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마지막을 보면 영화 내내 할리우드 영화답지 않게 감성적으로 유지돼 왔던 감독의 메시지가 이토록 허무하게 무너져야 하는가를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무엇인지는 보시면 알게 됩니다. 결국, 이렇게 인종갈등의 문제를 가볍게 마무리하는 걸 보면 [크래쉬]에 대한 평론가들의 평은 확실히 과장된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우연히 이 영화의 주요 출연자들이 나와 자신이 경험한 인종편견의 다양한 사례를 가지고 활발하게 토론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이었는데, 자신도 모르게 자기 안에 존재하는 편견과 오해를 드러내 돌이켜보게 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명작이라고 마무리 하더라구요. 배우들의 솔직한 얘기도 마음에 들어 영화에 대해 신뢰를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막상 본 영화는 너무 쉽게 감정에 치우치는 대사가 툭툭 튀어나오고 음악으로 감동을 주려는 의도도 엿보이며, 한편으로는 진지한 구석도 있어서 단순한 성격의 작품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인종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흑인을 보살펴주다가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 안에 있던 편견을 드러내 사고를 저지르는 백인 경찰의 모습에서 잠시나마 진정성이 있어 보이기도 했었죠.
그러나 이내 그 믿음은 사라졌습니다. 미국의 백인과 흑인만 화해하면 만사가 오케이라도 되는 듯한 장면. 미국판 우물안 개구리 영화로 전락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난데없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는 갈등, 그것도 아주 우습게... 미국 관객들에게는 좋았을지 몰라도 이건 아닙니다. 끌끌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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