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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2 오후 4:1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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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교습소'란 공간은 대체 누굴 위한 공간이었단 말인가? 각계각층 청춘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삶의 실타래를 풀었던 공간을 반상회 정도로 착각한 것은 아닐까. 어정쩡한 위치에 놓여있어, 질풍 노도의 시기라 불리는 청춘들을 발레 동작에 맞춰 한 동작, 한 동작 차분히 배우는 발레의 움직임에 비유한 의도야 다분히 이해가 간다. 쉽지 않은 동작에 힘을 들이고, 노력을 기하면 결국 광명의 그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누군들 발레리노 혹은 발레리나를 꿈꾸지 않았고, 그렇게 못할 건 또 뭐가 있겠는가 말이다. 물론 소재는 주위에서 흔치 않는 것을, 그래서 꿈을 이루기엔 더없이 족하다는 것을. 삶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괴로움 등 모진 세파를 뚫고 밝은 미래를 보여주겠다던 그들의 야망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단순히 반항이라는 불투명한 단어로, 투정이라는 어수룩한 단어들로 그들의 내일을 밝힐 수 있단 말인가. 여러 가지 청춘들의 다양한 유형들을 영화 속에 통째로 집어넣고, 단순하게도 "살면서 깨우치면 되는 것"이란 주인공의 한마디로 이 영화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어수선하게 그네들의 이야기만 늘어놓고 어느 것 하나 정리하지 못한 꼴이다.
젊음의 방황과 혼돈, 상처를 아우르는 청춘들의 모습에서 아픔을 성장으로 승화시키는 것도, 성숙했을 때 비로소 미래에 환한 불을 지피는 것도 헛된 욕망에 불과했다. 내일에 호소하는 것도, 미래에 날갯짓을 파닥거릴 수 있는 힘도 영화 속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지지굴 대는 웅성거림만으로 그들의 내면을 꿰뚫어,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무리한 요구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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