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카고'는 그 동안 내 정신세계를 지배해 왔던, 아니 어쩌면 한국인들의 정서를 지 배해 왔던 '권선징악'의 드라마 구조를 부수어 버린 다소 충격적인 영화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영화는 우리가 흔히 드라마를 볼 때 으레 원하는 '해피엔드'의 결말을 취하고 있기는 하 지만, 선이 악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식의 전형적인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즉, 이 영화는 욕 망과 범죄가 파멸과 몰락으로 나아가지 않고 수많은 아이러니를 통하여 행복한 결말을 맺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는 왜 살인을 하게 되는 주인공들의 인생을 실패가 아닌 성공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는가? 배반의 아픔과 노여움으로 인하여 자신의 남편과 여동생을 죽인 벨마 켈리 와 자신을 속이고 이용한 정부를 죽인 록시 하트의 범죄는 우발적인 만큼 강한 배신감으로 인한 것이기에 어떤 면으로는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유야 어찌되었 든 생명을 앗아간 행위는 용서받지 못할 대죄이기도 하다. (따라서 영화 중반에는 정상 참 작이 이루어지지 않고 교수형을 당하는 여성 죄수가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벨마와 록시는 갖은 수단을 다 하여 때로는 비굴하게, 또 때로는 사람들을 속여가며 자신들을 비호하여 결 국에는 무죄 석방이 되고, 더 나아가 여성 듀엣으로서 무대에서 화려한 데뷔를 하게 된다. 대중이 원하던 것은 사회 정의나 질서보다는 보다 이슈가 되는 것, 자극적인 것이었기 때문 에 쇼(show)에 익숙한 그들에게 사실을 왜곡하고 극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색적인 결말, 그것은 성공과 실패의 묘한 경계선 사이에서 영화 '시카고'가 우리에게 던진 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인생은 그토록 수많은 아이러니를 내포하고 있는가. 지금 껏 배워온 절대적으로 모범적인 생활방식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닌 것인가. 무엇이 그토록 선과 악을 혼탁하게 만드는가. 이야기는 단순히 전화위복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엔 뭔가 씁쓸 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냉소를 안고 1920년대 시카고는 우리로 하여금 시대를 막 론하고 인생은 우리가 학습한 대로가 아닌 의외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