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짜 : 이보다 더 마음에 들 수 없는 영화
비록 요즘은 잘 안 읽는 편이지만, 허영만의 만화는 내 학창 시절 최고의 만화였다. 그런 그의 만화가 영화화 된다면 보는 건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다. <타짜>를 제대로 접한 적은 없지만, 그 전에 도박의 세계를 다룬 <48+1>를 읽어본 적이 있던 터라 그리 낯설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하게 했다.
STORY
고니는 도박하는 걸 보고 호기심에 했다가 이제껏 본 돈과 누이의 위자료까지 몽땅 날리고 만다. 그로인해, 복수의 화신이 되어 자신을 이렇게 만든 이를 찾아 복수하고자 하나 찾을 길이 없다. 우연히 도박판에서 말썽을 일으키던 고니를 본 평경장의 눈에 들고, 고니는 평경장을 스승으로 모시고 타짜로서의 수업을 받고선 진정한 타짜의 길을 걷게 된다.
어느 날, 평경장을 따라 부산으로 가서 정 마담을 만나게 된 뒤 평경장과 떨어져 자신만의 길을 간다. 며칠 뒤, 평경장의 죽음을 알게된 그는 이제 그의 복수를 위해 날을 세운다.
과연 그는 자신의 복수와 평경장의 복수를 할 수 있을까?
타짜의 볼거리
빼어난 원작, 뛰어난 배우, 탄탄한 구성
허영만의 만화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이는 이미 김성수 감독의 영화 <비트>에서도 충분히 얘기가 되었던 바가 있다. 원작이 비록 만화지만, 결코 얕볼 수 없다. 탄탄한 조사를 바탕으로한 시나리오와 장면을 그대로 영화화해도 좋을 만큼 탄탄한 연출은 그의 만화가 여타 국내 만화가와는 다른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들 역시 기대 이상의 완벽한 연기 그 자체였다고 본다.
비교적 오랜 상영 시간이 약점이 됨에도 불구하고 이를 관객에게 인식시키지 않게 만드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야기와 배우의 연기,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는 그러한 부분에서 배우들이 선보이는 영화 속이 면면은 그 어느 영화보다 긴장감이 넘치고 관객을 끌어당기는 연기를 펼쳐낸다.
물론 이를 기반으로 하는 건 바로 감독의 역량이라고 본다.
최동훈 감독은 전작 <범죄의 재구성>처럼 관객을 스크린에 몰입하게 만들 줄 아는 감독이란 것이 이번에도 제대로 보여준다.
도박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다
내가 허영만의 만화 <48+1>을 좋아했던 이유는 바로 그의 만화 속에 살아숨쉬는 도박의 모습이다. 평범했던 사람을 피해자로 만들고, 그들이 어느새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하고 만다. 그것이 바로 도박이 지닌 가장 무서운 점이 아닐까 한다. 그 모습이 영화 <48+1>에서는 제대로 못 보여주었지만, <타짜>에선 그 모습을 보여준다.
타짜가 될 수 있는 건 누구나 다 될 수 있다는 것 역시 도박의 무서움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하게 된다.
홍콩 도박 영화의 장점을 흡수한 영화
내게 도박 영화하면 흔히 홍콩 영화들을 떠올리기 쉽다. 그만큼 그들이 90년대 양산해 낸 도박영화와 드라마들은 홍콩 느와르 영화의 또 다른 정점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패와 카드를 둘러싼 미묘한 심리전과 갈등이 주를 이루었던 이 시기의 영화들은 2000년에 들어선 지금 그 모습을 보기 힘들어졌다. 이 영화는 그 영화에서 보여줬던 영상과 연출에서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간다.
홍콩영화에서 기본적으로 의리와 복수를 위한 인물들 간의 심리전을 극한대로 보여주려 해왔다. 그래서, 언제나 큰 판에 모든 것을 거는 한탕주의의 전형인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때 대개 비교적 느린 전개를 통해 이들의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며 관객에게 무언의 흥미를 유발시킨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보다 그 앞에 복수란 인식에 앞서 이들이 펼치는 건 극중 대사처럼 도박을 아트를 추구한다. 저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상대를 속고 속이는 모습들을 너무나 매력적이게 보여주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영화의 매력이다. 또한, 속도감에 있어 홍콩 영화에 비해 빠르게 전개시키면서도 극중 긴장감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 역시 이채롭다. 타짜의 아쉬움
내게는 아쉬워할 게 없다
허영만표 만화를 좋아하는 터라 실망할 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지만, 보고 난 뒤 이 영화에 대한 아쉬움은 전혀 없었다. 좋은 걸 어떻게 하겠나. 다소 상영시간도 내게는 그리 문제될 건 없었다.
타짜를 보고
홍콩 도박 영화에 열광하던 시절 내 모습을 떠올리다.
홍콩 느와르 중에서도 도박 영화는 상당 기간 흥행했던 장르이다. 지존무상을 필두로 정전자, 도성, 도협 등의 영화에 열광했고, 드라마인 천왕지왕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
또한, 만화 <48+1>에 얼마나 열광했는 지 모른다. 게다가 명절이면 부모님은 항상 친척끼리 모여 하는 놀이가 화투이니 보고 느는 건 보는 눈은 당연한 것이라고 본다. 그 붐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 카드 놀이와 화투 붐이 일기도 했었다. 친구들끼리 모여 재미로 시작한 카드 게임이 시간이 지나자 언제부턴가 조금씩 그 모습을 변하는 걸 보기도 했다. 놀이에서 어느 순간 도박처럼 맛들여 중독되어가는 모습 말이다. 극중 고니의 모습을 보면 그 당시에 나와 친구들이 저런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했다.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돈이 목적이 되어 어느새 자신을 잃고 마는 모습은 정말 그 당시 조금만 더 엇나갔다면 나 역시 그런 길을 걷고 말았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이제는 카드, 화투 등은 남의 일이 되긴 했지만, 그러한 유혹은 너무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다 준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보다 더 마음에 들 수 없는 영화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영화는 내게 지난 시절의 여러가지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이 영화 더 빠져들었던 건 아무것도 모르던 고니가 타짜가 되는 과정과 진정한 타짜로 성장하는 과정에서의 이야기는 영웅담 이외에도 다른 영화와는 다른 인간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점과 도박 자체를 예술의 경지로 보여주려 한 점이 다른 도박 영화들과는 다른 <타짜>가 지닌 진정한 매력이라고 본다.
그래서, 내겐 이보다 더 마음에 들 수 없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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