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有[극중 나오는 인물이 너무 많으므로 그냥 배우이름으로 말하겠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작품상 수상을 하러 잭 니콜슨이 단상앞으로 올라왔을 때도, 그리고 후보들을 말할 때도 아무도 몰랐다. 잭 니콜슨이 "크래쉬"라고 외치자 오스카의 영웅은 "크래쉬"가 되었다. 8개 부분 노미네이트되어 최다수상이 예견된 브로크백 마운틴이나, 기술상을 사이좋게 나눠가진 킹콩과 게이샤의 추억도. 그리고 스필버그의 야심작 뮌헨도 아니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영광은 크래쉬였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놀라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과연 크래쉬가 오스카 작품상마저 거머쥘정도의 영화였을까? 오늘로써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오른 다섯 작품(브로크백 마운틴, 굿나잇 앤 굿 럭, 뮌헨, 카포트, 크래쉬)를 모두 다 관람하였는데, 솔직히 말해 브로크백 마운틴이 최고였다. 크래쉬. 왜 이 영화에게 작품상을 준 것일까?
브로크백 마운틴의 평을 쓸 때 오스카 작품상을 받은 영화는 적어도 나에게 실망을 시켜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 러 나. 크래쉬. 분명 훌륭한 영화다. 만약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오르기 전에 이 영화가 개봉되어 봤으면 별점이 하나 더 올라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나치게 기대한 탓일까? 크래쉬는 나에게 꽤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그 실망감은 "오스카 작품상"이라는 타이틀에서 왔을 뿐, 위에서 말한 것 처럼 영화는 훌륭했다. 숏컷부터 시작하여 매그놀리아, 러브액츄얼리 그리고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까지. 여러 사람의 군상을 한번에 잡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소재"이다. 크래쉬는 아시다싶이 인종차별을 주제로 잡고 있는데, LA란 도시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 이야기는 "역시 미국"이라는 말 밖에 안 나온다.
크래쉬엔 8명의 커플(?)이 나온다. 두 명의 흑인강도. 검사와 그의 아내. 한국인 부부. 흑인경찰과 히스패닉 여경찰. 열쇠수리공과 그의 딸. 부패경찰과 그의 파트너, 이란인 가족, 흑인인 TV드라마 감독과 그의 아내. 이렇게 8명의 커플은 엄청나게 복잡하게 얽혀있다. 사실 이들이 얽혀있는 관계를 늘어놓아도 거의 리포트 한권(!!)도 될 정도이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의 사고로 묶여 있는데 그것이 바로 "교통사고"(혹은 차사고)이다. 먼저 영화 시작에 나오는 차 사고는 라이언필립이 돈 치들의 동생인 라렌즈 테이트를 죽인 것으로 시작된다. 또, 텐디 뉴튼을 성추행한 경찰 멧 딜런은 텐디 뉴튼의 차가 사고가 나서 폭발하기 직전에 죽음을 무릎쓰고 텐디 뉴튼을 구한다. 또 한국계 운전사는 두 명의 흑인 강도의 차에 치여 병원에 실려가고 브레단 프레이져의 차는 그 흑인 강도에게 도둑맞는다. 결국 교통 사고(차 사고)의 충돌(크래쉬)에 의해 각 인종이 충돌 하는 것이다.
영화는 아주 많은 일을 벌여놓는다. 그것은 주인공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분명 아주 좋은 요소이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20분에 너무 많은 에피소드를 한번에 주워담으려고 하니 어정쩡한 결말로 끝나는 것이 아쉽다. 어찌보면 열린결말이지만 그 연결이 부자연스럽다. 많은 일을 한번에 주워담으려고 해서 끝이 어정쩡하게 된것이다. 사실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명확히 해결지으려면 최소 3시간이 걸리는데, 폴 헤기스는 피터잭슨이 아니다! 단순히 "열린결말"로 관객들이 "알아서"이해하도록 극히 적은 부분만 결과를 내놓고 있다.
사실 한국인이 비하된다는 것 때문에 10점 받을 영화라면 약 8점을 받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런데 한국인 비하가 어때서? 사실 이 영화는 미국인 비하영화다. 백인 우월주의에 빠져있는 미국사람들을 보여주면서 현재 미국인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는 영화인데, 거기서 한국인이 비하되고 있는게 뭐가 문제인가?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한국인 비하도 아니고, 수습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결말도 아니다. 영화가 너무 착해지려고 하는 것이 문제다. 백인우월주의에 빠져있는 산드라 블록이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고 나서 뇌손상이 됐나? 왜 갑자기 히스패닉인 자기 가정부에게 미안하다고 하는것인가? 흑인한텐 피해를 안준다는 차 도둑이 흑인 차를 훔쳤는데, 그 흑인을 그냥 풀려나게 하는 것 또 뭔가? 여성 성폭행할땐 언제고 그 성폭행한 여성을 구해주는 경찰은 또 뭔가? 동료의 차에 있는 30만 달러의 돈을 조사하는 장면이 나오다가 말 한마디에 그 상황이 정리되는 건 또 뭔가? 복잡성의 미학은 이런것이 아니다. 로버트 알트먼의 숏컷은 상영시간이 무려 3시간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크래쉬처럼 일을 벌여놓고 열린결말을 주지 않는다. 일을 벌여놓고 명확한 해결을 보는 것이다.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난 이런 류의 영화가 더 맘에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래쉬는 잘 만들었다. 피부색은 다르지만 몸속엔 똑같이 붉은 피가 흐르고있다는 것을 감독은 보여주고 있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게이 커플처럼 어울릴수 없을듯한 여러 인종들이 한대 모여 있는 LA에서. 콜래트럴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LA지하철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누가 관심이나 가지겠어?."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삭막한 도시 LA. 끊임없이 대립하는 도시 LA. 세계 제 5대 대도시에 속하는 이 도시는 이제 "제 2의 필라델피아"가 되고 있다. (여기서 제2의 필라델피아란 말은 영화의 소재가 많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영화는 미국인만 이해할 수 있는 영화다(?). 우리처럼 단일 민족은 인종 차별의 고통과 현실을 잘 알리 만무하다. IMDb평점에서 100위권 이내에 있는 작품으로서, 이 영화가 왜 미국인이 그렇게 열광하는지 그들의 정서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유추가능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한국인에게까지 충분한 감동을 줄 수 있을까? 글쎄, 물론 감동을 줄 수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진짜 감동을 느꼈다는 것은 사실 오바이다. 왜냐? 이 영화는 미국인들만이 진정으로! 정말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특히 단일 민족인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더욱.)
사족. 이 영화의 주제곡 "In The Deep"이 울려퍼지는 장면. 소름끼칩니다. OST정말 좋습니다. 편집 최고입니다. 정말 최고입니다!
20자평 - 8개의 충돌에서 튄 파편이 수습이 안되는구나....
유의사항 - 집중해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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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만은 - 멧 딜런이 텐디 뉴튼을 차에서 구출해내는 장면, 눈이 내리면서 울려퍼지는 주제가 In The D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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