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 일단 긍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는 단어다. 사실 우리에겐 '인류'나 '지구촌'이란
단어보다도 더욱 친근하고 가치있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바로 '민족'이란 단어가 아니던가. 그
건 우리가 오랜 역사를 지닌 단일민족국가이라는 역사적 자긍심 때문일 수도 있지만, 또 한편
으로는 오래토록 나라를 이어왔음에도 그런 역사 가운데 많은 시간동안 침략당하기 일쑤였고
고대사에 속하는 몇몇 시기를 제외하곤 세계 속에서 그 이름을 찬란하니 크게 떨쳐 본 적이
없었던, 말하자면 다소 우울한 역사에 대한 자각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인가. 간혹 민족주의적 주제를 지녔거나 그런 색채를 띤 책이나 드라마 등이 심심찮게
인기를 얻고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한다. 좀 오래전에 밀리언셀러로 큰 히트를 친 적이 있는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던가 최근 방영을 시작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드라마
'주몽', '연개소문' 등이 그런 예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그런 흐름을 타고 민족주의적 영화가 등장했다. 바로 한반도. 벌써 제
목에서부터 느껴진다. 영화 줄거리는 사실 간단하다. 한반도의 통일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강대국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이랄 수 있는 일본이 100여년 전 강탈기에 이뤄진 조약문
서를 가지고 경의선 개통을 저지하려 하고, 이를 막고자하는 재야사학자와 대통령의 노력이
그 반대세력과의 대결에서 결국 승리하고야 마는, 감격적 결말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단 영화는 재미있다. 과연 현실에서 그런 상황이 된다고 하여 일본이 그 따위의 주장으로
우리를 위협할지, 그 전에 그런 순수한 열정으로 민족의 희망을 지키고자 하는 안성기 같은
멋있는 대통령이 등장할지, 뭐 그런 현실적인 의문은 정치 등에 그다지 밝지 못한 나로선 결
코 판단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적어도 영화라는 하나의 상상 속 이야기 안에서 펼쳐지는 박
진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와 볼거리가 되어준 전투씬 같은 장면들은 역시 강우석의 이름을 믿
고 온 많은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았음을 극장 문을 나서며 느낄 수 있었다. 특히나 정부종
합청사 폭파 장면은 우리 영화의 중흥기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쉬리'에서의 건물 폭
파 장면을 오버랩 시키며 이제 우리 영화가 세계적 대작의 반열에 한층 더 가까워지지 않았는
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이 영화는 물론 오락영화라 해야할 것이다. 분명 예술영화는 아니고, 민족주의적 감정을 이
용한 상업영화라는 비난이 반드시 틀렸다고 할 수 없는 그런 오락영화다. 하지만 일정 부분
무거운 주제의식 또한 담겨있다. 바로 끝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했던 마지막 장면이 그런 주제
를 이야기해 주고 있지 않은가 여겨진다.
대통령의 마지막 제안을 거절하며 등을 돌려 나가는 총리의 모습. 결코 만날 수 없는 평행선
과 같은 두 노선. 이 나라엔 분명 둘다 존재한다. 영화는 물론 안성기, 조재현의 노선을 그 기
본 입장으로 취하며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지만 문성근과 같은 생각을 가진, 어쩜 좀더 현실적
판단이라 해야할지 모를 그런 노선도 존재하는 것이다.
언젠가 우린 대화합으로 하나되어 새로운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이룰 수 있을까? 100
년 전엔 이완용의 무리가 이겼지만 지금엔 고종황제의 자존심과 꿈이 현실이 될 수 있길 기도
해 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앞서 말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란 소설이 떠올랐다. 당시 크게 성공한
책의영향으로 그 영화도 만들어졌지만 흥행에 실패했고 나중에 TV로 보며 형편없는 영화에
실소를 금할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제야 그 소설이 제대로 영화화된 듯 했다. 학창
시절 읽고서는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우리의 처지를 생각하게 했던 소설이 비록 줄거리는 판
이하지만 그 주제의식을 그대로 지닌 채 영화화 된 것이다.
특히나 결말 부분은 그 책의 내용을 본받지 않았나 싶다. 영화에선 진짜 국새를 가지고 일본
을 세계의 법정에 세우는 대신 다소 우회적으로 항복을 받아내고 우리의 이득을 취했는데, 이
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를 침공한 일본에 대해 핵미사일로 본토를 공격하지 않고 무
인도를 사라지게 함으로서 항복을 받아내고 우리의 실리를 취했던 그 장면과 의미적인 측면
에서 너무도 흡사했다.어쩌면 감독이 그 소설을 원작으로 삼고 그대로 따라 한 것일까?
어쨌건 영화는 참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나날이 발달하는 우리영화.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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