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진부하다면 진부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남자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면 그건 어쨌든 진부해도 적어도 나에게는 의미 있지 않겠어? 나는 좀 더 그 남자를 알고 싶었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붉게 떨어지는 해를 멀리 걸어두고 사람들이 모두 떠난 무거운 모래 위에 누워 서서히 검어지던 그 남자의 숨 없는 실루엣을 가만히 보고 있는데 같이 영화를 보던 녀석이 “뭐야, 이 영화 진부하네.” 라고 말한 거야. 거기에 동조하지 않으면 나도 진부한 사상자로 같이 묻혀버리는 것일까? “나는 좋았는데.” 어쨌든 나는 좋았거든. 뭐가 좋았냐면, 죽기 전 두 달 동안 남자가 보여준 정말 미묘하지만 분명히 다른 표정들하고 삶이란 어쩌면 이다지도 단순한 것이다 라고 말하는 빠르지 않은 카메라 워크하고 이런 사랑도 이런 애정도 아름다운 것이란 걸 숨기지 않는 주제의식하고 두 달 남은 삶을 담아낸 길지도 않은 런닝타임까지. 영화가 진부한 게 아니라, 삶과 죽음이란 어차피 진부한 거 아냐? 결국 사는 건 진부하게 울고 웃고 진부하게 싸우고 화해하고 진부하게 춤추고 노래하고 진부하게 죽도록 사랑한다고 외치다가 진부하게 죽음을 맞는 거라구. 어쨌든 다시 말하면 “나는 좋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