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글을 쓰기에 앞서 난 정말 이 영화에 실망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나라에서 동성애라는 주제를 다룬 영화가 장편으로 개봉되기란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니.
영화는 '후회하지 않아'라고 외쳤지만, 글쎄...적어도 나는 후회했다.
영화를 보기 전에 나는 무비스트 사이트에 올려진 감독과의 인터뷰를 읽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작품에서 신파는 필수불가결의 존재임을 거론했다.
하여 나는 영화를 보는 동안 내내 지나친 우연과 갑작스러운 사랑에 반문하지 않으려 무던히 애를 썼다.
하지만 조금 심했다.
예상외로 이 영화는 선전하고 있다.
제작 당시에 상영관과 배급사를 잡지 못해 전전긍긍했던 것과 지금은 사뭇 다른 것이다.
내가 극장에 갔을 때에도 상영관은 빈자리가 거의 없이 꽉 들어차 있었다.
내가 예상했던 것들처럼 이십대 초반의 동인녀들이 한가득인 상황도 아니었다.
다른 영화들을 볼 때처럼 여러가지의 보통 사람들이 가득했다.
아마도 요즘 세상은 퀴어 영화를 제법 잘 받아들여주는 모양이었다.
나는 동성애에 대한 혐오감이 전혀 없다.
스스로가 겪은 일이 아니라 잘 이해하고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경멸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퀴어 영화라서 후회했다는 것 또한 아니다.
제 발로 가서 본 것이니 당연히 그렇겠지만 말이다.
이 영화를 보고 대번에 딱 떠오른 생각은 스토리 라인이 딱 '아이돌 팬픽' 구조라는 느낌이었다.
부유한 집안의 자제이지만 항상 외로웠던 재민과 고아원생 출신으로 가난하지만 대학에 가고자 꿈이 있는 수민.
그리고 한 순간에 사랑에 빠져서 연인 사이가 되는 두 남자.
이런 일은 보통의 영화에서도 너무나 식상하고 너무나 믿기 힘든 우연과 인연이 아닐까?
두번째는 대사에 있었다. 퀴어 영화라지만 개봉한 이상 모든 관객이 보는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의 대사는 모든 관객들을 배려하지는 않는다.
성기를 운운하는 대사야 다른 영화들에서도 나오니 상관 없지만 때때로 그들이 하는 대사는 느끼하다 싶을 정도로 진부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몰입이 안 될 정도다.
나와 같은 줄에 앉은 사람들이 정말 심각한 장면임에도 웃음이 터져버렸던 건 절대 남남커플의 연애가 우스워서가 아니었다.
그들의 대사가 지나치게 상투적이거나 아니면 반대로 파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결말 부분에 이르렀을 때 나는 내 스스로가 후회하고 있음을 절실히 느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결말도 결말이고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에 본의 아니게 공포영화나 긴급출동 SOS가 되버린 상황도 그렇고 말이다.
영화를 다 본 뒤 극장을 나올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졸았다는 말을 했다.
영화를 볼 때 되도록 아무리 지루해도 잠들지 않으려는 나조차도 동감하는 말이었다.
너무나 조용하고 지루해서 눈을 깜빡이는 시간이 더뎌지는 장면이 더러 있었다.
물론 재밌으라고 만든 영화가 아닐테지만.
내가 이 영화에서 건진 건 주연들에게서가 아닌 조연들에게서 였다.
차라리 그들의 대사가 맛깔났고 차라리 그들의 연기가 리얼했다.
이 영화를 본 내 정의는 한 마디로 '올 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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