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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뻐 너를 만난 것이 봉자
redface98 2006-01-30 오후 7:46:49 1891   [2]

감독 - 박철수 / 배우 - 서갑숙, 김진아 / 시간 - 92분 / 개봉 - 20001125


 하루종일 눈을 기다리다 영화를 봤다. 이제는 구식이 된 10년 전 구입한 비디오데크에 비디오를 집어넣고 한창동안 사용하지 않아 어디다 두었는지 모르겠는 리모컨을 찾다가 포기한 채 비디오데크 앞에 쪼그리고 앉아 영화시작 전까지 빨리감기 버튼을 눌렀다. 영화사 시작되고 나는 소파에 몸을 깊이 묻었다.

 

 박봉자라는 여자가 주인공이었다. 봉자는 서른 중반을 넘은 듯 보였고 허름한 아파트 지하방에서 혼자 살았다. 봉자는 김밥집에서 김밥을 말았고 그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김밥 마는 일은 그녀에게 생계수단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봉자는 좋게 말하면 순수한 여자였고 나쁘게 말하면 백치같은 여자였다. 유에프오21이라는 사이비종교단체에서 무언가를 절실히 기다리며 교주 앞에 벌거벗고 앉아있는 여자였다.

 

 그런 봉자의 집에 자두라는 여자애가 제멋대로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자두는 어렸고 깡말랐으며 자유분방해 보였다. 가끔 몸을 팔았고 고정적인 일자리는 얻지 않았다. 자기 말로는 사람도 죽여봤다 하고 아기도 낳아 봤다 하는데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봉자와 자두에게 화를 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들에게 무턱대고 화를 내기에는 봉자는 너무 바보 같았고 자두는 날개 대신 고슴도치 바늘을 달고 있는 작은 나비 같았다. 그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한다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그들은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야했다. 우리 울까? 그래. 영화의 마지막 장면, 무릎을 세우고 나란히 언덕에 앉아 엉엉 울고 있는, 봉자, 자두, 그리고 나. 같이 울고 있으니까 좀 시원해진다. 영화 내내 나는 이 장면만을 기다려온 것 같다.

 

 이 영화가 그렇게나 욕먹을 영화였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개봉 당시 평단과 관객 모두가 외면했던 기억이 난다. 언제나 박철수 감독의 영화는 사랑받지 못하는 것 같아 나는 조금 안타깝다. 그래도 어쨌거나 이 감독은 꿋꿋이 자기만의 영화를 만들어 낼 거라는 확신이 든다.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꼭! 꼭!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OST다. 나는 이 영화가 나왔을 때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OST만은 잽싸게 샀던 기억이 있다. 이상은이 음악을 맡은 이 영화의 OST는 내가 가장 아끼는 앨범 중 하나다. 영화만큼이나 독특하고 이질적인 멜로디와 가사. 이상은의 음악적 색채가 다분히 묻어나는 초록색의 앨범이다.

 

 영화가 끝나고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았더니 그새 눈이 내려 쌓였다. 축축한 눈가를 문지르며 밖을 내다보고 있자니 나는 과연 행복한가? 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저기 엉거주춤 걸어가고 있는 사람은 행복한가? 가방을 매고 터덜터덜 아파트 단지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저 학생은 행복한가? 모두들 봉자처럼, 자두처럼 서글퍼 보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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