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지껏 세계 각지에서는 많은 재난 영화가 나왔다. 재난 영화란 원인에 관계없이 무언가, 혹은 누군가에게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재난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다. 따지면 죽음이 생존자를 죽이려 따라다닌다는 영화"데스티네이션"도 일종의 재난 영화가 틀림없다.
재난 영화는 보통 생존의 욕심을 부리는 인간의 탐욕스러움과 가족, 연인간의 사랑, 자신을 희생하여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희생정신이 거의 '필수로' 가미되어 있다. 특히 가족, 연인간의 사랑은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었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말해주고 그들이 겪는 재난 속에서 그려지는 고난을 통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포세이돈이 비교 당해야 할 재난 영화는[타이타닉]과 원작인 [72년도 산 포세이돈 어드벤쳐]인데, 사실 옛날 영화와 요즘 영화를 비교하는 건 넌센스이므로 같은 해양 재난 영화인 타이타닉과 비교를 하겠다.
타이타닉은 영화 초반에 타이타닉은 어떤 배이며 탑승부터 출항까지 모두 보여준다. 주인공인 잭과 로즈가 어찌하여 탑승하고 과거에 뭘 했고 어떤 정신 상태와 개념을 가지고 있는지 자세히 설명해준다. 타이타닉 침몰은 크나큰 볼거리와 함께 서브로 가미된다. 그렇기 때문에 극중 연인인 잭과 로즈의 이야기가 메인이 되어 타이타닉이 침몰하면서 그려지는 재난 이야기는 더욱 안타깝고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이 것이 미국 16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재난 속에서 그려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포착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과학적이고 사실적인 침몰 과정을 미리 관객들에게 친절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무게때문에 가라않던 배가 다시 들어져 올리고, 전기가 모두 끊어지고 수직으로 뱃머리만 둥둥 떠있다가 가라않는다는 내용 말이다. 재난과 드라마. 이 두 마리를 동시에 잡은 영화가 바로 타이타닉이다.
그러면 포세이돈을 보자.
출항, 탑승한 이유 그런거 하나 없이 영화는 커다란 스크린에 웅장한 초고급 배때기 포세이돈의 모습을 보여주며 주인공인 딜런이 화려하게 배 한 바퀴를 조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딜런이 무슨 사람인지는 영화를 관람 후에도 알 수 없다. 초반 유부녀에게 작업 걸때 말을 있는대로 흐리며 잠깐 언급하긴 하지만 관객들에겐 신용이 안간다.
또 하나의 주인공인 커트 러셀은 처음에는 시장님. 그리고 뜬금없이 소방대원이었다고 한다. 한줄 대사의 설정 요약은 너무나 성의가 없다. 커트러셀과 딸도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영화에선 정말 거의 그려지지 않는다. 따라서 딸이 커트러셀을 아무리 애처롭게 불러봤자 그저 "아빠!"라는 대사로 밖에 안 들린다.
중반부가 넘어가서 누가 죽어나가도 별로 감흥이 없다는 것이다. 뭐하는 놈인지 모르니까.
영화 [볼케이노]에서 정신을 잃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용암에 스스로 뛰어들면서 다른 사람을 살리고 자신은 처절하게 용암에 녹아버린 소방관을 기억하는가? 영화 [블랙 호크 다운]에서 구조대가 언제 올 지 모르는 상황에서 부상당한 조종사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수천 명의 소말리아 폭도들이 총을 들이대는 곳으로 뛰어들어간 두 명의 델타포스 저격수인 랜디 셔그하트와 게리 고든을 기억하는가?
(사실 랜디 셔그하트는 극중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몇 초 차이로 전화 통화를 못하는 장면이 있었고 실화라 더욱 안타깝지만 볼케이노의 소방관의 희생은 전적으로 시각적 충격이었다...포세이돈의 후반부에 나오는 희생은 그냥 깩깩거리는게 보기 거시기할 뿐이지 특히나 위대한 것도 아니었다.)
극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할아버지와 별로 만나지 않고 살아오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사람이라면 할아버지의 죽음이 슬픔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다만 생전에 할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이라면 할아버지의 죽음이 굉장한 슬픔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다. 캐릭터의 죽음이 슬픈 것은 그 캐릭터가 어떤 캐릭터인지 제대로 보여주었을 때 슬픈 것이다. 일부 캐릭터는 어느 정도 그런 설정이 있어 슬퍼할 수도 있지만 주연급 캐릭터가 그렇지 않은 것은 드라마적으로 이미 실패한 것이다.
특히 이들 중 일행에 포세이돈 여행기에 사사건건 딴지를 걸어 재미를 줄 캐릭터라고 생각했던 주정뱅이는 몇 분 나오지도 않고 허무하게 사라져간다. 연봉 세배를 줄테니 따라오라고 불렀던 젊은 직원 발렌타인은 최대한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희생정신을 발휘하지만 일행(게이 할아버지)에 의해 초반에 가장 먼저 살해(?) 당한다. 여기까지는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 나왔던 장면이므로 더 이상의 등장인물의 생사 여부는 말하지 않겠다.
타이타닉에서 컴퓨터 시뮬레이터로까지 보여주었던 침몰의 과정과 원인, 세부 내용같은 설정은 포세이돈엔 없다. 배에 물이 들어오면 어느 정도 뜨게 되는 것은 과학적이다만 그런 것 하나 설명해주지 않는다. 심지어 영화내에 포세이돈이 얼마나 큰지 재원도 알려주지 않는 불친절한 설정이 돋보이기까지 한다.
영화 포세이돈은 말 그대로 "뒤집힌 포세이돈에서 살아나가려는 사람들"을 시각적으로만 "보여주는" 영화이다.
거대한 파도에 뒤집히는 포세이돈의 모습과 전기 감전, 폭발, 침수로 이어지는 2차 재난에 죽어나가는 사람들의 모습 외에는 정말 볼 것 없는 영화였다. 이 영화의 런닝 타임이 90분인 걸 알았을 때 얼추 깨달았지만 예상대로였다. 주인공은 사람이 아닌, 영화 포스터처럼 포세이돈과 물이다. 그 뿐이다.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들-
1. 딜런이 초반에 의미심장하게 폴더 나이프를 챙겨가는데 사용하지 않는 점.(솔직히 나중에 사람과 사람사이에 다툼이 생겼을 때 사용할 거라고 생각했다.)
2. 시장(전직 소방관)이 배 진로 방향을 바꿔서 뭘 던지면 프로펠러가 멈출 것이라는 것을 알았던 이유
3. 마찬가지로 직업이 뭔지도 안 보여준 민간인이 프로펠러에 뭘 던지면 멈출 것이라는 것을 알았던 이유
4. 프로판 가스통이 왜 위험 천만하게 프로펠러 있는 곳 방에 놓여져 있는 이유
5. 클럽바닥에 물을 통해 전기로 사람들이 감전되었을 때 그보다 아래에 있던 주인공들이 감전되지 않았던 이유(물은 당연히 아래로 흘려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분명히 주인공들은 젖어있었기도 했다.)
뒤집힌 배때기 근처에 왜 구명정이 떡 하니 펼쳐져 있었는지는 구태여 말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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