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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덫 내 청춘에게 고함
kharismania 2006-07-21 오전 3:42:10 17571   [9]
청춘은 젊은 한시절을 풍미하고 대변하는 뉘앙스를 풍긴다. 10대에서 출발하는 청춘은 30대의 문턱에서 마치 고배를 마시는 것 마냥 그렇게 신기루같은 형상으로 흩어지며 시간이 지나면 손에 쥘 수 없는 한 시절의 혜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청춘은 마냥 행복한 것만이 아니다. 젊음은 당돌한 패기의 위용을 과시하기도 하지만 그와 상반된 지독한 방황을 부르기도 한다. 아무것도 들어서지 않은 황량한 벌판을 지나듯 청춘은 그렇게 기반이 잡히지 않은 황량한 미래를 향한 무모한 발걸음처럼 버거운 시절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청춘은 누릴만한 가치로 대변되기도 한다. 이룬 것이 없는 만큼 잃을 것도 없는 청춘은 그만큼 부딪치고 넘어지며 미지의 세상안에 경험의 첨탑을 세우는 시절이다.

 

 하지만 청춘은 한 시절을 풍미하는 단어로 정의되기엔 억울하다. 사실 청춘은 끝이 없다. 다만 청춘의 활용빈도가 나이를 먹어감을 통해서 적어짐에 따라 묻혀지는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무언가를 위해서 살아가느냐의 문제만큼이나 청춘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은 나이라는 숫자놀음안에서 규정되어버리고 이런 규정안에서 벗어남은 철없음으로 몰이해되기 일쑤다.

 

 사실 이 영화는 외형적으로 주목을 끌만한 꺼리가 그다지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내면을 한번쯤 훑어본 이라면 무언가 당기는 매력을 간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일단 이 영화에서 느껴지는 것은 홍상수 류의 일상적 흐름의 재발견이다. 홍상수의 작품은 무덤덤하게 현실을 끌어내는 파격이 흐른다. 그의 이야기는 무미건조한 일상을 있는 그대로 스크린에 투영하며 오히려 어느 영화적 수사법보다도 파격적인 현실을 변용한다.

 

 사실 김영남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홍상수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음은 이런 사실에 적절한 증거로 대변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면을 배제한 채 영화자체만을 살펴본다해도 은연중에 느껴지는 홍상수식 화볍의 느낌이 모색하는 이야기의 권태적 일상스러움이 느껴짐은 무시할 수 없다. 물론 이 영화가 홍상수의 영화와의 비교선상에서 완벽한 합동이 아닌 닮음의 모양새를 취한다는 것이다.

 

 시작부터 영화는 객기가득찬 젊음을 남용한다. 정희(김혜나 역)는 시작부터 당돌하게 주인이 부재한 애인의 집 유리창을 부수고 세상을 향해 외친다. '조금 기다려주면 안되냐? 그래, 나 간다! 여기서 멈출 순 없으니까! 여긴 죽었으니까!'

 

 삶이란 선택의 문제가 아닌 강요의 문제일 수 있다. 출생 자체가 자의적 선택을 거친 결과물이 아닌만큼 그로부터 출발하는 삶의 문제 역시 비자의적 산물이다. 그런 면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짊어져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상당히 억울한 노릇일 수도 있다. 멈출 수 없는 삶에서 진행되어야 하는 삶의 무게감을 견뎌야하는 것은 삶을 선택한 적 없는 본인의 몫이니까.

 

 청춘은 그만큼 버겁다. 한치앞도 알 수 없는 내일을 향해 나아갈 수 밖에 없는 성숙하지 못한 이의 행군은 의사와 관계없는 시간의 진행이라는 외부압력안에서 성장통이라는 진통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이 영화는 세개의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옴니버스 구성을 띄지만 세개의 이야기는 공간적인 혹은 소품적인 동질감을 은연중에 형성하며 각자의 동심원에 서로를 포용하며 연대감을 형성한다.

 

 세 이야기를 책임지는 세명의 주인공은 각자의 나이에 관계없이 미완성의 불안함을 지닌 존재들이다. 미완성은 청춘을 대변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이면서도 청춘을 폄하할 수 있는 오해의 소지가 된다, 삶의 기반이 잡히지 않았다는 것. 그것은 비단 어리다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안에서 정착하지 못한 채 사회적으로 겉도는 -굳히 부적응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적인 이해도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실히 다지지 못한- 방황하는 영혼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정희는 유년시절 가족을 버린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고 애인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다. 그리고 무용의 꿈을 키우지만 달콤한 이상보다도 쓰디 쓴 현실이 그녀에게 가깝다.

 

 근우(이상우 역)는 공중전화를 수리하는 일을 하지만 자신의 일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고 시간을 늦추고 싶다는 몽상을 즐긴다. 우연히 옅듣게 된 한 여자의 통화는 그에게 연민을 싹틔운다.

 

 인호(김태우 역)는 서른을 넘긴 늦깍기 현역군인이다. 제대를 앞둔 말년휴가에 그를 맞이하는 것은 아내의 부재만큼이나 황량한 빈집의 허무한 공기다. 박사학위 취득을 위해 군입대도 늦었지만 여전히 박사학위 취득은 되지 않은 그에게 다가오는 것은 제대후의 진로문제와 더불어 변심한 듯한 아내로부터 느껴지는 위기감이다.

 

 이렇게 세 인물은 각자의 사연을 통해 세개의 동심원을 그린다. 물론 동심원의 크기가 굵고 선명하게 들어오는 것은 미지막 에피소드인 인호의 사연이다. 이는 김태우의 연기력 자체로부터 느껴지는 탁월함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어쩌면 김태우에 비해서 이상우나 김혜나의 연기가 미흡해보이는 것은 실제로 그러함의 문제와 더불어 비교하락의 수위문제 일수도 있다.

 

 세 인물은 사회적으로 불완전한 존재다. 확실한 직업이 있다거나 내세울만한 무언가가 있지도 않다. 단지 존재하고 있음 이상의 내세울만한 것이 없다는 것은 사회적인 관점에서 후한 점수를 받기 힘든 일이 될 수 있다. 불완전하다는 것은 어른으로 가는 통과의례안에서 미성숙함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과도기적인 과정상의 맥락에서 이해한다면 자라나는 가능성의 발로일 수도 있다.

 

 청춘은 단지 젊다는 것이 아닌 완성되지 못함의 의미를 지닌 것인지도 모른다.  세인물이 그리는 각자의 사연으로 쏘아 올려지는 궤적이 도달하는 과녁의 끝. 누릴 수 있는 혜택의 가치가 아닌 완벽하지 못한 고결함의 의미로써의 청춘에 대한 고찰이 이 영화가 그리는 동심원의 중심축이다. 흔들리는 불완전함으로써의 청춘.

 

 재미있는 건 세개의 에피소드가 겹쳐지는 맥락의 발견이다. 사실 세개의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서로의 연관성을 들이밀지는 않지만 은연중에 떠도는 -마치 세번쨰 에피소드에서 등장하는 두 인물간에 공유하는 공기의 뉘앙스마냥- 중복되는 소품적 코드를 마주치게 된다.

 

 첫번째와 두번째에 등장하던 철도는 세번째에 이르러 달리는 기차로 구체화되고 세개의 에피소드에서 모두 통화도중 전화가 끊긴다.-물론 두번째 에피소드에서의 끊김은 우연이 아닌 자의적 도발에 가까웠지만- 정희가 우연히 발견한 책갈피 사이의 행운과 불운한 편지함의 사연은 인호에게도 전달되며 정희와 인호는 각자의 사연안에서 각자 홀로 춤을 춘다. 그리고 두번째 에피소드에서 이야기의 소품처럼 사용된 김보연의 '생각'은 세번째 에피소드에 이르러 BGM처럼 활용된다. 또한 두번째에서는 스쳐지나가듯 차용되는 불륜의 정서가 마지막에는 드러나듯 대놓고 활용된다.

 

 확실해 보이는 것은 첫번쨰와 두번째 이야기가 단편적인 습작처럼 느껴진다면 마지막 세번째 에피소드는 완결된 형태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지닌다. 앞의 두 이야기를 일괄적으로 포용하듯 두개의 사연은 마지막 이야기를 향한 지표처럼 느껴진다. 런닝타임을 비교해도 마지막 이야기는 전자인 두 이야기에 비해 두배에 가까운 시간배분을 얻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외형적 옴니버스 구성은 내면적인 통합적 일괄성에 의해 무시되어져야 마땅해보인다.

 

 이 영화가 완벽한 찬사를 얻을 이유는 없지만 그 가능성과 독특한 어조의 발견으로 평가한다면 충분히 눈여겨볼만한 가치는 있다. 예찬의 목적이 아닌 고찰의 목적으로써의 청춘. 아름답다고만 말하기엔 파고드는 가시가 날카로운 청춘의 덫에 대한 진지한 들여다봄에 대한 주목적 가치로 놓고 본다면 이 영화는 상당히 치켜세워줄 필요가 느껴진다.

 

 사실 이 영화를 보고 '피터팬의 공식' 떠올랐다. 물론 두 영화가 어떤 면에서는 판이하나 어떤 면에서는 비등하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불안한 청춘, 즉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아슬아슬한 아름다움. 청춘이 지닌 본론적 위기감에 대한 진지한 고찰은 두 영화가 지닌 공통적인 고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피터팬의 공식'이 의식적 흐름에 따른 상징성의 문법을 선택했다면 '내 청춘에게 고함'은 타인적 관찰에 따른 평이성의 문법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청춘은 아름답다. 비록 한강으로 추락한 핸드폰과 철길을 따라 멀어지는 두사내의 등, 그리고 발에 채인 하이힐 너머로 짙어지는 터널의 어둠처럼 모호한 내일을 향해 정처없이 소비되는 젊음의 언저리에서만 빛나는 가치인 듯 하지만 청춘은 그 알 수 없는 불안감만큼이나 흥미로운 여정이다.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이형기 作 '낙화' 中-

 

 청춘은 결코 젊음을 풍미하는 시대적 사유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산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청춘일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스스로 청춘의 시대를 규정하고 스스로 내쳐버리고 포기하기 때문에 청춘은 스스로 소멸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청춘은 이름만큼 달콤한 것만은 아닐지라도 불완전함과 미성숙함만큼이나 흥미로움을 유발하는 것이다. 그대의 청춘이 살아있다면 그대는 어쩌면 여전히 사회를 겉도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그만큼 자신의 가능성이 잔여한다는 희망일지도 모른다. 우먼가에 대한 갈망이 그대를 여전히 청춘의 덫위에서 놓아주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닌지 스스로의 청춘에게 고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 영화는 그런 청춘을 한번쯤 되돌아보게 해준다는 것만으로도 미소짓게 만드는 아련한 가치를 지니는 것만 같다.

 

                        -written by kharismania-

 

 


(총 1명 참여)
audi09
범상치 않은 수작입니다. 이 영화...   
2006-07-22 12:42
movist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무비스트에 좋은 글 남겨주세요^^
  
2006-07-21 15:47
stack05
관심없는 영화였는데, 리뷰 읽고 한번 보고싶어졌어요.   
2006-07-21 15:4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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