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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향해 희망을 쏴라. 강적
kharismania 2006-06-17 오전 1:49:41 1484   [2]
올 해 국내 영화판의 대세는 아무래도 남자이야기인가 보다. 태풍을 필두로 시작된 남자이야기는 야수, 홀리데이, 사생결단, 그리고 최근의 비열한 거리까지 비정한 현실안에서 몸부림치는 남자들의 거친 몸부림이 담긴 영화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리고 또 한편의 영화가 그 뒷편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적은 어떻게 보면 강한 동지와도 같다. 물론 적이라는 존재는 그 존재성만으로도 위협을 느끼게 하지만 심리적 위기감은 자신스스로에 대한 발전 욕구적 자극를 느끼게 하고 안주하기보다는 스스로를 갈고 닦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의 라이벌일 수도 있고 극단적인 원수일 수도 있지만 자신을 자극하는 상대가 있다는 것은 자신 스스로의 발전에는 플러스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더욱이 상대가 강한 적이라면 그 자극의 밀도는 더욱 견고해진다. 강한 적에게서 풍기는 위기감의 냄새는 자신의 내부적 결속력을 다지고 경계심을 고취시킨다. 결론적으로 스스로의 방어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자신을 더욱 강하게 길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스스로가 인정한 강한적은 동지보다도 애착이 가는 존재일수도 있다. 

 

 두 남자가 있다. 한남자는 강력반 형사로써 인생을 꾸려나간다. 외적으로 강한 기운을 풍기는 사회적 지위를 지니지만 실질적으로 그는 아내에게 버림받고 죽을 고비를 넘기기 위해 수술을 받아야 하는 아들의 병원비앞에서 좌절하는 저위층 소시민에 불과하다. 다른 한남자는 사랑하는 애인과 함께 분식을 팔며 미래를 계획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발목을 잡는 과거로 인해 결행할 수 밖에 없는 범죄의 길목에 다시 한번 들어선다. 하지만 결국 그는 발각되고 자신과 관련없는 누명마저 뒤집어쓴 채 죄수복을 입게 된다.

 

 두 남자는 만난다. 벼랑끝에서 두 남자는 서로에게 밟고 넘어야 할 상대임에 분명하지만 둘은 서로에게 꼭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다. 형사와 범인은 극과 극의 대치도에 서있어야 할 상대임에도 사회적 입지를 떠난 개인적인 사연담안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둘은 공존을 모색한다.

 

 이 영화는 상당히 거칠고 어지럽다. 특히나 시작부부터 두개의 플롯이 교차적으로 진행되고 마치 핸드헬드처럼 어지럽게 흔들리는 화면에서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의 영화는 초반부터 사납다. 영화의 외관자체에서부터 느껴지는 정제되지 않은 듯한 거친 질감은 이야기에서도 확인된다.

 

 이 영화는 사회의 밑바닥을 부유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그들의 공존이 모색되는 것도, 유지되는 것도 그런 루저들의 감성에서 비롯되었음이다.

 

 이 영화의 미덕은 대립적인 위치에 서 있는 두 남자가 어떻게 손을 잡는가에 있다. 그것은 방법론적인 차원에서의 접근이 아닌 목적론적인 차원에서의 접근에서 살펴보았을 때 타당하다. 단지 서로에 대한 이용가치에서 두 남자가 손을 맞잡았다면 이 영화는 두뇌회전의 속도감을 이용한 스릴러의 옷을 입었겠지만 서로에 대한 감정적인 동감대 형성으로 두 남자가 손을 잡았음은 이 영화가 드라마적인 성향으로 무장해도 무방함이 된다. 그리고 두 남자의 감성 자체로부터 뿜어져나오는 이 영화의 전반적 분위기는 느와르의 비정성과도 맞닿는다.

 

 하지만 이 영화가 느와르적인 색채를 지녔음에도 완벽한 비정함을 품지 않았다는 것. 즉 비정함 속에서도 인간적인 냄새를 살렸다는 것에서 느와르적인 냉혈함은 보정효과를 얻게 된다. 제로섬게임으로 거듭나는 느와르의 블랙톤의 엔딩역시 이 영화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현실의 비정함과 비열함 그 자체를 몰아치듯 보여주지만 결론적으로는 어둠너머의 석양이 아닌 일출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비정하지만 희망을 보고 사는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느껴지는 것은 실속없는 기대감일지도 모르지만 돌아보고 싶은 흐믓함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결말은 어쩌면 식상한 성공담이 될지도 모르지만 영화의 결말에서 느껴지는 희망에 손을 들어주고 싶은 것은 두 남자주인공의 처지에서 느껴지는 연민으로부터 비롯된다. 두 남자의 삶으로부터 풍기는 비관적인 감성의 실타래는 지독하게 꼬여만 가고 그 실타래를 풀어가기 위한 여정은 험하고 막막할 뿐이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를 위해 닫힌 마음을 열기 시작할 때부터 영화의 감성은 조금씩 관객의 마음속으로 파고든다. 두 남자의 성공을 향한 상승욕구였다면 영화의 외면에 시선이 갔겠지만 행복을 향한 성취욕구는 영화의 내면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이 작품은 감성적인 공조성을 은근히 강요한다.

 

 솔직히 관객에게 쉽게 전달되고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다만 어느정도 투박한 영화의 질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이에게는 즐길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임은 확실하다. 무엇보다도 영화의 질긴 육질을 부드럽게 만드는 것은 영화의 중심에 선 두 남자를 연기하는 박중훈과 천정명의 힘이다.

 

 박중훈은 그간 자신을 키우고 몰락시킨 코믹한 이미지에서 벗어난 진지함으로 승부한다. 물론 그의 코믹함이 언뜻 살아나는 순간이 있지만 지독하게 냉소적이고 시니컬하다. 또한 해맑은 천정명이 독기를 품은듯한 캐릭터를 소화해냈다는 것과 단지 흉내를 냄이 아닌 캐릭터가 되었음은 이 영화가 지닌 진정성의 가치를 생동감있게 펼쳐내는 효소와도 같다. 두 남자의 연기는 이 영화가 내세울 수 있는 중심포석과도 같다.

 

 몇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삶이여! 다시! - 니체

 

 어쩌면 삶은 열번의 고통과 한번의 희망이 교차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열번의 고통으로부터 삶이 고단해지더라도 인간은 희망을 꿈꾸며 상처를 어루만진채 미소짓는다. 이 영화는 목을 죄는 현실너머의 희망으로 헐떡이며 달리는 두 남자의 이야기이다. 고통스럽고 포기하고 싶은 가시밭길위에서 달릴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그 너머의 무지개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끔찍한 삶일지라도 살아있음에 희망을 느낀다면 삶은 부질없는 일상에서 의미있는 매일로 바뀔지도 모른다. 희망을 향해 내일을 쏘는 남자들의 이야기 앞에서 느껴지는 것은 비록 고단하지만 행복을 포기하지 않는 판타지의 흐믓함과도 같다. 그리고 영화적이지만 현실적으로도 놓고 싶지 않은 메세지로부터 느껴지는 연민일지도 모르겠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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