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없는 남성은 비참하다. 물론 여기서 능력이란 경제적인 능력, 즉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한 집안의 가장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과 맞닥뜨리는 남성에게 경제력의 유무는 가족의 생존권과 연관된다. 가족들이 굶지 않게 하기 위해, 가족들이 편안한 집에서 쉴 수 있도록 하기위해 돈을 물어와야하는 것은 21세기가 지난 오늘날의 현실에서도 변하지 않는 정언명령과도 같다.
IMF이후 가장들의 몰락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넥타이를 메고 양복을 입고 출근하지만 실직당한 회사대신 공원으로 가 시간을 떄우는 아버지들의 모습은 새삼 새롭지 않다. 가장으로써의 책임감과 남자로써의 자존심을 무너뜨릴 수 없는 아버지들의 허세같은 뒷모습이 처량해보이는 것은 그래서일테다.
그러다보니 생계형 범죄가 늘었다. 일확천금을 위해 금고를 터는 도선생이 아닌 먹고 살기 위해 담을 넘는 장발장들이 많아진 것이다. 이 영화는 그렇게 절박한 기로에 선 두남자의 어설픈 유괴극을 통해 사회적인 아픔의 공감대를 자극하려는 것 같다.
거액의 주식투자실패로 사채빚을 짊어지고 매달 사채이자에 허덕이는 동철(김수로 역)은 같은 날 이자를 마감하는 동병상련 민호(이선균 역)를 만난다. 절박한 두 사람은 모종의 납치극을 계획하고 실행하는데 결국 부잣집 딸인 태희(고은아 역)를 납치하고 성공에 기뻐하지만 그것도 잠시, 동철의 핸드폰으로 걸려온 전화는 뜻밖의 소식을 전한다. 동철의 딸을 유괴했다는 유괴범의 전화. 여기서부터 영화의 이야기는 속내를 알 수 없게 뒤틀어진다.
일단 김수로라는 배우가 출연한 이상 이 영화의 굵직한 장르하나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다만 수위의 차이를 조율할 따름이다. 표정만으로도 이미 관객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배우의 캐릭터는 유용하면서도 위험하다. 웃음의 유발은 용이하지만 자칫하면 영화의 무게감을 연약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김수로라는 배우의 이미지를 담보로 잡고 좀 더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는 것 같다.
유괴라는 것 자체가 범죄다. 그러나 극 중 동철과 민호는 자신들의 행위가 범죄가 아닌 절박한 노력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자신들은 사람을 유괴한 것이 아닌 물건을 빌린 거라고. 생계를 위한 유괴는 결국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도덕적으로는 용서될 수 없는 행위지만 인간적인 측면에서 동정심이 유발되지 않을 수 없음이란 이중적 잣대의 분기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하는 것일까.
영화는 단순히 웃고 넘기기에는 걸리는 부분이 많다. 이 영화의 웃음은 사회세태에 대한 블랙코미디의 성향이 짙다. 살기 위해 유괴를 계획하는 두 남자의 모습은 인간성 타락을 자초하면서까지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그릇된 행동의지이지만 한편으로 손가락질하기에는 애처로운 소시민적인 소박함의 동정표가 묻어난다. 그저 웃고 넘기는 소비형 코메디가 아닌 웃고난 뒤 무언가 짚이는 의식형 코메디가 된다는 것이다. 범죄를 권하는 사회. 그것은 자유민주주의의 웃음을 띤 자본주의의 날카로운 이빨아래 희생당하는 서민들의 정서와 맞물린다.
그래서 자신들을 잔혹하게 흔들어대는 사회의 틈바구니에서 그들이 지켜내는 것은 가정이라는 보금자리다. 아버지로써 자식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철이나 납치당한 딸을 위해 생전처음 버스와 지하철 타기도 서슴치않는(?) 태희의 아버지가 관통하는 것은 부성애의 확인이다. 자식을 보호하려는 아버지로써 혹은 가정을 지키려는 가장으로써의 책임감과 의지안에서 잔혹한 출근길을 나서는 아버지들의 심정은 파악되고 동감된다. 그것이 전쟁터같은 출근길에 오르면서도 웃어야 하고 웃을 수 있는 아버지 혹은 가장들의 이유가 아닐까.
또한 이 영화의 장점은 잘 살린 캐릭터들로부터 그려지는 인물의 관계도이다. 특히 태희의 아버지를 연기하는 오광록이 눈에 띄는데 많은 영화에서 짧지만 굵직한 인상을 남긴 그의 연기는 이 영화에서도 굵직한 인상을 남기며 백옥같은 대사들로 관객에게 어필한다. 또한 최근 악역 전문 배우로 각광받고 있는 김병옥은 이 영화에서도 피한방울 나지 않을것같은 악랄한 사채업자를 소화해낸다.
이 영화는 무언가 생각해볼 여지를 남기는 웃음을 준다. 포복절도하는 웃음 뒤에 남는 허망함을 주는 몇몇영화의 안타까움에 비하자면 이 영화는 만족스럽다. 무엇보다도 영화가 스스로 포장해버리는 과오에 대한 미화적 집착을 이 영화는 버린다. 고지식하게 착하게 살자며 뜬구름잡는 가르침보다는 악한 일을 했을 떄 그 행위에 대한 책임감을 져야 한다고 설득하는 것. 그것이 이 영화의 현실적인 가르침이자 덕목이다. 건질 것 있는 웃음 그 자체만으로도 말이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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