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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을 쥐고 흔드는 죽음의 향연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jimmani 2006-05-03 오후 11:34:59 16509   [21]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언젠가는 다가온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또 언제 다가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매사에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죽음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없기에 오히려 더 우리가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에 대한 두려움도 상대적으로 적다고나 할까. 물론 편하게 산다고 해서 매사 대충대충 살아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런데 <데스티네이션> 시리즈는 죽음을 예측할 수 있는 설정을 가져와서 생각외로 꽤 호소력 있는 공포를 던져주었다. 죽음이 꽤 자세한 형태로 다가오고 있으며, 누구누구가 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암시는 주되, 언제 어떤 형태로 갈 것인지는 가르쳐주지 않음으로써 그 차례가 언제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갈 것인지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게 이 시리즈다. 이제는 결판을 내려는지, 3편은 "파이널"이라는 단어도 붙여서 다시금 그 블랙홀과 같은 죽음의 향연으로 우리를 초대한다.(사실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이 영어 원제인데 3편이 "완결편"이라는 걸 강조하려 했는지 새삼스럽게 원제를 그대로 갖다 써주시는 센스를 발휘했다.)

웬디(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테드), 케빈(라이언 매리먼)을 비롯해 졸업을 앞둔 맥긴리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졸업 기념으로 놀이공원에 다함께 놀러온다. 한밤중에 스릴넘치는 놀이기구들과 함께 여흥을 만끽하던 학생들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확 끼쳐오는 악마의 소굴 모양의 입구가 있는 롤러코스터를 타기에 이른다. 그런데 웬디는 그전부터 디카로 사진을 찍으면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롤러코스터 안에 들어서자마자 절정에 달한다. 바로 롤러코스터에 탄 잦신과 친구들이 끔찍한 롤러코스터 탈선 추락 사고로 모조리 목숨을 잃는 환상을 목격한 것. 아니나다를까 롤러코스터 출발 전 주변 상황들이 환상 속 상황과 그대로 맞아떨어지고, 웬디는 롤러코스터에서 내릴 것을 강력히 주장한다. 이 혼란에 휘말린 10명 남짓의 친구들이 웬디와 함께 롤러코스터에서 내린다. 그런데 이게 왠일, 롤러코스터는 정말 웬디의 예상대로 끔찍한 추락 사고를 맞게 된다. 더구나 그 롤러코스터에는 웬디의 남자친구 제이슨이 탔던 상황. 남자친구를 잃은 슬픔과 말리지 못한 죄책감에 웬디는 몸둘바를 모르지만, 함께 살아남은 케빈과 함께 웬디는 10년전 어느 고등학교에서 일어났던 유사한 사건처럼, 이 사건의 생존자들에게도 죽음의 차례가 다가온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데스티네이션> 시리즈는 내가 헐리웃 공포영화 시리즈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다. 요즘 들어서는 일본 공포영화의 영향을 좀 받았는지 심령물적인 요소가 있는 공포영화들도 때로 나오지만, 여전히 헐리웃은 몸이 잘리고 터지고 베이는 호러물에 미련을 못버린 것 같은데, 이런 종류의 호러물들은 대개 공포물의 본질적인 목표인 "무섭게 하는 것"보다는 최대한 잔혹한 비주얼을 통해 "충격을 주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물론 이 시리즈도 편을 거듭할 수록 잔인성의 강도는 더 심했다. 3편을 보고 나니, 1편에서 욕실에서 목졸려 죽는 장면은 대단히 양반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뇌가 터지고 얼굴이 숭숭 뚫리고 머리가 짓이겨지고 몸이 깔려터지고 아주 난리도 아니다. 평론가들의 얘기처럼 솔직히 편을 거듭할 수록 죽음의 장면들에서 다소 과장되고 좀 비현실적으로까지 느껴지는 부분들이 어느 정도 있긴 하다.(실제로는 당연히 안당해봤으니 진짜 비현실적인지는 모르겠지만 느낌상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런 잔혹한 죽음은 이 시리즈의 진정한 묘미가 아니다. 이 시리즈의 진짜 묘미는 바로 특정 살인마가 하는 살인이 아닌, 주변의 물건들이나 장치들이 하는 살인이라는 것이다. 가상의 캐릭터들이 행하는 살인이 아닌 우리 곁에 버젓이 존재하는 환경이 일으키는 살인은 그 공포감에 있어서 더 피부 깊숙이 다가온다. 더구나 3편의 모든 사건의 발단은 우리가 그토록 아무 생각없이 즐겨 타는 롤러코스터 사고다. 영화 속에서도 롤러코스터 사고로 죽을 확률은 2억 5천만불의 1이라지만, 제법 설득력 있는 전개로 참혹한 사고가 나는 장면은 정말 롤러코스터를 타기가 살짝 두려워질 만큼 현실 속에서도 만만치 않은 공포를 제공한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을 괴롭히는 것은 "죽음"이라는 한 추상적인 힘으로, 이 힘은 형태를 불문하고 어느 곳에나 어떤 모습으로나 변신 가능하도록 옮겨다닌다. 그 힘이 실리는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각종 물건들, 장비들이다. 때문에 언제 어떤 물건이 어떤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을지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면서 맞춰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특히나 이번 3편이라는 사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죽음의 방식에 대한 암시를 보다 미스터리적으로 제시해 놓음으로써 추리의 재미도 좀 더 강화시킨 듯 했다. 연쇄 살인마나 귀신이 등장하는 공포영화라면 차라리 그 살인마나 귀신들의 기척이라도 있지, 슬슬 분위기를 조성해가면서 마치 협연이라도 하듯 주변의 배경들이 하나하나 아귀를 맞춰가며 죽음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모습은, 도대체 어떻게 죽이려고 저러는 건가 싶은 마음에 두뇌도 돌아가게 하면서 동시에 심장도 벌렁벌렁 뛰게끔 만드는 공포감을 선사한다. 더구나 그것들이 선사하는 죽음의 비주얼은 사람 신체를 갈고 터뜨리고 으깨는 등 차라리 연쇄 살인마라면 하지도 못할 생각보다 대단히 끔찍한 비주얼이기에 그 두려움은 더할 수 밖에 없다. 인물들을 죽이는 주체도 온갖 물건들이고 그만큼 죽이는 방식도 천차만별이다보니, 가끔 보면서는 "제작진들이 어떻게 인물들 죽이려고 이런 생각까지 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특히나 2,3편에 들어서는 우리의 예상을 보기좋게 빗나가는 재미까지 곁들여져 더 심장을 졸이게 만든다. 2편에서는 죽을 게 뻔한 상황을 만들어놓고는 인물들이 그 상황을 간신히 피하게 해놓고 정작 그 뒤의 다른 갑작스런 상황으로 죽음으로 몰아넣는 "엇박자" 수법을 활용했는데, 이번에도 그 수법을 적잖이 활용한 듯하다. 몇몇 캐릭터들이 어떻게 죽는지 살짜쿵 보여준 예고편을 보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예고편 속 장면들 중에서는 우리를 적당히 낚아주는 것도 있음을 잊지 마시라. 시간차 공격을 시도하는 이 죽음이라는 놈은 제때 오지 않고 오히려 한박자 끄는 전략으로 오히려 사람 심장을 들었다 놓는 고도의 효과를 가져온다. 마치 시험을 앞두고 있는데 그 시험이 10분 정도 늦춰졌다고 하면 오히려 더 긴장되면서 차라리 지금 시작하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단점도 있다. 2편에서는 그러려니 했지만, 3편에서는 초반의 스토리 전개를 너무나 많이 울궈먹었다. 주인공이 어쩌다 죽음의 기운을 느끼고(자기는 아니라는데 무슨 초능력이라도 가진 듯하다), 그 죽음의 기운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에 대한 환상을 본 뒤 현실에서도 그 환상의 상황이 하나하나 맞아떨어진다. 뒤이어 몇명이 그로 인한 혼란을 말리다가 위험에서 우연히 벗어나고 주인공이 예측한 사고는 정말로 일어나고 만다. 아무리 영화의 기본 설정이 죽음의 힘이 못다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들을 괴롭힌다는 설정이지만, 보는 내내 데자뷰 현상을 일으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영화 속에서 웬디가 롤러코스터에 타기 전에 "왠지 한 번 와본 것 같다"고 얘기했는데, 보는 관객이야말로 한번 본 영화를 또 본 듯한 느낌이 들지 않을려나 싶다.

그러나 그 이후 펼쳐지는 화려한 죽음의 퍼레이드는 앞서 말했듯 제작진의 창의력을 뽐내기라도 할 정도로 예측불허인지라 긴장감을 그다지 손실시키지는 않는다. 다행히 결말은 비교적 마음에 들었다. 또 한명의 죽음을 암시하는 1편의 결말과, 놀라우면서도 허무하기 그지없었던 2편의 결말에 비해, 또 다시 이들을 빠져나올 수 없는 소용돌이에 몰아넣는 3편의 결말은 시리즈 중에서 아마 가장 강력한 포스를 발산하는 결말이 아닐까 싶다. 이런 식이다. 이 영화 속에서 죽음이라는 놈은 여느 공포영화 속 살인마들과는 그 끈질김과 테크닉에 있어서 허를 찌르는 구석이 많다. 한번 다가온 타이밍에서 놓아주는 듯 하다가도 안심할 만큼 뜸을 들인 뒤 다시금 공격하는, 놓친 대상은 기간이 어떻든 결코 놓아주지 않은 질긴 근성을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 속 살인마인 "죽음"이다. 사람이나 영혼이 행하는 죽임보다 죽음 자체가 행하는 죽임은 그 방식도 결과도 상상을 초월할 만큼 잔혹하고 또 영리하다.

전편에서도 그랬듯 이 영화 역시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운명에 대해서 나름의 운명론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듯도 보이지만, 사실 이런 공포영화에서 최종 목적은 이런 메시지를 논하는 게 아니다. 실제 경험하는 이가 아닌 철저한 관찰자의 입장에서, 스크린이라는 우리에 갇힌 인물들 중에서 누가 언제 어떤 식으로 죽게 될지 나름의 퍼즐을 맞춰보라는 것이 이 영화가 원하는 바다. 우리의 예상과 한끝차이 줄다리기를 하면서 벌어지는 죽음의 퍼레이드, 그 속에서 심장을 쥐고 흔드는 듯한 긴장감과 언제 다가올 지 모를 참혹한 비주얼의 공포를 그저 즐기는 것, 이 것이 이 영화가 원하는 바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주인공들에게 다가온 "죽음의 운명" 앞에서, 우리에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전제 하에 그 죽음의 운명을 철저히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꽉 조인 긴장감과 공포를 충분히 느꼈으니, 이 영화는 자기가 하고자 한 일을 충실히 다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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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데스티네이션(2006, Final Destination 3)
제작사 : New Line Cinema / 배급사 : (주)미로비젼
수입사 : (주)미로비젼 / 공식홈페이지 : http://www.fd2006.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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