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건 그 곳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특히 중고등학교 시절을 돌이켜보면서 냉정하게 말하면, 우린 그 속에서 강자와 약자를 명확히 나누는 법을 사회화의 이름으로 익혔고 각각의 대상에게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 것이 득이 되는지를 계산하고 행동했던 것 같다. 그 누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을까?
그 공간을 벗어나면 그렇지 않을 것 같았지만 사회 속에 발을 디딘 우리의 모습을 보면 그 다짐은 지켜지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즐거웠던, 그래서 다시 돌아가고픈 기억도 있지만, 학창시절을 생각하면 가슴 한 구석이 아파올 정도로 서늘함이 느껴지는 때도 있다. 결코 마냥 행복한 순간이었노라고 확언할 수는 없다.
<영화 소재의 보고 '학교'>
인생의 희노애락, 그 중에서도 이야기가 될만한 이슈들을 다루는 것이 영화다. 이런 면에서 학창 시절에 일어나는 일만큼 영화로 만들기 좋은 소재도 없는 것 같다. 학교를 배경으로 만들어지는 영화는 때로는 훅 불면 날아갈 것처럼 가볍고 경쾌한 면만 다루는 경우도 있지만, 보고 나면 심각해지는 무겁고 어두운 소재를 다루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후자인 경우가 더욱 인상적이고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2005년 겨울에도 어김없이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을 소재로 한 영화가 만들어졌다. 바로 <6월의 일기>가 그것이다.
영화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알지 못한 채 광고하는 것들만 본다면 관객은 이 영화를 살인 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형사들이 등장하는 스릴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도 맞다. 하지만 이 영화의 본질은 현재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알고있고 경험하고 있는 왕따 괴롭히기 현상에 있다. 집단적으로 따돌림을 당하고 가혹하게 괴롭힘을 당하는 소위 '왕따 학생'과 그와 함께 학교를 채우는 모든 사람들이 핵심 인물이 되어 벌어지는 연쇄 살인. 그리고 그것을 추적하는 형사들의 이야기가 <6월의 일기>의 핵심이다.
<어디에나 있었던 우리가 앓던 정신병>
<6월의 일기>는 왕따를 당하던 학생이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가해자들을 대상으로 기록한 일기장에 적힌 날짜에 기록된 방법과 동일하게 급우들이 하나씩 살해되는 사건으로 시작한다. 그 사건을 추적하던 형사 추자영(신은경)과 김동욱(문정혁)은 문제의 일기장을 작성한 왕따 피해 학생은 이미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학생들을 중심으로 사건을 추적하면서 연쇄 살인사건을 둘러싼 처참하고 슬픈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어디에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지메'니 '왕따'니 하는 말들은 없었다 하더라도 그 말이 지칭하는 대상과 그 대상이 당했던 일들은 지금이 아닌 아주 오랜 과거에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영화 속 형사 추자영(신은경)은 왕따 괴롭히기 현상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가장 밑바닥에 한 사람을 둠으로써 자신은 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며 위안을 얻게 되는 것이 왕따를 만들고 괴롭힘으로써 얻게 되는 '편리함'이라고 말이다. 경쟁이 치열해서 당장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만 내가 살 수 있는 상황에 처한 인간이 그 상황이 주는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선택하는 그릇된 결과가 왕따 괴롭히기 현상이리라. 항상 나보다 아래에 있을 대상을 정해놓고 괴롭히고 학대하면서 자신은 그보다는 우월하고 강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심리적 위안을 얻는 정신병이 학교라는 공간을 더욱 썩어가게 만들어가는 것이리라.
<빛나는 재료, 아쉬운 연출>
이 영화를 단순히 스릴러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스릴러로서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긴장감이 덜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릴러로 보아 넘기기에는 영화가 담고 있는 사회 비판적인 경고의 메시지가 강하다. 영화 속에서 진지하게 다뤄질 때가 된 '왕따 현상'에 대한 접근도 좋고, 가해자를 누구와 무엇으로 봐야할 지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신은경, 김윤진, 문정혁 세 배우의 연기도 연기 자체로만 봤을 때는 무난하다.
훌륭한 소재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은 시나리오, 배우들의 좋은 연기가 있기에 <6월의 일기>는 잘 만들어졌다면 <살인의 추억><여고괴담>과 괘를 같이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영화는 그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연기 자체는 비난할 수 없지만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은 틈이 너무 많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 영화 초반에 문정혁과 신은경이 티격태격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 부분의 편집이 다소 느슨해서 머뭇거리는 문정혁의 모습까지 스크린에 보여질 정도였다. 좀 더 촘촘한 연출과 편집이 가능했다면 노력한 배우들의 연기에 더욱 힘이 실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 전체적으로 연기의 흐름이나 감정의 흐름이 일정한 톤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분명 필요한 시퀀스들임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흐름을 유지하지 못하고 각각 돌출되는 연출은 아쉬움이 남는다. (스포일러성이라서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관객과 줄다리기를 하듯이 좀 더 긴장감 넘치는 연출이 가능했을 것인데, 너무 쉽게 장면들을 툭툭 던져놓은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성공적인 영화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좋은 소재와 이야기, 배우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촘촘한 구성과 연출력의 부재로 성공을 놓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반드시 고민해야 할 슬픔과 죄의식>
아쉬움은 있지만 <6월의 일기>는 왕따를 소재로 분명 진지하게 우리에게 화두를 던지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어쩌면 방관자였을 나 자신의 학창시절이 떠올라 소름이 끼치기도 했고, 영화를 보고 나서는 슬픔이 느껴졌고 무거운 짐을 가슴에 하나 담은 기분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런 기분 느끼고 싶지 않다면 이 영화를 선택하지 않겠지만, 분명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문제이고 (살인사건이라는 다소 선정적인 소재를 사용하긴 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분명히 일원이었던 학교와 급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 스크린을 통해 만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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