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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렀던 영혼과의 작별인사 라스트 데이즈
kharismania 2006-05-04 오전 1:54:48 1157   [6]

It's better to burn out than to fade away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것보다 불타없어지는 것이 낫다.

 

 '닐 영(Neil Young)'의 'My my hey hey (out of the blue)'의 가사말을 유언장에 남기고 그는 그렇게 산탄총 총알 하나로 세상을 버렸다. 커트 코베인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삶을 비웃듯 날려버렸다. 그의 나이 향년 27세. 락 음악역사상 가장 액티브한 앨범이라는 'Nevermind'로 판도를 뒤집어버린 영웅이자 혁신가였던 그는 그런 찬사와 걸맞지 않게 한없이 그런지(grunge) 그 자체였다.

 

 짐모리슨, 재니스 조플린, 지미 헨드릭스. 이름만 들어도 애잔한 음악계의 영원한 청년들의 삶은 27세에 막을 내렸고 커트 코베인 역시 그들처럼 27세로 영원히 젊은 그리움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셋보다도 전설적이고 그저 조용히 회자되지 않고 들끓어오르듯 타오르는 것만 같다. 그가 원했듯이 희미하게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불타오르는 것처럼.

 

 사실 이영화의 제작 소식을 듣고 그의 존재를 다시 더듬어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만취해있었다. 하지만 제목의 뉘앙스처럼 이 영화는 그의 화려했던 시절을 외면하고 그의 마지막 나날의 처절했던 봉인된 사연을 은밀하면서도 침묵적으로 카메라에 담아 관객에게 풀어놓는다. 마치 아주 먼 옛날 이야기나 늘어놓듯이.

 

 커트 코베인이 앨범을 몇만장이나 팔아치웠고 그가 얼마를 벌어들였으며 그가 평소에 어떤 언행을 던졌는지 그딴건 이영화에서 필요없다. 하지만 분명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이에게 이 영화는 더욱 확실한 느낌표를 준다. 커트 코베인의 불행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정도의 답습을 거친 이들에게는 인정될만한 부분이 될 수 있고 그의 모든것에 열광하는 추종자들에게는 서글픈 추도사가 될 수도 있다.

 

 솔직히 대중적인 감성으로 손쉽게 거머쥘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생각하고 생각하며 그 안에 숨겨진 의미를 파헤쳐야 할 영화도 아니다. 중요한 건 인물의 심리와 내면의 흐름에 얼마나 잘 따라가고 집중할 수 있는가가 이 영화를 관람하는 관건이 될 수 있겠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시작부터 그는 영문도 모르고 목적도 모르는 숲 속을 헤맨다. 강에서 헤엄을 치기도 하고 늪지대를 건너기도 하고 덤불숲을 헤맨다. 그가 무엇을 하려하는지는 모른다. 물론 그의 종착역이 죽음이라는 것은 모두 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의 의미따위를 설명하려는 친절함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친절한 영화였다면 이 영화는 한없이 평범한 그저그럼에 머물 수 있었다.

 

 사실 커트 코베인의 죽음에 대한 의문으로 말꼬리를 잡을 수도 있었다. 지금도 명확하지 않은 자살과 타살에 대한 진실여부의 줄다리기는 잠정적 자살로 결론지어졌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물음표를 드리운다. 하지만 그의 죽음을 이용해 서스펜스를 가미한 스릴러따위를 만든다면 영화는 살아남을지 몰라도 그의 죽음에 대한 순수한 탐구는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그의 죽음 그 자체를 조명하고 있으며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속에서 그가 죽음의 문을 넘어서는 과정을 목도하길 종용한다. 그래서 커트 코베인이 아닌 블레이크(마이클 피트 역)가 등장하며 너바나는 형체도 보이지 않는다. 단지 그가 락스타이며 정신적인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뿐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그가 커트 코베인이라는 것을 관객들은 안다. 이는 관객과 영화사이의 묵인된 소통이며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영화의 은밀한 강요다. 또한 모든 상황 자체가 그의 생애와 연관된 은유로 채워져 있다. 사립탐정이 차안에서 하는 이야기는 사실 커트 코베인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은유적으로 노출시키고 그의 밴드멤버인 듯한 이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로부터 블레이크가 듣는 이야기는 그의 창작력을 이용한 돈벌이에 대한 압박이 밀려온다.

 

 어디선가 종소리, 떠드는 소리, 경적소리 같은 일상적인 소음들이 관객의 귀를 공략한다. 스크린 안을 아무리 뒤져봐도 소리의 실체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스크린 안의 공간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다. 이는 사실 힐데가르트 베르테스캄프의 구체음악인 '지각의 문들(Doors of Perception)'이다. 하지만 음악으로 들리지 않는 이 소음은 그의 혼란스러움 그 자체를 대변한다. 이는 결국 그의 주변 환경이 들이미는 소음이 아니라 그의 심리자체가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조류속으로 빨려들어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방황 또한 마찬가지다. 목적없는 방황 그 자체가 갈 곳 잃은 그의 영혼이 내리막길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리로써 영상으로써 가중되는 혼란은 그의 도착점에 대한 표지판처럼 화살표를 그린다.

 

 구트 반 산트 감독은 무언가를 보여주지만 그에 대한 부연설명까지는 덧붙이지 않는다. 어느날 갑자기 콜럼바인고등학교의 두 남학생이 학우들에게 총을 난사했던 실화를 다룬 '엘리펀트'나 사막을 가로지르려던 두 청년 중 한명은 되돌아왔다는 '게리'는 모두 실화를 다룬 이야기다. 하지만 둘 다 과정만이 보여질 뿐 근원은 보이지 않는다. '라스트 데이즈' 또한 마찬가지다. 단지 그가 죽음으로 가는 과정만이 존재하며 그가 죽어야하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 이유는 누구나 추론하듯 염세적인 그의 성향적 기인일수도 있지만 그건 단지 추론일 뿐이다.

 

 세편의 영화가 모두 실화로부터 얻은 영감에서 출발했다는 것. 마지막 자막에서도 보이듯 '커트 코베인의 죽음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명백한 공표는 이 영화는 그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파헤칠 의무가 없음을 드러낸다. 그냥 그렇게 상황만을 보여줄 뿐 그 내면을 파고 들어가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적어도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세영화에서는 말이다. 물론 불평도 관객의 권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다른 시각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창출하는 감독의 역량에 대한 몰이해로 번진다면 그것 또한 아쉬울 수 있다. 이것이 불친절함으로 인식되는 것은 가당하나 미숙함으로 이해된다는 것은 유감스러움이다.

 

 영화는 시간의 흐름조차 편하게 두지 않는다. 시간을 해체하고 뒤죽박죽으로 조립해서 앞과 뒤를 구분하기 힘들게 나열한다. 그가 숲을 헤매는 중에도 그가 집안에 있는 중에도 그는 알 수 없는 말을 읖조리고 노래한다. 그가 기타를 잡고 드럼을 치고 마이크를 잡는 순간에도 화면은 서서리 줌 아웃하며 그로부터 멀어져나간다. 그리고 그가 내는 화음은 소음에 묻히고 먼저 자리잡은 배경음에 눌린다. 그로부터 멀어져간다. 서서히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생으로부터 멀어져갈 시간이 도래하고 있음을 그와 관객의 거리감을 넓힘으로써 냉정하게 알리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너바나의 노래따윈 찾아볼 수 없다. 그의 생을 뛰어건넜듯이 그의 공적같은 노래역시 외면한다. 모든 건 그의 죽음까지의 '라스트 데이즈'에 초점을 맞춘다. 그가 약에 취해서 맛이 간건지 정신적 혼란에 의해서 미쳐가는건지 알 수는 없지만 그가 죽음을 향해서 한발한발 내딛고 있음을 관객에게 각인시킨다. 그리고 그는 예정대로 그 종착역에 도착하고 발랄한 킹스 싱어즈의 노래가 울려퍼진다. 마치 죽음을 경축하듯 그렇게 발랄한 음악이 울려퍼진다.

 

 'Smells like teen spirits'를 듣고 머리를 흔든 이라면 이 영화는 한없이 애잔할지도 모르겠다. 혹은 커트 코베인이라는 인물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그의 쓸쓸한 뒤안길을 목격한 당사자로써 조의를 표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런것은 아무것도 의미가 없다. 그냥 그렇게 그의 마지막 모습에 담담해도 상관없다. 그는 죽었고 그가 전설이 되었음은 내버려두자. 그냥 그가 죽었다는 사실, 마치 신문 기사 한줄처럼 들리는 이야기같은 사실을 알게 된것이 아니라 그가 죽어가는 쓸쓸한 그 과정에 대한 목격담을 기억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미 예전에 가버린 영혼이지만 세상은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그를 숭배하듯 전설로 떠받들고 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이 새겨진 프린트티를 입고 거리를 배회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그가 바랬을까. 마치 순수한 열정은 간과되고 외모만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체게바라처럼 그 역시 뜨거웠던 열정과 정신보다도 시대를 풍미한 아이콘으로우상화된 박제처럼 기억된다면 씁쓸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영화는 반갑고 고맙다. 인사조차 나누지 못한 푸르렀던 영혼과 작별인사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이 영화는 마련했다. 우리가 생각해보려 하지 않았던 것들. 그저 그의 죽음에 대한 이슈 뒤에 감춰진 인간적 고독과 비애. 그 모든것들이 96분의 런닝타임에 녹아있고 우리에게 밀려들어온다. 서글픈 그에 대한 단상앞에서 미소지을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아닐까. 죽어버린 영웅에 대한 추모적 언사가 아닌 다시 만나는 사람과의 반가운 재회처럼 말이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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