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필름, 실내 촬영 등 일부러 거슬러 올라간 듯한 촬영방식과는 상관 없이, 일상적이고 사소한 에피소드, 그리고 그 안에서 생생히 살아난 관계묘사들은 더없이 싱싱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소품적 에피소드들과 소품적 촬영방식이 놀랍도록 어우러져 향수(혹은 가보지 못한 과거에 대한 판타지)와 신선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고나 할까.
굳이 형식에 있어서 그의 출세작 <천국보다 낯선(84)>이 생각났다. 그 영화의 절제된 카메라, 거친 화면은 집요하면서도 거칠었지만, <커피와 담배>의 카메라는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에피소드의 즐거움을 증폭시켜주는 의미에서 융통성있게 움직였다. 영화 속의 그 여백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천국보다 낯선>은, 그가 연출을 공부하던 무렵 빔 벤더스의 <사물의 상태>제작 후 남은 35mm 필름을 구해 어렵게 찍은 것이고, <커피와 담배>는 그 후 20년 동안의 영화 여정에 있어 쉼표와도 같은 영화이기 때문이 아닐까.(짐 자무쉬가 그렇게 얘기하기도 했다. 휴식과도 같이 찍었다고 .이 영화는 지난 86년 부터 한 에피소드씩 제작되어 온 영화이다.)
그런데 그 휴식은 결코 나태하지 않았다. 각 에피소드들 마다 둘 혹은 셋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왜 사람관계, 여러 모양이 있지 않나. 저 둘의 관계에서는 누가 누구에게 더 영향을 많이 주겠구나, 왠지 저 둘의 관계에서는 이런 큰 문제가 있는 것 같구나, 하는 것들이 영화에서 너무도 섬세하게 묘사되었다. 그것도, 기대하던 것보다 훨씬 유머러스하게. 실생활인지 영화인지를 헷갈리게 할 정도로 상황과 캐릭터가 딱딱 맞아떨어졌다. 내러티브 영화에선 줄 수 없는 또 다른 감동을 만난 기분이었다. 일상의 상황, 그리고 관계. 그러나 그 속에 숨은 유머. 이것이 우리가 영화에 기대하는 또 다른 즐거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 가능성,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진정한 휴식으로서 영화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다.
이전에 미처 몰랐던, 영화가 줄 수 있는 마법같은 어떤 요소, 그리고 커피와 담배(얘네가 진짜 주인공)가 진한 에스프레소처럼 존재하는 영화. 자극적이지 않은 진함, 그 한 잔의 휴식, 한 번 경험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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