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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보여주지 그랬어 포세이돈
jimmani 2006-05-29 오후 1:43:53 21457   [9]

우리가 흔히 재난영화라는 장르에 대해 갖고 있는 몇가지 공식이 있다. 하도 공식을 잘 만들어내는 헐리웃의 전문 장르인지라 재난영화의 공식 역시 세어보면 수도 없이 많겠지만, 그 중에 하나가(어쩌면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러닝타임 문제다. 보통 여름이나 겨울에 나오는 블럭버스터 재난영화들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러닝타임이 길다. 특히나 영화 속 재난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아무래도 재난의 배경 상황이나 연루된 사람들의 모습 등을 골고루 비추려면 그저 90분 정도로는 모자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 <포세이돈>은 이런 부분에서 일단 뒤통수를 살짝 쳐준다. 이 영화의 공식적인 러닝타임은 98분이고, 실질적으로 관객들이 보지 않고 나가게 되는 엔딩 크레딧을 빼고 나면 90분 남짓 밖에 되지 않는다. 비슷하게 여객선 침몰을 소재로 한 <타이타닉>의 러닝타임이 이 영화의 두 배가 넘는 점을 볼 때, 이 영화는 좀 독특해보인다. 보여줄 것만 확실하게 보여주겠다는 뜻일까? 물론, 그 의도만큼 된다면야 좋겠지만.

영화의 배경은 으리으리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초호화 여객선 "포세이돈". 이 곳의 승객들은 곧 다가올 한 해의 마지막 날과 새해의 첫 날을 기다리며 그 들뜬 분위기에 젖어있다. 홀딱 잃을 때 제일 쾌감을 느낀다는 갬블러 딜런(조쉬 루카스), 어린 나이에 결혼을 약속한 커플 제니퍼(에미 로섬)과 크리스천(마이크 보겔), 딸 제니퍼를 끊임없이 걱정한 전 뉴욕 시장이자 소방관 로버트(커트 러셀), 모성애 깊은 어머니 매기(제이신더 배럿)와 영리한 아들 코너(지미 베넷), 금방 남자 애인한테 차인 중년남 리처드(리처드 드레이퍼스) 등 많은 사람들이 모여 연말연시를 즐기고 있는 이곳. 그러나 막 새해를 맞이한 순간, 바닷속의 지각변동으로 인한 거대 쓰나미가 몰려오면서 배를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홀랑 뒤집어버린다.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현장이 되어버린 여객선 안. 많은 이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가운데, 모험하기 좋아하는 딜런이 최대한 배의 바닥 쪽(뒤집혔으니 이제는 제일 위쪽이 된 곳)으로 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여겨 탈출을 시도하고, 여기에 앞서 나온 로버트, 제니퍼, 매기 등 많은 인물들이 합류하게 된다.

이 영화를 제대로 접하기 전 제대로 혹한 것이 바로 재난이 다가오는 순간을 담은 예고편을 통해서였다. <타이타닉>처럼 서서히 배가 가라앉는다거나 물이 차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퍼펙트 스톰"급의 거대 쓰나미가 배의 위아래를 완벽하게 바꿔놓는 광경은 그저 놀라움 뿐이었다. 역시나 이러한 스케일 면에서 적어도 영화는 기대를 충족시켜주었다. 맨처음 오프닝 크레딧이 올라가면서부터 영화는 여객선 포세이돈의 거대한 규모을 여기저기 훑으면서 그 포스를 과시하고, 영화가 시작한지 불과 10분이나 지났을까, 본격적인 대재난이 닥친다. 악마의 숨결처럼 거칠게 입을 벌리고는 배를 순식간에 삼켜버리는 바다의 위용, 그 속에서 온갖 추락과 파괴의 순간들이 어우러지며 위아래가 전복되는 아비규환의 현장은, 끔찍하면서도 그 거대한 재난의 규모에 감탄사를 연발케 하기도 했다. 거기다 배 안의 시설이 또 오죽좋아야지. 앨리베이터와 파티장, 나이트클럽, 수영장 등 각종 호화시설이 완비된 여객선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니 그 스펙터클의 쾌감은 더 커졌다.

실제 물도 사용했다는 각종 파도의 덮침신(?)들은 거기에 마치 툭툭 떨어져나가는 겨울 나뭇잎마냥 힘없이 튕겨져나가는 사람들의 모습때문에 더더욱 실감나고 파괴력 있게 그려졌다. 거기다 탈출을 시도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목숨을 잃어가는 장면들도 꽤 사실적이고 잔인한 구석들이 좀 있다. 나이트클럽에 가득 고인 물에 전기가 흐르게 되면서 단체로 감전사하는 사람들, 막 뒤집힌 배들 아래로 먼지처럼 바다 아래 둥둥 떠다니고 있는 시신들, 이곳저곳을 뒤덮은 시신들을 겨우 밀어내고 바깥으로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모습 등, 보통 인물들의 죽음은 간접적으로만 보여주는 재난영화들에 비해 죽음의 비주얼 또한 상당히 자세해서 스펙터클함과 더불어 섬뜩한 기분까지 느끼게 해주었다. 재난 뒤 탈출의 관문을 하나하나 통과하는 과정에서도 대규모의 사고들이 연이어 발생하며 스펙터클과 긴장감을 동시에 안겨주었고. 이처럼 예상했던 대로, 블럭버스터로서의 비주얼은 압도적이었다.

이 영화의 원작이 된 <포세이돈 어드벤쳐>가 단순한 재난 영화 이상의 취급을 받는 것은 단순히, 확실한 비주얼만을 앞세운 것이 아니라, 재난 앞에서 한없이 나약하고 비열해지는 인간들의 모습을 담음으로써 사회 풍자의 면모까지 선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 새로운 버전의 영화 역시 처음에는 그렇게 가는가 싶었다.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은 무시한 채 탈출에 나서고, 다른 이의 목숨을 놓아버리는 상황에서는 생존을 위해서 이기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속성을 보여주려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러나 막상 본격적인 탈출이 시작되고 난 뒤에는, 이러한 면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갈등 구조나 인물들의 모습은 이전부터 봐 온 다른 재난영화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시시각각 배 안에서는 목숨을 위협하는 사고가 일어나지만, 그 사고들의 스케일에 묻혀 상대적으로 그 속에서 힘들게 싸워야 하는 "사람"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결혼에 선뜻 찬성하지 못하는 부모와 자식간의 갈등, 단둘이 살아가고 있는 모자 가족에게 젊은 남자가 호의를 베풀고 생명을 구해주면서 가까워지는 설정 등 재난 뒤에 숨은 인물들 간에 짜여진 이야기 구조는 다소 상투적이고, 그조차도 절실하게 호소하거나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못해서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단지 하나하나 다가오는 재난을 모면하고 그저 빠져나가려는 데 급급하려 한 듯한 느낌도 강했다.(오죽했으면 영화 속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대사 중 하나가 "Let"s go(갑시다)"일까) 온갖 산전수전을 겪은 뒤 펼쳐지는 결말 또한 더 이상의 여지를 남기지 않으려는 듯한 해피엔딩이 아닌가 싶어서 뭔가 심심한 구석이 있었고. 재난을 묘사하는 데에는 꽤 사실적이었지만, 그 속에서 부대끼는 사람들의 모습은 세밀하지 못한 것 같았다.

사실 이 영화의 감독인 볼프강 페터슨 감독은 이전부터 이런 스펙터클한 규모의 영화를 만드는 데에 꽤 재능을 보여왔다. 나는 관람 당시 약간 졸긴 했으나 그의 또 다른 작품인 <퍼펙트 스톰>은 재난영화의 형태를 띄면서도, 단순히 인간승리라는 닭살돋는 메시지만 전해주는 게 아니라 자연의 힘은 인간을 굴복시키기도 남을 만큼 막강하다는 현실적인 메시지를 전해줬다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때문에 단순히 주인공들이 영웅적으로 보인 게 아니라 뭔가 아등바등 살려고 하는 절실한 인간의 모습이 느껴졌다. 좀 다른 종류의 영화지만 그의 전작인 <트로이> 역시도 단순히 겉만 화려한 고대 전쟁영화가 아니라 그 속에 화려한 영웅의 거침없는 몰락을 심어넣음으로써 반짝거리게만 보였던 고대 신화, 역사의 음울함과 허망함의 이미지를 잘 살리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규모가 사정없이 큰 영화 속에 현실적인 메시지를 담아낼 줄 아는 그의 재능이 이 영화에서도 만개했다면, 어쩌면 이 영화는 오리지널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일단은 단순히 시각적인 쾌감을 보여주는 데 주력하려 한 것 같다. 물론 그 점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커다란 쾌감을 안겨준다. 그러나 요즘은 블럭버스터라고 해서 돈으로 도배를 한 볼거리만 보여준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다. 더구나 이 영화처럼 클래식 취급을 받고 있는 원작을 바탕으로 한 리메이크라면, 적어도 원작만큼은 할 수 있게끔 볼거리 뿐 아니라 그 속에 숨은 사람들의 단면, 절실한 생존본능을 잘 살려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감독님, 이 영화에서는 욕심을 좀 적게 부린 듯 싶다. 러닝타임이 어쩐지 좀 짧다 했는데(그렇다고 모든 잘못이 짧은 러닝타임 때문이라는 건 아니다. 단지 대표적으로 예를 들었을 뿐;) 역시나 이 영화는 재난이라는 생과 사의 경계선 앞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의 "간절한" 생존욕구,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때론 진솔하고 때론 추악한 단면을 제대로 보여주지는 못한 것 같아 아쉽다. 단지 하나하나 다가오는 난관을 그 자리에서 어떻게 하면 해결할 것인가에만 집중되고, 근본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인간들의 치열한 싸움은 효과적으로 묘사되지 못한 듯에 아쉬웠다.

물론 점점 후텁지근해지는 날씨에 안구에 거침없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자 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영화는 손색이 없다. 짧고 굵게 내달리는 각종 재난들과 위기들이 긴장감을 유발하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다만 포세이돈이 가라앉을 바다만큼의 "깊이"는 갖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말이다. <타이타닉>이 세계 최고의 흥행작이 될 수 있었던 건, 단지 배의 위용이 화려하고 스케일이 커서만은 아니었다. 그 속에는 죽음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더 절실해지는 인간의 "감정"이라는 게 있었다. 이 영화 <포세이돈> 역시 러닝타임을 못해도 한 2시간을 잡아서 이런 인간의 마음을 더 깊이 조명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총 0명 참여)
akwdkakwdk12
뭔가가 좀 부족해 ㅡ;   
2006-06-18 10:52
bayun2
마자요~ 너무 아쉽게 끝나용~~   
2006-06-01 14: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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