진 정의에 대한 봉인된 불만이 내재된 우리의 감성일지라.

 

 그리고 두 사내가 그러한 세상의 가식적이며 이기적인 정의에 거칠게 저항하며 무모한 공격을 감행하는 것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자신이 할 수 없었던 행위의 표출에서 대리만족을 느끼고 기대감을 품게 된다.

 

 이 영화는 사회적인 문제제기와 더불어 개인적인 감성 표출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장도영의 개인적인 삶 안에서의 아픔과 오진우의 상처입은 감성이 보여주는 삶의 희비를 여실히 보여준다. 본인의 분노를 머금은 정의가 계속해서 좌절되는 장도영의 비극적 운명은 하루만의 행복이나마 꿈꾸던 그에게는 억울한 현실이다. 그리고 자신의 행복조차도 잊고서 매달리는 개인적인 복수심에서 비롯된 정의에 대한 뜨거운 집착적 열망은 자신의 기구한 인생이 열망했던 행복의 비실현에서 비롯된 복수의 의지이다. 또한 정의를 실현했다고 자부했던 오진우는 현실에서 깊게 뿌리내려 박힌 비리로 연결된 의리가 보여주는 힘에 의해 내팽개쳐진 후 상처입은 자존심의 치유를 위해서 눈을 부릅뜨지만 사회가 통용하는 방식으로의 저항은 다시 그를 사각으로 밀어넣는다. 두 인물이 지니는 비극적 정서와 현실은 영화의 전체적 맥락과 함께 맞물리며 전체적인 정서의 바다를 이루는 강줄기가 된다.

 

 상처입은 짐승은 위험하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듯이 생존의 본능이 목까지 차오르면 생명을 담보로 한 공격을 감행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영화의 최후반 부분에서 역할이 바뀌듯 보여지는 장도영과 유강진의 상황대치는 상당히 극적인 효과를 준다. 이 사회가 농락하고 있는 와전된 정의에 대한 극단적인 표출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해냈다. 또한 결말부에서 보여지는 오진우의 극적인 변화는 영화가 보여주고자 했던 본론적 기질이 아닐까싶다. 개인적인 신념을 위해서 반칙하지 않고 정당하게 싸우던 오진우가 오히려 자신이 믿던 법의 테두리 안에서 몰락하고 얻게 된 것은 잠재되어 있던 야수적인 공격본능 뿐이었다. 그리고 남은 건 그 공격력의 발휘 뿐..결말은 통쾌하지만 오진우의 엔딩 크레딧 너머의 표정만큼 씁쓸하다. 어둠에 빛을 드리우기 위해서 빛이 되려 했으나 빛을 잃은 그의 깨달음은 결국 더욱 어두워짐으로써 어둠을 누르는 것 뿐. 결국 영화의 결말은 사회의 정의 구현을 위해서는 사회를 휘어잡고 있는 그릇된 가치관에 정당한 대응보다는 암묵적인 폭력을 동반한 편법적 대응만이 가능하다는 어두운 가르침을 던져준다.

 

 영화는 묵직하면서도 과격한 액션과 함께 비극적 느와르의 감성을 보여준다. 붉은 핏빛 정서가 화면을 압도하는 잔인함도 종종 눈에 띄지만 영화의 감성 표출에 시너지 효과를 줌으로써 적당한 필요악으로 보여진다.

 

 영화의 결론은 공감할 수 밖에 없는 현실성을 느끼게 해준다. 대부분의 영화는 선이 이기고 악이 패배하는 권선징악의 논리가 지배한다. 그리고 항상 선의 입장은 명분만큼이나 정당하고 바람직한 방식으로의 승리가 대다수다. 하지만 이영화에서 보여지는 처절한 승리는 통쾌함보다는 처연한 좌절감이다. 아름다운 승리는 스포츠에서나 찾아라. 시궁창의 쥐를 잡기 위해서는 시궁창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씁쓸한 논리가 이 영화의 결말이 보여주는 마지막 독백이며 오진우의 마지막 쓴 웃음은 관객이 짊어져야 하는 이 사회의 오염된 정의에 대한 숙연한 슬픔이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인상적이다. 특히나 권상우의 연기변신은 놀라울 정도다. 항상 현실적인 캐릭터 안에서 평이함의 강도차만 있는 캐릭터에서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 연기로의 변신은 변신이 아닌 진화라고 표현해 주고 싶을 정도이다. 또한 영화의 악역으로 등장하는 손병호의 연기는 중견배우로써의 관록과 더불어 조연배우로써의 완벽한 서포트를 보여준다. 유지태의 연기 또한 괜찮은 형세이나 권상우의 놀라운 변화에 빛이 바래는 형국이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결말의 비장한 서정미는 상당한 의미로 다가온다.

 

 또한 신인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상당히 흥미롭다. 디테일하면서도 전체적으로 큰 형상을 띠는 비범하고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완성한 감독의 재능은 상당히 만족스럽다. 동명이인의 유명 감독이 있지만 어쨌든 김성수 감독은 나름대로 전체적인 영화의 짜임새를 완성적으로 다지면서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른 느낌이다. 물론 관객동원에 대한 결과는 지켜봐야 알겠지만..

 

 이 영화를 보면 세상에 대한 분노가 차오른다. 우리가 믿고자 했던 살만한 세상보다는 애써 외면하고자 했던 더러운 세상을 현실로 끌어낸 영화다. 힘과 권력이 대우받는 있는 자들의 세상. 그리고 그러한 세상을 흔들어보려하는 거칠지만 순수한 두 사내의 이야기에서 서글픔이 느껴지는 건 영화의 결론처럼 쉽지 않은 현실이기 때문에. 또한 그런 더러운 세상에서 나름대로 잘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 모습에 대한 자족적 모멸감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이영화에 귀추가 주목되는 것은 흥행적 기대감의 실현도인데 한국영화 빅 3로 꼽혔던 태풍의 힘이 내실부족으로 소진해버렸고 구설수에 휘말려 추락해가는 청연의 현실에서 볼때 야수는 마지막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고 있다. 이런 면에서 야수의 관객동원력에 대한 기대감 또한 영화가 주목되는 이유라고 볼 수 있겠고 영화의 질은 일단 합격점을 보이는 듯 하다. 다만 영화의 폭력성이 다소 과격하고 여성 캐릭터보다는 남성 캐릭터에 포커스가 맞추어진 영화라는 점에서 관객의 성향에서 제약조건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은 약점으로 작용될 수도 있겠다.

 

 어쩄든 이 영화에 대한 느낌을 가장 와닿게 표현한다면 국회의사당을 폭파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우리네 심정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우리는 야수가 아니라서 그럴 수는 없겠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지녀봤을만한 심정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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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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