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축복이 부재하는 대륙 아프리카. 아프리카는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먼 땅이고 미지의 대륙이지만 무엇보다도 그곳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대변하는 단어들은 상당히 열악하다. 가난, 기아, 내전, 등의 비참함과 남루함이 그곳의 막연한 이미지이자 얕은 인상이다. 어쨌든 아프리카는 아직도 병들어있다. 오랜 기간의 식민지 생활로 인한 후폭풍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또한 그런 식민지적 상황을 확실히 떨쳐버리지 못한 그곳은 여전히 병들어 곪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1994년 르완다 내전 역시 우리에게는 무관심한 먼 나라 이야기중 하나였다. 20만명이 넘는 주검들이 길거리에 널부러져 있어도 우리에게는 확인할 길없는 뉴스거리에 불과했다.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에 직접적인 영향력응 행세하는 유럽 역시 그런 상황을 간과하고 침묵을 일관했다. 세계는 그랬다. 가난한 나라의 비극따위에 관심을 주기에는 자신들의 이익이 중요했다. 그저 타인의 집안 싸움 따위로 치부하며 그들은 외면하고 방관하고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는 것으로 족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한 개인의 전기적 영웅담일지도 모르고 비극적인 참상을 담은 회고담이 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막연하게 지나쳐갔던 이슈거리에 불과했던 지난 날의 진실을 재조명하고 뚜렷하고 생생하게 어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에 위치한 고급호텔 '밀 콜린스'의 지배인인 폴 루세사바기나(돈 치들 역)는 가족들과 함께 남 부러울 것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의 삶에 불현듯 위기가 스며든다. 르완다의 오랜 고질병인 인종갈등이 폭발하여 민간학살로 이어진 것. 식민지 세월을 거치며 억압받던 다수의 후투족이 소수의 투치족을 학살하며 비극의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후투족인 폴은 투치족인 가족과 이웃의 안전을 위해 방법을 모색한다.
일단 이 영화는 한 인물에 대한 헌사와도 같다. 자신의 삶을 타인의 비극을 막는데 헌신을 다하듯 노력하는 인물의 모습은 한편의 휴먼드라마 그자체이다. 또한 그런 대의적인 노력이 출발하는 것은 가족을 지키겠다는 가장으로써의 신념이다. 사적인 소망은 대의적인 신념으로 확장되고 행동하는 신념으로 귀결된다. 그런 일련의 과정, 즉 자신의 안위에 대한 갈등과 고민같은 인간적 번뇌를 극복한 헌신과 노력이 보여주는 비범함의 자태는 어느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감동의 코드이자 활용되어져야 마땅한 클리셰이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르완다 내전에 대한 참상에 대한 회고에 있다. 94년으로부터 10여년이 지난 뒤에 완성된 이 영화는 10년의 시간이 묵인했던 그 시절의 비극을 되새긴다. 과연 우리는 그 비극에 그토록 무관심했는지, 왜 그런 사실을 방관했는지에 대한 뼈아픈 물음이 스스로에게 되새겨진다. 물론 중요한 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하지만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중요하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미약하지만 작은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 영화가 어필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무언가를 해달라는 것이 아닌 외면하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 그리고 부탁.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어느 먼 세상 이야기처럼 방관하지 말라고 말이다. 적어도 뉴스의 톱기사거리로 회자되는 화제거리로 치부하지 말아 달라고 말이다. 우리가 밥상에 앉아 소소한 일상의 대화를 나누며 스쳐지나듯 바라보는 TV 너머 그곳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남녀노소 가릴것없이 육살당하고 있는 아비규환의 현장이었음을 기억해달라고 호소하는 것만 같다.
이 영화를 보면서 올해 상반기에 개봉한 '콘스탄트 가드너'가 떠올랐다. 두 영화는 모두다 아프리카의 비극담을 조명한다. 중요한 것은 비극의 근원에 대한 고찰이다. 콘스탄트는 비극의 주체를 확실하게 규정짓고 손가락질한다. 하지만 르완다는 비극의 주체를 은연중에 노출하고 비극적인 상황을 좀 더 세밀하게 연출한다.
아프리카의 비극은 20세기 초반에 뜨거웠던 서구 열강들의 땅따먹기에서 비롯된 것이나 다름없다. 낙후되고 순진한 아프리카를 유린하고 강탈한 서구 열강들은 오늘날까지도 그들에게 경제적 지원이라는 미명하에 여전히 목을 죄고 있다. 반복되는 악순환에서 허덕이는 무지한 영혼들은 과거에 대한 청산은 엄두도 못 내고 자신들간의 작은 밥그릇 싸움에 피흘린다. 강대국에 빌붙어 자신의 재산을 불리기에만 급급한 부패한 정치가들, 근본적인 원인을 보지 못하고 오해로 얼룩진 역사 안에서 증오로 부풀린 이웃에 대한 보복만을 일삼는 내전, 그로인해 끝없이 피해를 받고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 물론 모든 아프리카의 풍경은 아니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여전히 곪아가고 있다. 그 깊어가는 상처의 치유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이 영화에 제시되는 것도 아니다.
이 영화가 갈구하는 것은 관심이다. 영화의 피날레에 등장하는 자막처럼 이 영화는 실화이며 끔찍한 과거사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런 과거사를 영화로써 접한 이들의 감상에 대한 의문이다.
사실 이 영화는 2004년에 완성된 것이지만 국내에서는 흥행의 열악성 덕분에 2006년이 되어서야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과연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봐야 하는가. 단지 한 개인의 헌신적인 감동드라마에 머물러야 하는가. 아니면 지구의 땅을 공유하는 다른 인간들의 비극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명해야 하는가. 그것은 단지 개인적인 문제이자 함께 짊어지고 가야할 인간으로써의 고민. 진실을 만나는 것은 흥미롭지만 그만큼 괴로운 일이다. 그 진실너머로 다가오는 현실의 무게감은 언제나 그만큼의 대가를 요구하는 법이니까. 우리는 이 영화에 지불한 입장료만큼의 고민을 한움큼 쥐어야한다. 단지 미화되고 잊혀지는 감동이 아닌 지속적이고 동참되는 고민을 말이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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