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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속 연인 조강(조승우 분)과 아리(강혜정 분) ©영화사 아침 |
때 아닌 초여름 무더위를 방불케하는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해 크고 작은 한국영화들이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와 힘겨운 관객 동원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 중 한 작품이 스스로를 외계인이라 말하는 여자 아리(강혜정 분)와 그녀만 뼈골 빠지게 사랑하는 순정남 조강(조승우 분)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도마뱀>(제작 영화사 아침, 감독 강지은).
당초 국내 영화 <사생결단><맨발의 기봉이> 등과 함께 외화에 맞설 것이란 기대도 잠시, 신세대 스타 조승우와 강혜정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순수'를 너그러이 받아 들이지 않는 관객, 신비주의와 신파가 결합된 멜로(이상용 영화평론가)라는 등의 영화에 대한 좋지 않은 입소문 때문인지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신인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자주 발견되는 '순수 동경론'을 표방하는 연출이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를 얻은 관객들에게 관람을 주저하게 하고, '극중 원형인물의 친일파 논란'으로 추락한 영화 <청연>처럼 영화팬들의 편견이 작용하는 건 아닐까하고 사전 정보없이 극장을 찾게 됐다.
영화는 노란색 우비소녀 아리(변주연 분)와 우연히 마주쳐 첫눈에 반해버린 조강(박건태 분)의 소꿉시절 사랑부터 시작이 된다. 우기철도 아닌데 이 어린 소녀는 자신의 유일한 친구인 도마뱀을 우비에 넣고 다니며 조강에게 '자신의 몸을 만지면 생기는 저주'에 관한 에피소드들을 늘어 놓는다.
영화에 유머스러운 재미를 주었을지언정, 감독이 전하려는 주제 의식을 가장 많이 방해하는 부분이기도 한 에피소드들은 '정말로 이 소녀에겐 저주가 내린 걸까', '실제 외계인이 아닐까' 관객들에게 호기심을 이끌어낸다. 때묻지 않은 어린시절의 조강 역시 관객과 함께 '말도 안되는' 소녀의 말에 귀기울이며 아리를 웃음짓게 하고 소녀의 두번째 친구가 된다.
비 오는 날 아리의 손을 빠져나간 도마뱀을 찾기 위해 논두렁을 헤집으며 진흙 범벅이 된 조강은 아리의 말처럼 '저주'라도 내린걸까. 아리가 씌워준 노란 우비로 인해 병원 침대 신세를 지게 되고, 전학 가게 된 조강이 찾아주지 못한 도마뱀 대신 '도마뱀 조각'을 선물하자 그의 곁에서 꼬리를 감추고 사라진다. 이후에 도마뱀 조각은 청년 조강이 아리(본명 은정)의 사연을 알게되는 중요한 소도구가 된다.
10여 년이 지난 어느 여름, 아리는 조강에게 연락을 하고 서로 약속장소가 어긋난 채 한적한 시골길에서 첫 만남 때처럼 다시 조우한다. 첫사랑 아리와 함께 있던 서정스님(이재용 분)이 기거하는 암자에서 둘은 조강의 공부를 핑계로 핑크빛 로맨스를 키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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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강과 아리의 풋풋한 모습 - 영화 스크린세이버 캡쳐화면 © 영화사 아침 | 특히, 학교로 돌아가기 전 암자에서 새벽에 나와 아버지가 운영하는 초밥집에 들러 아리에게 초밥을 선물하는 조강의 정성에 감동하는 것도 잠시, 아리는 또 다시 사라진다.
은행원이랑 결혼해 은행을 털고 NASA우주선으로 고향 별에 날아 가겠다던 아리의 하얀 거짓말대로 다시 8년이 지난 후 은행원이 된 조강 앞에 나타난 아리. 제 구두끈을 풀러 아리의 발목을 묶는 조강의 불안한 예감처럼 아리는 8시간 후에 미국으로 떠난다는 말을 남긴다.
아리에게 "가지마, 제발..이럴 꺼면 차라리 오지 말지"라며 하소연하는 조강의 만류를 뿌리치고 노란 대기선 앞에 선 조강의 모습을 확인하며 대합실 뒷편에서 울먹이는 아리. 이 영화 속 멜로 코드는 외화 <첨밀밀><냉정과 열정사이><지금, 만나러 갑니다>나 추창민 감독의 <사랑을 놓치다>처럼 10여 년을 두고 이어지는 남녀의 인연에 맞닿아 있다.
특히, 30대 이상의 관객들이라면 아련한 추억 속의 첫사랑에 대한 설레임의 정서를 맛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젊은 배우들이 영화 속에서 20 여년을 두고 계속되는 엇갈림의 정서가 팬덤 문화에 익숙한 젊은 관객층들에게 쉽게 와닿지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종영한 <백만장자의 첫사랑> 등 수 많은 영화처럼 관객들은 아리가 몹쓸 병에 걸렸을 거라고 예측하긴 그리 어렵지 않다. KT가 제작한 단편 옴니버스 영화 <3인3색 이야기:사랑즐감>의 '기억이 들린다'(감독 곽재용)처럼 소꿉시절 이후 성인이 된 아리와 조강의 인연이 되는 사건들이 좀 더 속도감 있게 전개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죽음을 앞 둔 아리를 위해 조강이 화실 부근에 미스테리 서클을 만들고 그의 사진이 병실 친구 변자(박신혜 분)을 통해 아리에게 전해지고 죽은 듯 누워있던 아리가 벌떡 일어난다. 미스테리 서클 중앙에 선 아리의 주변으로 우주선이 내려앉을 만한 크기의 서클이 드러나고 꼬마 전구 불이 켜지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이 영화는 <너는 내 운명> 식의 신파와 달리 신인 감독이 그려내려는 '순수한 사랑'과 '슬픈 이별'을 동화적인 코드를 통해 감각적인 영상으로 그려냈다. 단지 동화적인 코드를 사용했다고 해서 '신비주의' 영화라 하기도 그렇고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지 못한 슬픈 결말이니 '신파'도 더더욱 아니란 생각이 든다.
다만, 영화 속 사진작가인 아리의 아뜨리에에서 친구들의 손에 들린 '아리의 사진 속 UFO' 만 아니었다면 스스로 외계인이라는 아리의 말을 믿어버린 결과를 초래한 결말부의 논란을 잠재울 수 있었을텐데 하는 깊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영화를 함께 본 친구는 결말부를 해석함에 있어 "극중 아리의 삼촌인 서정스님과 친구가 미스테리 서클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아리를 위해 서클 주변 아뜨리에에서 지켜보다가 조명을 켠 것 아니냐"라고도 했다.
이 역시도 영화 <연애소설> 등의 수척한 주인공의 모습과 달리 죽음을 은유화 한 것으로 여긴 본인의 의견과 다르나, 아리의 사연을 알고도 끝까지 그녀를 믿어주는 조강처럼 영화자체만을 보고 관람후 서로 다른 여운을 갖게 되는 관객들의 해석에 맡겨두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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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어 지내던 아리의 아뜨리에를 찾은 조강 - 영화 속 한 장면 © 영화사 아침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