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이글을 읽기로 한 당신의 오해를 확인하고 싶다. 혹시 이 영화의 전작인 원초적본능을 보지 못했다면 그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편견에 빠져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샤론스톤의 육감적인 매력을 내세운 에로틱한 영화라는 생각에 이 영화를 거부했다면 후속작을 보고 무언가 놓쳤다는 기분이 들 것이다.
솔직히 필자가 한때 그랬다. 필자도 원초적 본능이라는 영화가 단지 외설적인 장면으로 채워진 도색영화라고만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 영화학도를 꿈꾸는 친구로부터 권유받고 빌려본 비디오테잎에는 성적 판타지에 대한 거부감 이면의 은밀한 기대감 이상의 쓰릴러적 긴장감이 가득했다.
그렇다. 이 영화는 단지 샤론 스톤이 다리를 꼬는 장면으로 유명세를 탔다는 것만으로 이야기를 끝낼 영화가 아닌 것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끝을 알 수 없는 이야기의 묘한 긴장감이 굴절된 성적 욕망과 결부하면서 영화자체를 육감적인 쓰릴러로 완성시킨 것이었고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그것에 열광했던 것이다.
어쨌든 형은 이미 전설적인 존재가 되었고 아우가 나섰다. 형만한 아우없다는 공식은 종종 깨지곤 하지만 여전히 그 공식은 통계론에서 압도적인 우세를 보인다. 과연 이 영화는 그러한 공식의 또다른 전례가 될 수 있을까.
시작부터 이 영화는 성적심리를 자극한다. 180km로 달리는 차안에서 애무를 즐기는 캐서린 트라멜(샤론 스톤 역)은 전작에서도 출연했던 그녀다. 이 영화는 전작과의 동질적인 분위기 연출을 표방하면서 영화의 중심 포석이 되는 그녀를 그대로 재현했다. 그리고 그녀는 여전히 지적이며 도발적이고 육감적이다. 솔직히 이는 놀랍다. 캐서멜 트러멜이 놀라운것이 아닌 그녀를 연기하는 샤론 스톤이 놀랍다. 이제 50세의 나이를 목전에 둔 여자의 벗은 몸앞에서 침을 꿀꺽 삼킬 수 있다는 사실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물론 세월앞에 장사없다는 말처럼 그녀도 예전만 못하지만 그녀의 나이를 생각했을 때 지금의 모습은 비슷한 나이의 여성들에게는 믿을 수 없는 사실로 여겨질 정도일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이 영화가 그녀에게 완전히 기대고 있다는 것. 이 점은 전작과의 비교선상에서 이 영화가 가치하락으로 폄하될 수 밖에 없는 아쉬움이다. 전작은 그녀의 뇌쇄적인 팜므 파탈적 매력과 더불어 몽환적이면서도 빈틈없는 쓰릴러적인 긴장감이 팽팽하게 공존했다. 성(性)이라는 본능적 코드가 쓰릴러라는 세밀한 긴장감과 만났을 때 극대화되는 자극적 밀도의 응집력이 두재료의 궁합의 긴밀함을 제대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후작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영화는 시종일관 캐서린 트러멜 그녀로부터 시작해서 그녀로 끝난다. 그녀가 짊어진 이 영화의 무게는 그녀의 시건방진 미소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악녀적 카리스마로만 해결되기엔 버거워보인다. 그녀의 늘어버린 주름살에 대한 한탄이 무너지는 영화의 기대감에 대한 한탄으로 번진다.
전작이 압축된 상징성으로 은밀하면서도 노골적인 유혹적 긴장감을 발산했다면 이 영화는 다소 장황한 설명과 늘어지는 호흡으로 긴장감을 이완시킨다. 전작이 보여주었던 은유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대사와 상황 묘사가 부여하던 상상할 수 있는 재미에 비해 후작은 친절할만큼 관객에게 쉽게 쉽게 상황을 읽어준다. 관객은 영화의 전개가 궁금할 뿐 앞서나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영화가 보여주는 상황만을 인지할 뿐. 아찔했게 지속되던 유혹보다는 충동적인 성적 욕구만이 즐비하고 냉정하면서도 강약을 조절하던 이야기는 단조롭게 진행만을 거듭한다.
어쩌면 전작을 보지 못한 이들에게 만족스러울지도 모를 영화다. 영화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캐서린 트러멜이라는 캐릭터가 지니는 묘한 매력도 어필될만하고 쓰릴러라는 장르자체만을 염두에 두었을 때 무난한 수준은 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영화는 전작을 등에 업은 후작이고 그 후광으로 인한 기대감만큼이나 실망감에 대한 질타를 받아도 할말은 없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어쩄든 전작에 대한 기대는 버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적어도 전작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짊어지고 이 영화를 보게 될 당신이라면 말이다. 그래도 학창시절 18금(禁)의 딱지안에서 모호한 상상력을 자극하던 여신같은 그시절 누님에 대한 야릇한 추억을 지닌 이들에게는 이 영화는 눈물나게 반가울지도 모르겠다. 물론 빨간딱지에 이끌린 그들이 확인한 것은 에로영화 이상의 쓰릴러였겠지만.
분명한 것은 국내 심의를 치르는 체통높은 어르신들에 의해 잘려나간 영상들에 대한 의아심인데 이 영화의 홍보과정이나 18세 이상에게 허락된 예고편에 등장했던 스리섬같은 강도높은 에로신은 거세되었다. 원초적 본능이라는 영화를 놓고 이야기했을 때 에로틱한 환상 또한 비슷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타영화와의 뚜렷한 차별성의 기회를 빼앗겼음도 살짝 아쉬운 감이 없진 않다.
어쩄든 전설은 부활했으나 새로운 전설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그래도 전작의 추억을 떠올리는데는 유용하다. 그것이 이 영화를 끌어안고싶는 유혹이자 이 영화에 겁탈당한 것만 같은 당혹감의 양면이다. 늙어버린 여신에게 올인해버린 영화는 그만큼 세월의 무게를 씁쓸하게 증명할 따름이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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