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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과도한 자의식, 하지만 흥미로운... 장미의 행렬
lkm8203 2006-10-22 오전 7:42:51 856   [5]
이 영화 <장미의 행렬>도 예술가적 자의식으로 무장한 채, 다양한 형식 실험을 선보이는 영화지만, 썩 재밌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우선 이 영화는 웃기는 장면이 많습니다. 마담 자리를 놓고 서로 앙숙이 된 레다와 에디가 싸우는 장면을 웨스턴의 대결장면처럼 처리한다든지, 극중 자막을 삽입하여 등장인물이 생각하는 바를 알려준다든지 하는 장면들 말입니다. 그냥 웃자고 집어넣은 장면이 아니라 ‘소외효과’를 염두에 둔 듯한 장면도 있습니다. 에디가 자해를 하며 영화가 비극의 정점에 이르자, 관객이 감정이입할 틈을 주지 않고, 뜬금없이 뿔테안경 아저씨가 나와 이 영화에 대한 자화자찬을 쏟아내는 엉뚱한 장면-잔인하단 기분이 들만큼 절묘한 타이밍이었습니다-이 바로 그렇지요. 심지어 에디는 극중 삽입된 인터뷰에서 자신이 출연한 영화-바로 <장미의 행렬>!-가 근친상간을 다루고 있다며 이 영화의 결말까지 노출시키는데, 브레히트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겠죠.

이 영화의 시간구조는 무척 특이합니다. 영화 초반부의 장면은 후반부에 다시 등장하는데 전후 사건과 인물들간의 갈등의 정체를 드러내며, 일종의 순환구조를 완성합니다. 에디의 과거에 대한 비밀도 영화 중간중간 삽입되었다가 후반에 가서야 전모가 드러나구요. 69년 영화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무척 세련된 느낌이에요.

이 영화의 줄거리에 대해 알지 못한 상태에서 보았기 때문에, 게이 바의 주인인 곤다의 정체가 밝혀진 순간 꽤 충격받았어요. 아들이 아빠와 자다니... 급기야 저런 것까지 보게 되는군요. -_-; 어머니에 대한 애정, 아들과 관계를 맺고 자살하는 아버지,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자신을 눈을 멀게 하는 아들... 해당되는 인물들의 행위와 운명이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외디푸스’를 연상하기에 무리가 없습니다. 저런 과격한 설정으로 결국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순 없으나, 자기 눈에 칼을 꽂는 꽤 쇼킹한 장면에선 웅장한 비극미가 느껴졌어요.

영화가 게이바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많은 게이들(정확히 말하자면 게이가 아니라 트랜스젠더들입니다만 극중에선 스스로를 게이라고 부르더군요.)이 등장합니다. 주인공 에디는 상당한 미인인 탓에,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여성성을 강조하기 위해 연출하는 과장된 제스쳐를 그‘녀’가 보일 때 노골적으로 웃는 관객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리수의 하이퍼-여성적인 제스쳐를 비웃는-재수없어할망정-사람이 없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트랜스젠더라는 게 홀랑 드러날만큼 남성적으로 생긴 레다가 비슷한 행동을 하면 관객석에선 (특히) 여성분들이 자지러지게 웃더군요. 레다는 연인 곤다를 젊고 예쁜 에디에게 빼앗기고 결국 자살하고 맙니다. 그녀는 ‘공주 스타일’의 요란한 수의를 입고 생전에 그녀가 좋아하던 장미 한다발을 가슴에 품었는데, 관객 중 특히 여성분들은, 그 여인의 비극적인 삶에 어떤 동정도 생기지 않는다는 듯이, 깔깔 웃어대더군요. 에디가 레다처럼 꾸미고 누워있었다면 저렇게 신나게 웃어대지는 않았을 거에요. 여성의 가치를 외모로 판단하는 여성은 같은 짓을 하는 남성보다 훨씬 덜 떨어져보입니다. 불쾌한 경험이었어요.

여튼 무척 재미있는 영화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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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행렬(1969, Parade of Ro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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