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몹에서 발췌. 좋은 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이라는 제목은 영화의 초반부에 여주인공 격인 시네아드의 동생 미하일이 이름을 영어식으로 대지 않았다고 영국군에게 죽임을 당한 뒤, 장례모임에서 할머니가 부르는 구슬프지만 강단이 느껴지는 민요에서 나왔다. 푸르른 "보리밭"이 아일랜드에 대한 환유라면 "바람"은 그 아일랜드 전체를 역동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다.
점령 영국군의 치졸한 압제에 맞서서 영국의 후퇴를 이끌어 낸 IRA의 소박하지만 가슴을 졸이는 1920년 대의 독립운동, 그 가운데 민중의 권리와 타협없는 독립을 지지한 좌파적 성향의 동생 대미언과 미완의 민족자치를 받아들이는 우파적 성향의 형 테디. 그들이 보여주는 대립과 형이 동생을 처형하는 비극적 결말에 대해서 우리만큼 감정이입을 하며 가슴 졸이고 또 통탄할 수 있는 관객이 또 있을까.
하지만 그 옛날 드라마 "노다지"에서 최근의 "태극기 휘날리며" 그리고 "JSA"까지도 좌우대립과 민족전쟁의 덧 없음과 그 위에 선 인간의 형제애적 가치로 비극을 갈무리 하는데 익숙한 우리가 켄 로취를 통해 진정 배워야 할 것은 휴머니즘을 빙자한 역사에서의 도피가 아니라 피를 요구하는 치열한 역사 안에 남아서 문제를 서사하는 방식일 것이다.
조선일보의 칼럼니스트였던 선우 휘의 "노다지"가 보여 주었던 형제적 대립의 비극적 성격은 아직도 한국의 근대사를 보는 가장 타당한 방식으로 재생산 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보리밭"을 "흔드는" 것은 조용해야 마땅할 보리밭에 고통을 가져오는 것이고 "바람"이라는 것은 보리밭을 내버려 두지 않는 외부의 거대한 힘, 역사일 것이다.
하지만 켄 로취에게 있어서 "바람"이라는 것은 역사의 주체로 서는 개인과 개인이 소통하여 거대한 변화로 화하는 에너지이며 "흔드는" 행위야말로 진정 보리밭을 질기고도 성성한 보리밭 답게 만드는 것이다. 제목 "흔들다"의 현재형 또한 주목할만 하다. 아일랜드 독립전쟁은 1920년대에 끝난 것이 아니고 아직 현재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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