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영화를 시간을 때울려고 본다. 혹은 영화를 웃을려고, 울려고, 감동 먹을려고 본다. 혹은 액션을 즐기기 위해, 혹은 다다른 감정을 - 스릴러, 공포, 에로, etc. - 만족시킬 목적으로 본다. 나도 그런거랑 별반 다르지 않은 목적으로 영화를 본다. 혹자는 영화를 논리적으로 접근하기도 하지만. 난, 그런것 보담은 그냥 느낌으로 따라갈 수 있고, 또 느낌으로 남는 영화를 더 좋아한다.
영화 늑대의 후예들 (Le Pacte Des Loups / Brotherhood Of The Wolf) 을 인상깊게 본 사람이라면, 적어도 몇가지 감상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확실히 기억에 남았던 영화다. 감독의 독특한 스타일도 스타일이거니와, 이 영화만큼 다양한 장르를 소화시켜낸 영화도 - 당시로선 - 드물었기 때문이다. 액션, 호러, 드라마.. 로멘스. 크리스토프 강스 감독의 작품인데, 거진 5년에 한편씩 영화를 찍는 관계로 최근까지 겨우 3편의 영화가 전부다 - 1994년 작, 옴니버스 호러 공포의 이블데드 (Necronomicon) 를 제외한다면 - 그중 늑대의 후예들이 2번째고. 그럼 첫번째 영화는? 크라잉 프리맨 (Crying Freeman, 1995). 이 영화, 원작이 만화라지 아마? 대개는 원작의 재미를 따라가지는 못한다는 평이었지만, 그럼에도 무척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워낙에 만화를 미리서 봐본 관객들의 기대치에 부응하는지라 실망 또한 그만큼 크리라는 것을 감안한게 그정도라니, 나처럼 만화를 못본 사람에겐 확실한 볼거리인 셈이다.
자, 이번엔 원작이 게임이다. 사일런트 힐이야 레지던트 이블 류의 호러 어드벤쳐 장르 애호가들에겐 익히 알려진 게임이고, 지금까지 출시된 것만도 4편에 해당하니 어느정도 인기인지는 짐작할 만한 일이지만. 항간에 떠들썩했던 영화 레지던트 이블조차도 그냥 흥미있는 정도로만 보아주었던 경험이 있는지라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 영화 둠에서는 후반부 10여분 내외의 1인칭 시점 액션만 오, 전혀 새롭고 상큼발랄한걸, 했을 뿐 나머진 아예 기억에도 남아있지 않으니 오죽했을까. 극장 간판에 걸려있는 내내 가뿐하게 무시해 주다가, DVD로 릴리즈 되고 나서야 - 그것도 뭐 볼만한거 없나, 하는 마음에 집어들은게 이 영화였다. 무척 아쉽게도, 게임은 못해 봤다.
레지던트 이블, 둠 등에서 보았다시피.. 어쨌든 쏴 갈기고 보는 액션을 예상했었다. 살점이 터져 나가는 특수효과와, 피칠갑으로 점철된 슬래쉬 무비의 또다른 아류를 상상했었다. 내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고, 덕분에 팝콘을 먹으면서 좀비들이 두동강 세동강으로 아작나는 걸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감상하려던 것이 졸지에 그만 솟구쳤다 곤두박질치기를 거듭하는 감정의 멀미를 경험하는 상황으로 뒤바뀌어 버렸다. 간간이 가볍게 깜짝 놀라주는 즐거움 대신, 벽에 손톱이라도 긁어주고 싶을 만큼 경악스러운 모멘텀에 빠져 허우적거려야만 했다.
크리스토프 강스. 처음엔 이 감독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진작에 기억해 냈다면 아마도 극장에서 봤을 것이었다. 이런 영화는 그래줘야 한다. 극장에 가서는 대형화면에 써라운드 돌비에,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판타스틱, 몽환적 뉘앙스에도 흠뻑 빠지고 영상 만큼이나 환상적인 음악에도 마음껏 감동해야 한다. 영화를 본다는 건 그런거니까.
재가 하얗게 내리는 마을. 안개낀 도시. 싸이렌 소리. 칠흑같은 어둠, 그 속에서 깨어나는... 악몽. 하나씩 하나씩, 마을과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던 수수께끼가 풀려 나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충격이 더해지고, 마침내 공포의 실체가 드러나고, 그 분노의 심연과 마주할 즈음 해서는 - 30년을 간직해온 복수의 판타지로 화면을 끝없이 메워낼 즈음 해서는 - 영화는 스크린을 떠나 그만 손에 잡힐것만 같은 실체로 바싹 다가와 버린다. 판타지를 보면서, 무엇보다도 호러물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가져보기는 이제 웬만한 공포영화엔 눈도 깜짝하지 않은 이래로 실로 오랫만인지라. 영화를 보고난 후, 한참동안 어둠이 사무치도록 무섭게만 느껴지는 나 자신이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얼핏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만 같았던 이 영화.. 젠장, 이렇게 가슴아파도 되는거야.. 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수작이다. 잘만 하면 2편도 영화로 나오지 않을까. 이번에는 아내에게서 편지를 받고 사일런트 힐로 떠나는 남편의 이야기가 될텐데... 아님 말구...^^
- 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