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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retrospected by [봄날은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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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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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me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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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05 오후 1:36: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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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생활을 산악 경비중대에서 보냈던 그는 매일 해발 천미터가 넘는 산의 초소를 30분 내에 주파해야만 했고, 그 산 위에서 최소 5시간을 혼자서 멀뚱하니 서 있어야만 했다. 부대원 중 많은 이들은 산을 타고 오르내리는 가운데 무릎에 물이 차 올라 관절을 수술해야만 했고, 벼락을 맞고 살아 남은 병사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가장 열악하고 혹독한 군 생활을 거쳤다고 생각하는 다른 대부분의 군바리들처럼 그가 근무했던 산은 물론이고 이 세상의 모든 산이 철천지 원수인 것처럼 산 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또한 그는 군을 제대한 후에도 한동안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 조차도 극도로 기피하여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에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세월은 인간의 기억을 희석시킨다. 그것은 즐거움이나 행복은 말할 것도 없고 고통이나 절망마저도 그 반응 강도를 서서히 낮춰준다. 군을 제대한 후 2년이 지난 어느 겨울 그는 친구들이 갑작스럽게 계획한 지리산행을 동행하게 되었다. 뱀사골에서 시작하여 산 정상의 능선을 타고 노고단까지 갔다가 기나긴 내리막의 돌계단들을 걸어 내려오는 일박 이일의 여정은 그에게 산의 위대함을 순식간에 각인 시켜준 경험이었다.
추위가 뼈에 스미는 날씨였음에도 산을 오르는 순간부터 몸은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올라도 올라도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정상에 다다른 순간, 한없이 펼쳐진 산봉우리들이 하늘과 닿아 있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리스 신화에 시시포스(Sisyphos : 보통 시지프스로 알려져 있는)라는 인물이 있다. 코린토스라는 나라의 못된 왕으로 죽어서 지옥에 떨어졌는데 산 정상에 커다란 바위를 굴러 올리면 그 바위가 굴러 떨어져 다시 그 바위를 굴러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은 인물이다.
온 몸이 땀으로 젖어 바위를 굴러 올리는 순간에 그는 산 정상에 도달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다. 그리고 마침내 정상에 이른 기쁨도 잠시, 바위는 다시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그는 그 바위를 다시 굴러 올리기 위해 산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알베르 까뮈가 주목한 지점은 바로 여기였다. 무수한 고난을 거쳐 바위를 끌어 올렸는데, 그 바위가 굉음을 내며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그것을 망연자실 바라보던 시시포스는 산을 내려간다. 터덜거리며 내려가던 시시포스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까뮈는 바로 그 순간에 시시포스가 실존을 자각했으리라고 생각했다.
결국 내려와야만 한다는 것을 알지만, 결코 산을 완전히 정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오른다는 사실, 올라 보기라고 해야 한다는 그 과정을 중시한 것이 허무주의라면, 까뮈의 실존주의는 어떠한 존재도 그 존재에 이유가 있다는 것, 산을 내려오는 것도 하나의 존재 이유이고 그것으로 완벽하게 존재는 그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산은 오르는 이상으로 내려오는 것에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한치도 다르지 않게 오름과 내림의 반복되는 작은 곡선이 하나의 커다란 오름과 내림의 큰 곡선을 그리며 마감하는 삶과 닮아 있다.
노고단에서 한없이 이어진 내리막의 길은 길고도 지루하게 계속되었지만, 그것은 오르는 이상의 고난이 내림에서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어떻게 내려 가느냐 하는 것, 무엇을 자각하면서 내려가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것이다.
이후 계속되었던 지리산에 대한 동경은 이번 휴가를 지리산행으로 결심하게 하는데 아무런 주저도 없게 하였다. 아침 6시 남원행 버스에 올라, 남원에서 백무동에 가는 버스를 갈아타고 백무동에 도착하니 오후 1시였다.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만 13일 동안 하루도 비가 오지 않은 날이 없었고, 마지막 이틀 동안엔 태풍 올가가 기세를 떨쳐 사람들이 밖에 나올 수 조차 없었다고 식당 아주머니는 말했다. 겨우 햇빛을 볼 수 있는 날 왔으니 운이 좋은 편이라면서 친절하게도 냉장고에 얼려 두었던 물을 건네 주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 차례 하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등산로가 있었지만, 산은 금새 낯선 방문객을 반겨 하지 않았다. 험한 바윗길을 타고 오르자 곧 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 내렸다. 태풍의 기세가 얼마나 강했는지는 곧 확인되었다.
아름드리 고목들이 쩍쩍 갈라진 채 넘어져 있었고, 대나무도 많이 부러져 있었다. 오랜 세월동안 모진 시련을 견뎌왔을 나무들이었지만, 외롭게 자라있는 것 치고 성한 것이 별로 없었다. 자연의 법칙은 철저하게 독불장군을 용납하지 않는다.
장목터 산장에 도착하니 5시가 넘었다. 계획은 거기서 일박을 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천왕봉에 올랐다가 하산하는 것이었지만, 다시 태풍이 몰려 온다는 산장지기들의 말에 바로 하산을 강행하였다.
산장도 하나의 봉우리였지만, 안개와 구름에 가려 정상에 올랐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아쉽기도 하였지만, 그렇다고 휴가 내내 산장에서 발이 묶여 있고 싶지는 않았다. 해가 지기 전에 산을 내려와야 한다는 생각에 하산을 서두르다 보니 미끄러져 왼쪽 발목에서 허벅지까지 쭉 상처을 내고 말았다. 산은 조심스럽지 않은 자 또한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산에서는 사람들이 낯설지 않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수고하십니다", "조심해서 올라(혹은 내려) 가십시요", "반갑습니다"라고 말한다. 등산로와는 정 반대의 하산로를 택한 탓에 산을 다 내려오자 경상도였다. 운이 좋아 진주로 가는 차를 얻어 탈 수 있었다.
다음 목적지인 해남에 가기 위해서는 진주에서 광주 가는 버스를 타고 거기서 또 갈아타야 했지만, 진주 시내에 도착하자 몸은 녹초가 되어 있었고 밤은 깊어 방을 잡고 짐을 풀었다. 다음날 느즈막히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고, 계획을 바꿔 부산으로 목적지를 바꿔 광안리에 도착하니 해가 늬엿거리고 있었다.
태풍은 진로를 수정했는지, 바람이 약간 부는 외엔 날씨는 나쁘지 않았다. 숙소를 정해 짐을 풀고 바다를 바라보며 긴 백사장을 걸어가다가 방파제에 이르자, 황혼이 완전히 저물 때까지 방파제에 앉아 바다 너머를 바라보았다.
생각해 보면 그의 억지가 가져온 당연한 결과였다. 그녀는 아무런 동요도 없이 그 자리에 그냥 있고 싶어했는데 혼자서 갖은 부산을 떨다가는, 그래... 이제 그러는 네가 지겹고 나도 지쳤다, 그러니 이제 그만 두자라고 하는 건 그녀의 존재를 무시한 처사였다.
언제나 그는 그녀에게 그녀의 무성의함에 불만을 털어 놓았지만, 과연 그는 얼마나 진실했던가? 그는 과연 한 점의 부끄럼도 없이 당당하게 그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가? 과연 그는 그러는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언제나 자신 생각만 하지는 않았던가? 언제나 그의 기준과 자신의 가치 판단과 자신의 사고를 통해서 그녀를 이해한다느니 혹은 이해할 수 없다느니 하지는 않았던가?
저녁을 먹고, 비치 비키니라는 천장이 높고 인테리어 비용이 꽤 많이 들었을 법한 곳에서 맥주를 마셨다. 비가 가끔씩 내리기도 했지만, 곧 그쳤다. 다시 백사장에 나가, 파도소리와 바람소리와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와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소리와 차소리와 하늘이 꾸물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밤이 깊을 때까지 파도의 포말을 바라 보았다.
그녀에게 전화를 했지만 전혀 다른 목소리가 응답했고, 그는 아무 말도 없이 끊었다. 어두운 바다 너머에서 건설중인 부산의 동서를 잇는 거대한 다리의 형체가 희미하게 몰골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연을 집어 삼키고 있는 인간들의 만용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언젠가 그 댓가를 치루리라... 아니, 벌써 치루고 있는데도 멍청한 인간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 그러나 이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것이 그의 이기심에서 나온 것이든, 아니면 그의 인내심이 부족한 탓이고 모든 것이 다 그의 잘못이라고 하더라도, 이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생겨 먹었고, 그녀의 그런 점을 납득할 수 없다. 납득할 수 없는 것을 그녀는 설명하려 하지도 않고, 그 자체로서의 존재를 적나라하게 인정해 주길 바라지만, 그렇다면 그의 자체로서의 존재는? 그렇다면 그는 무엇인가?
그의 존재를 무시한 채, 그녀만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이 진실로 옳은 것이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그의 잘못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존재하는 것이 그렇듯이 하나의 존재는 그 자체로서 독특한 가치가 있다. 만일 두 존재가 서로에게 의지해 존재해 가기 위해서는 조금씩의 양보가 필요한 법이다.
그 양보의 범위를 규정하는 것은 끊임없는 대화와 설득과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믿지만, 그것조차 거부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흠... 역시 자기 합리화로 치닫고 있군.
그러나... 이제는 어쩔 수가 없다.
다시 서울에 온지 만 하루가 돼 가고 있다. 휴가 마지막 날인데, 언제 지리산과 광안리를 가봤냐는 듯이 종일 더위에 지쳐 헉헉거리고 있다. 다시 내일이면 일상으로 돌아가겠지...
참 따분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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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2001, One Fine Spring Day)
제작사 : (주)싸이더스, Applause Pictures, Shochiku Films Ltd. / 배급사 : (주)시네마 서비스, Applause Pictures, Shochiku Films L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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