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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아버지와 떠나는 낚시여행, 리턴
kukuku77 2006-10-04 오후 9:15:26 1419   [6]
아, 이 영화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난감합니다. 아니 이런 기분은 차라리 벅참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듯하군요. 종교적 우화부터 그리스 신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를 읽을 수 있는 코드는 무궁무진하니까요.   

  영화에서 아버지는 원래부터 없었습니다. 안드레이와 이반의 환상이 그를 다시 불러들인 거죠. 그들은 아버지가 필요했습니다. 그들에게 아버지의 의미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낚시여행을 가기 위해 필요한 존재? 아니면 누군가가 옷을 찢었을 때 일러바칠 수 있는 또 하나의 사람? 물론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 영화에서 아버지는 자식들의 정신적 성장을 위해 마땅히 존재했어야 할 누군가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들의 유년시절에 존재하지 않았죠. 따라서 이반과 안드레이는 그 부재를 극복해야 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없는> 아버지를 만들어, 그와 함께 외딴 섬에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만의’ 회합장소로 무인도만큼 적합한 데가 또 어디 있을까요.

  어느 날 돌아와 보니, 없는 줄 알았던 아버지가 떡하니 방에서 누워서 자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방문을 열어 아버지가 누워 자는 모습을 봅니다. 아버지는 마치 죽은 예수처럼 자고 있습니다. 이반과 안드레이는 달려가 아버지를 얼싸안지도, 감격에 겨워 펑펑 울지도 않습니다. 그냥 그들은 돌아온 탕자를 잠자코 바라보기만 하죠. 하다못해 아버지의 몸을 한 번 쓰다듬어보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예수처럼 이미 살아 있지 않으니까요. 아버지가 베고 있는 베개 위엔 하얀 깃털이 가볍게 팔랑팔랑하고 있었습니다. 키에슬롭스키가 그랬듯, 즈비아진체프 감독도 깃털을 통해 타르코프스키에 대한 오마주를 표현하고 있네요. 안드레이나 이반 같은 이름이 러시아에서 흔한 축에 낄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대놓고 쓰이지는 않겠죠? ^^

  식사하는 장면에서, 우리의 이 아버지 예수는 아이들에게 포도주를 따라주네요. ‘죽기 전에’ 갖는 최후의 만찬일까요. 아이들은 창고에 내려가 아버지 사진이 담긴 책을 열어젖힙니다.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거죠. 당연히 사진 속엔 아버지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안도합니다. (나중에 다시 이 사진을 바라볼 때 사진 속 아버지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아, 그리고 사진이 꽂혀 있던 페이지엔 공교롭게도 렘브란트의 것으로 보이는 그림이 있네요. <아브라함과 이삭>이란 그림에서, 아버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삭의 목을 처단하려고 합니다.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는 거죠. 영화의 말미를 생각해보세요.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나요? 그래요, 이번에 칼자루를 쥔 쪽은 아들 이반이었습니다. 이반은 아버지를 위협합니다. 그리고 탑에 다시 한 번(처음에 다이빙하기 위해 올라갔던 그곳에 이어) 오르기 시작하죠. 감독이 이 장면을 집요하게 쫓는 이유는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서일까요? 그러나 꼭대기에 도달한 이반이 한 뼘 더 자라 있지는 않습니다. 이건 팀 버튼의 영화가 아니잖아요. ^^ 다만 두려움의 공포에서 벗어난 또 다른 이반이 있을 수는 있겠죠.

  아버지는 이반을 구하려고 오르다 예기치 않게 죽게 됩니다. 아, 아버지는 정말 희생양 예수인지도 모르겠군요. 형인 안드레이는 아버지의 죽음을 비교적 담담하게 받아들입니다. 반면, 동생 이반은 상실감과 죄책감에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장이란 이렇게 힘든 것입니다. 하나의 벽을 넘으면 또 하나 극복해야 할 뭔가가 나타나는 것이죠. 아버지는 상자 하나(그 낡은 집에 있던)만을 남기고 떠나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반과 안드레이는 이번 낚시여행을 통해 낚은 ‘용기’를 가지고 이런 시련들을 잘 견뎌내겠죠. 그게 인간들이 제일 잘하는 일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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