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花鬪). 꽃들의 싸움이라. 상당히 낭만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 낭만적인 그림의 나열 뒤에는 붉은 핓빛이 가득 감돈다. 한번 손에 쥐게 되면 빠져나올 수 없다는 도박판의 그림자는 어쩌면 핏빛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화투장의 뒷면처럼.
아마추어의 화투판이야 운이 대세겠지만 프로들의 세계에서 운이란 건 진짜 천명일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운이란 건 없다. 기술만이 존재할 뿐. 도박판은 희비의 극적인 대립이다. 얻은자와 잃은자 사이의 기분차이를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으랴. 하지만 타짜들의 세계는 단순히 얻는자와 잃는자라는 결과적 용어로 설명할 수 없을테다. 단순히 얻거나 잃는건 없다. 뻇거나 혹은 뻇기거나이다. 그리고 그 치열한 공방전은 기술력의 차이로 승패를 좌우한다.
고니(조승우 역)는 자신이 일하던 공장에서 생각없이 화투 노름판에 끼어들었다가 자신이 3개월동안 모아둔 돈을 죄다 탕진한다. 그리고 자신의 누나가 이혼의 대가로 받아온 위자료를 몰래 뺴내다가 다시 노름판에 쏟아붓는다. 그러나 자신이 자리했던 그 자리가 단순한 화투판이 아니었음을 꺠닫는다. 그곳에는 타짜가 있었다. 그리고 고니는 그 타짜를 찾아나선다. 그때부터 고니의 인생에 붉은 핏빛 그림자가 스며든다.
삶은 한치앞도 알수없다. 평범하게 공장에서 일을 하던 고니가 종이 한장차이의 손놀림으로 상대의 주머니를 털어내는 타짜가 될 줄 몰랐던 것처럼. 아니, 그가 누나의 위자료를 빼내어 도박판에 쏟아부을 것을 몰랐던 것처럼. 하지만 예정됨을 모를 뿐 어쩌면 인생에는 정해진 룰이 있는 것 같다. 마치 끗이 떙을 이길수 없듯 고니가 도박판에 끼어들어 자신의 돈을 탕진한 그날 누나의 위자료가 그의 눈안에 들어왔듯. 우연이 모여서 필연을 만드는 게 인생아니던가. 인생은 수많은 우연이 밀집해서 쌓아올린 필연의 과정이다. 그 과정안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그 수많은 우연들을 자신에게 유리한 필연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마치 패를 바꿔치기하듯.
이 영화는 타짜들의 섬세한 손놀림과 대범한 심리전이 난무하는 도박판의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 도박판위로 가로지르는 탐욕의 허망함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그리고 그 허망한 놀이판에 실감나는 기름칠을 하는 것은 캐릭터라는 말이다.
도박의 최고수로써 겸손하면서도 매사에 신중을 기하며 사는 평경장(백윤식 역)과 이대 출신의 학력을 자랑하면서도 집요한 소유옥을 지닌 도박 설계자 정 마담(김혜수 역), 고만고만한 기술을 지녔지만 빼어난 구라로 도박판을 전전하는 고광렬(유해진 역). 이 세명이 고니가 타짜로서의 삶안에서 맴돌게 하는 인물들이다.
평경장을 만나 고니는 진정한 화투판의 세계를 체험한다. 단순히 패만 놓고 싸우는 세계가 아니라 목숨을 걸어야 할 순간도 오는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비열한 곳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이미 그 위험하고 비열한 세계에 뺼 수 없는 발을 들였다는 것을 꺠닫기도 전에 인정한다. 그리고 선택한다. 자신이 발을 들여놓은 이 세계의 끝까지 가보기로.
그 길위에서 그는 정마담을 만나 타짜로써의 무대를 다지고 고광렬을 만나 둘도 없는 짝패를 이룬다. 하지만 삶이 항상 무난한 것만은 아니다. 떄론 자신이 놓은 덫에 자신이 걸리기도 하고 그로 인해 죽을 고비도 넘긴다. 또한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위험에 빠뜨리기도 하고 그떄문에 원치 않던 일도 하게 된다. 하지만 마치 도박판에서 자신에게 오는 패를 유리하게 만들어내듯 위기의 상황조차도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물로 끌어낸다. 그리고 매순간 자신의 위기를 담대한 기질로 밀어붙여 반전시켜나가는 고니의 캐릭터적 매력이 이 영화의 주축과 같다.
무엇보다도 선과악의 구분을 명확히 짓기 보다는 인간으로써의 욕망에 대한 구심점의 높낮이를 보여주는 캐릭터적 완성이 이 작품의 매력적인 어필이다. 누가 옳고 그름보다는 누구의 욕망이 더욱 짙느냐의 문제다. 도박은 그릇된 욕망의 실현이다. 타인의 주머니를 털어서 자신의 행복을 채우겠다는 신념 자체가 이미 악마적인 집착이 아닐까. 그리고 그 도박판에 끼는 군상들의 모습 자체가 이미 그렇다. 그곳에는 선과 악이 애초에 없다. 이미 그 판에 끼는 것 자체가 그런 구분지음에 의미를 두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고니가 성수대교의 붕괴뉴스를 보고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하자 평경장은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면 우리같은 사람이 살 수 있겠냐?'라고 대꾸한다. 그렇다 그곳은 이미 그릇된 사회적 욕망이 노골적으로 실현되는 공간이다. 타인을 짓밟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곳. 일말의 동정심을 지녔다가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쉬운곳이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뼈속까지 벗겨내어야 한다. 비정하지만 그것이 그곳의 논리이고 당연한 질서다. 발을 들인 이상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책임도 권리도 발을 들인자의 몫이다. 억울하면 뺴앗기는 자가 아닌 뺴앗는 자가 되는 수밖에 없다. 욕망으로 충만된 그 현장에서 승자가 되는 것만이 길이다. 그리고 그것이 타짜가 된 자의 결론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 등장하는 어느 누구도 미워하거나 편애할 수 없는 이유다.
단지 그 욕망으로 점철된 판 위에서 따거나 잃거나이다. 어느 누가 되더라도 그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영화는 현실보다도 솔직하다. 현실도 비단 다를바없지 않은가. 부자와 빈자사이의 차이가 단순히 욕망의 차이로 인한 결과물이겠는가. 누구나 다 똑같다. 누구나 다 부자가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 길은 모두에게 열려있지 않다. 가진자가 될 수 있는 능력을 지닌자가 갖고 그렇지 못한 자는 갖지 못한다. 남의 돈을 따내는 스킬을 지닌 타짜들이 판돈을 긁어모으듯이 도박판의 생리안에 담긴 인생의 진리를 영화는 은근히 표출한다.
'범죄의 재구성'으로 충무로의 신성으로 떠오른 최동훈 감독은 더욱 섬세하고 박진감넘치는 이야기로 2년차징크스를 떨쳐냈다. 또한 매력적인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은 이 영화가 치켜세울 수 있는 가장 큰 무기이다.
다시 화투의 계절이 돌아왔다. 이제 2주정도만 지나면 추석시즌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지들은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서랍장안에 고이 모셔져 있던 화투패를 슬금슬금 꺼내들면 추석의 밤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깊어져갈테다. 물론 그곳에서 재산을 탕진하는 사람도 없을테다. 그곳에 타짜는 없을테니. 물론 있다고 해도 친척을 상대로 밑장빼기를 할리 있겠는가. 놀이는 즐겁다. 그건 어디까지나 놀이일 때 말이다. 놀이가 노름이 되는 순간 화투패의 붉은 뒷장이 욕망을 빨아들이며 손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을지 모른다. 욕망을 지니는 건 죄가 아니지만 그 욕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건 비극이다. 이 영화는 그런 비극적인 삶의 굴레를 여실히 증명한다. 정상에 서도 밑바닥에 있어도 절대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그곳. 타짜가 된 고니에게 남은 건 결국 자신의 곁에 있던 사람들이 죽거나 모두 다쳐버린 결과뿐이다. 최고의 자리에 있어도 그는 쓸쓸해야 했다. 그 화려한 한판 뒤에 드리우는 불신의 그림자.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가 지닌 이면적 진실과도 같다. 판이 커질수록 믿을 것은 자신밖에 없다. 마치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고니의 모습은 그래서 쓸쓸하다. 꿈틀거리던 욕망의 불꽃은 모든 것을 태우고 고독만을 남겼을 따름이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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