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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실있는 승차감으로 관객을 모시는 짜릿한 영화 이니셜 D
kharismania 2006-03-01 오전 1:20:44 1034   [4]

 한밤중 귀를 찢는 듯한 엔진음과 함께 도로를 무섭게 질주하는 폭주족을 보며 혀를 찬 기억이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속도감이란게 타인이 아닌 본인의 경험으로 다가온다면 나 역시도 그 속도감에 빠져들지 않으리라는 확신은 생기지 않았다.

 

 질주 본능은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그 질주 너머에 아른거리는 삶의 안정에 대한 두려움이 그러한 본능에 제동을 거는 것 뿐. 사실 꽉 막힌 도로위의 정체된 차안에서 한숨을 쉬고 있을 때는 누구나 다 몇년전 TV 광고를 통해 소개된 독일의 속도 무제한 고속도로라는 아우토반을 꿈꿀 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래서 레이싱 게임을 즐기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을 대리만족하기 위해서 우린 게임을 즐기곤 한다. 그리고 그 가상현실에서의 완성. 즉 스테이지의 클리어를 통해서 우리는 짜릿한 성취감을 느끼고 좀 더 몰입하게 된다.

 

 이니셜 D. 솔직히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다면 이 영화의 원작이 큰인기를 누린 레이싱 만화라는 것 그리고 그 만화는 PS 등의 게임으로써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것. 그리고 그 만화와 게임을 바탕으로 영화화된 작품이라는 것. 이러한 정보를 얻고 나면 영화에 대한 이미지는 간단해진다.

 

 일단 이런 레이싱 영화가 주는 이미지는 말 그대로 짜릿한 속도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속도감이라는 게 영화에서 백날 빠르다고 노래해봤자 그것이 관객에게 느껴지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것. 그리고 단지 레이싱 그 자체로만 승부하는 영화는 생각보다 단순해지는 약점을 지닐 수 있다는 것.

 

 일단 이 영화의 제목인 이니셜 D의 'D'는 Drift의 약자로써 이는 빠른 속도를 유지하는 레이싱 카가 코너를 돌때 미끄러져 나가는 차체가 바닥에 붙듯이 차체의 안정과 동시에 속도감 또한 유지한 채 직선도로를 만날 때 속도 저하를 막고 그 속도를 더하는데 어려움을 덜기 위한 레이싱의 고급 기술을 뜻한다. 말 그대로 드라이빙 테크닉 그 자체가 제목이 되는 이 영화는 레이싱 그 자체의 이미지에 결박하는 명백한 목적성을 드러낸다.

 

 일단 이 영화에서 눈에 띄는 측면은 영상이다. 이 영화의 영상은 상당히 감각적이다. 둘, 셋 그리고 좌우, 상하로 쪼개지며 배분되는 화면 구성은 마치 게임의 한장면을 마주하는 것과 같은 흥미가 느껴진다. 또한 레이싱 장면에서 차량의 속도감을 리얼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카메라의 앵글을 차체 그 자체에 집중시키는 현란한 카메라 워크는 레이싱 장면을 상당히 감각적으로 묘사하며 박진감있는 연출을 통해 코너링과 주행 자체에서 느껴지는 긴박한 흥분의 속도감이 관객에게 전달되는데 큰 기여를 한다. 또한 액셀과 브레이크 사용과 클런치와 기어 조절의 타이밍적 밸런스 등 드라이빙 테크닉이 속도감있는 레이싱 장면에서 탁월하게 보여지며 레이싱 자체의 속도감위에 레이서들의 절묘한 긴박감을 깔끔하게 버무린다.

 

 이 영화가 어필될 수 있는 것은 주인공인 타쿠미(주걸륜 역)의 성장에 있다. 그의 막연한 재능이 아닌 자의는 아니지만 일상적으로 체득된 연습을 통한 능력이 하나하나씩 드러나며 인정받게 되는 과정에서 오는 통쾌한 재미는 이 영화가 내미는 또 하나의 인상적인 여유다. 특히나 마치 게임의 스테이지가 넘어가듯 거듭되는 레이싱에서 점점 강해지는 상대를 눌러가는 그의 대결은 게임의 그것에서 느껴지는 흥분과 맞닿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영화가 단지 레이싱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추었다면 영화는 그 자체로 머물렀을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레이싱이 아닌 인물, 즉 타쿠미에 포커스를 맞춤으로써 단지 오락용 즐거움 이외의 여지를 남긴다.

 

 레이싱은 타쿠미의 꿈이 아니지만 그가 레이싱에 애정을 지니게 되는 과정은 젊은 날을 보내는 평범한 젊은이들이 꿈을 찾아가는 모호한 여정과 다를바가 없다. 자신의 일상에서 발견되는 재능을 통해 아득한 꿈을 발견하며 미래를 내다 보던  우리네 과거나 현재에 상주하던 고민과 기대감이 극중 타쿠미를 통해 느껴지는 몽롱한 향수적 감성이다. 또한 사랑과 꿈이라는 빛나는 별에 대한 판타지가 살아있던 젊은 날의 감수성과 도전과 실패, 사랑과 이별, 극복과 성장의 투명하면서도 아른한 경험이 불완전하지만 순수한 젊은날의 열정과 맞물리며 이 영화에 은은하게 뭉뚱그려져 펼쳐진다.

 

 이 영화는 상당히 깔끔하면서도 명료하다. 이 영화에서 느껴지는 영상적인 퀄리티 그 자체는 만족스럽고 이 영화의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담백함은 흐믓하다.

 

 또한 이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중화권의 올스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쿠미 역의 주걸륜, 료스케 역의 진관희, 타케시 역의 여문락, 쿄이치 역의 진소춘 그리고 분타 역의 황추생 등 홍콩의 내노라하는 영건들과 노장 스타들의 연기조합은 상당히 돋보인다. 최근 데이지의 개봉을 앞두고 국내에서 주목받고 있는 유위강 감독과 함께 무간도를 통한 홍콩 느와르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알렸던 맥조휘 감독이 다시한번 뭉쳤다는 것 그 자체로도 영화는 흥미롭다.

 

 또한 원작 만화가 일본을 배경으로 했고 출산지도 일본이기에 이 영화의 주인공은 모두 일본인 이름을 하고 있지만 이 영화에서 일본인 배우는 나츠키 역의 모기 스즈키밖에 없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일본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광동어를 쓴다는 것.

 

 어쨌든 이 영화는 단순히 속도에 환장하는 철없는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속도감에 대한 무모한 도취가 아닌 속도감에 대한 야심찬 도전을 꾀하는 젊은 열정이 이 영화에 녹아있다. 이 영화는 눈으로 보여지는 것 이상의 즐거움이 있다. 우리가 게임을 즐기는 것은 현실에서 이뤄지기 힘든 상상의 가상적 절충에도 있지만 그 상상 자체에 대한 즐거움의 구체화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상상이라는 것은 꿈이라는 단어와도 일맥상통할 수 있다. 꿈이라는 것도 상상이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판타지가 아니던가. 다만 그 판타지는 진지한 열망을 안고 그 열기의 지속성을 지닌다는 것에 우리가 뜬 구름 잡듯이 놓치는 백일몽같은 상상과는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이 영화는 꿈을 머금고 달린다. 젊은 시절 누구나 겪었던 사랑과 꿈에 대한 아련한 추억의 성장통이 이 영화에 깔끔하게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그 아련한 기억은 이 영화의 감각적이고 시원한 영상적 재미와 공존하며 영화의 외면적인 화려함을 적당한 내실로써 지탱한다.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장점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영화다. 지나친 속도감보다는 내실있는 균형감각으로 질주하는 영화의 승차감이 관객에게 안정적인 짜릿함을 선사한다. 다만 이 영화를 보고 레이서의 포부를 안고 산길에서 맹연습을 한다면 조금 걱정스럽겠다. 물론 인생에 미련없는 당신이라면 걱정없겠지만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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