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3.20 서울극장 시사회
<주>이 글은 다량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내용을 알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읽는 것을 자제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한때 <아이 러브 스쿨>이라는 사이트가 엄청난 인기를 끌어던 적이 있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학창시절 친구들을 찾는다는 것. 생각보다 즐겁고 가슴뛰는 일이었다. 그나마 좀 성장한 중,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정말 철없고 어렸던 초등학교 시절의 친구들은 너무나 낮선,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친근감 있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재미있게도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을 만나 연인으로 발전하거나 결혼까지 골인한 케이스도 꽤 있었다. 철없는 풋사랑의 감정을 갖기도 했었지만, 뚜렷한 이성적 감정을 겪어본 적 없던 친구가 성장하고 난 뒤에 묘한 감정으로 다가온다. 거기에 이성을 처음 만날때의 긴장감은 옛친구의 친근감으로 쉽게 사라지는 것이다.
오랫동안 연락없이 지내던 코흘리개 친구들을 만나면, 이성적인 감정으로 변화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시간의 공백만큼, 변화한 모습을 받아들일 준비를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반면에 서로의 성장을 모두 지켜보며 그 느린 변화의 과정을 모두 지켜본다면, 서로를 이성으로 인정하는데 어색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지환'(권상우)와 '달래'(김하늘)은 이러한 미묘한 감정선상에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티격태격하지만, 서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오랜친구. 그들의 유쾌하고도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은 영화를 경쾌하게 끌어간다. 그들처럼 오랜 친구가 아니더라도, 친구로 지내는 이성이 하나쯤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이야기들은 공감을 이끌어내며 관객을 즐겁게 한다. 영화의 제목이 <청춘만화>인 것처럼, 에피소드들은 우리가 만화를 보면서 키득거리는 이야기들과 같은 즐거움을 준다. 거기에 무리없이 그들 각자의 연애담이 섞이면서 20대 초반의 수줍던 연애담까지 회상하게 한다. 그들의 우정을 슬쩍 질투하면서도 자신의 양말도 빨아달라고 조르는 '영훈'(이상우)은, 그 언젠가 만났던 서투른 연인의 투정을 떠올리게 한다.
다행스럽게도, 영화는 그들의 우정을 무리하게 사랑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영화가 끝날때까지 그들이 연인이 되었는지는 애매모호하다. 자신들의 감정이 우정이라 말하기엔 조금 더 깊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급작스럽게 끈끈한 애정으로 바뀌거나 하지는 않는다. 유독 두사람의 관계만은 초등학교 시절을 넘어서지 못하던 지지부진함이 사라졌을뿐, 그들의 관계는 자신들의 감정을 발견하고 인정함으로, 이후에 대한 유쾌한 가능성을 남김에 멈춘다.
'지환'(권상우)의 불행한 사고에 대해서도 비교적 담백하다. 갑자기 비극이 끼어들면서 "지금부터 눈물!"이라고 압박감을 주려는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80년대 만화에서 흔히 등장하던, 그 시절의 한국 영화에서 본듯한 급작스러운 비극과 방황은 필자를 당황시켰다. 개인의 성장과 관계의 성장을 위해 등장하는 것 치고는 지나치게 충격적인 불행이었기때문이다. 과연 대한민국의 청춘은 그런 불행을 겪기 전에는 성장할 수 없는걸까?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브레이크 풀린듯 신파로 빠져들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지환'이 사고 이후 처음 깨어나서 "아버지가 내 발 먹었어?"라는 말을 하는 순간, 관객은 감독의 주문대로 눈물을 준비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에서 다소 해방된다. 적절히 브레이크를 밟아준 이야기는 이 영화를 말 그래도 만화답게 만들어준다.
두 사람의 에피소드들이 메울수 없는 간극을 메워주는 것은 아버지 '이창호'역의 정규수이다. 주인공의 철없는 아버지로 간간히 웃음을 주는데 머무를까 예상했던 그는, 초반 에피소드들을 갈무리 해서 어수선하지 않게 영화가 진행될수 있도록 축 역할을 한다. (유난히 또박또박한 대사 전달력에 연극배우 출신이 아닐까 예상했는데, 검색해보니 역시나이다. 항상 문제시되는 권상우의 발음과 비교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주인공의 회상에 등장하는 귀여운 아역들과 달래의 남자친구역의 이상우 역시 잔잔한 재미를 준다.
영화는 '만화'를 제목에 붙이고 시작함으로써 많은 패널티를 얻는다. 관객들에게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대할것을 준비시키고, 비판의 여지를 줄였다. 그러나 요즈음의 만화들이 영화나 소설보다 더 깊은 고민과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음은 간과했다. 성장을 위해 불행을 끌어들인 것은 쉬운 선택이지만, 지금은 만화 역시도 쉬운 선택만을 하지는 않는다.
굳이 이 영화를 비난할 마음은 들지 않지만, 좋은 영화라고 부를 만한 여지도 없는 것은, 10년,20년 전쯤의 만화를 들춰보고 추억에 빠지긴 하지만 그때만큼의 감동은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and so on.
권상우 몸매는 역시나 볼만하더라.
하지만 도저히 바가지 머리는 용서가 안된다.
아무래도 이 영화는 명랑만화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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