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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의 곡예와 해석의 미 보랏 :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
peacenet 2006-11-23 오전 2:48:34 1370   [5]

"유태인들을 경주시키는 건 너무 잔인하기 때문에 그대신 (그들을) 십자가에 매단다." 목하 전미흥행 연속 2주째 1위를 내달리고 있는 코메디 영화, 보랏 :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Borat : Cultural Learnings of America for Make Benefit Glorious Nation of Kazakhstan)에서 졸지에 미국문화와 동화되기를 시도하는 주인공이 던지는 대사들이 대략 이와 같다. 이 심히 인종차별적이고 사회문제적인 발언이 여과없이 관객에게 흡수될 수 있는 건, 순전히 그 사회 배경에 대한 암묵적인 공감대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성차별에 대한 인식이 전무한 보랏, 뒷골목의 힙합문화가 상징하는 바를 알지 못하는 보랏은 바지를 엉덩이에 걸치고 팬티를 노출시키는 패션을 스스럼 없이 구사하고, 그야말로 유색인종과 그들의 소수문화를 직접적으로 비하시키는 언행을 서슴치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서투른 패러디는 고스란히 풍자가 되어 관객과 끊임없이 긴밀한 호흡을 유지한다.

영화속에서 보랏의 역을 맡은 배우는? 미국에선 너무도 잘 알려진 영국계 엔터테이너 샤샤 바론 코헨이다. 미국영화전문채널 HBO에선 "디 알리 지 쇼" 의 진행자로도 유명하다지 아마. 이 사람, 유태인이다. 그것도 아주 독실하고 근본주의적인 유대교 출신이다. 때문에, 일부 유태인 사이에선 그의 이번 영화가 아주 반갑지만은 않은 것 같다. 각설하고.

이렇듯 풍자, 또는 패러디의 아슬아슬한 경계는, 하필 인종차별주의자들을 옹호하는 대사와 장면들이 아무런 전제조건도 없이 그대로 관객에게 던져진다는 것이고, 그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그 대사와 그 대사를 읇는 주인공과 영화속의 제반 상황들을 종합해서 제 나름대로 판단을 내리게끔 유도한다는 데 있다. 다행히 코드가 맞는 관객은 이 아주 말도 안되는 상황에 한껏 박장대소를 보낼 것이지만, 혹자는 그로써 스스로의 차별주의적인 한계를 정당화시켜내는 데 만족해버릴 수도 있다. 풍자엔 정답이 없으니까. 다 보기 나름이니까.

그런 점에서 이 영화, 다분히 정치적이다. 영화속의 설정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되고, 한번 꼬고 그걸 또다시 비틀어서 해석을 해야 제대로된 의미전달이 되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의 수준도 천차만별이고. 그네들의 성향 또한 천차만별이니 다같이 실컷 웃고 나서도 누군가는 그 의미를 전혀 다르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겠지. 영화는 화두를 던졌고, 이제 그걸 해석하는 건 관객의 몫이니까.

이토록 유쾌, 상쾌, 통쾌한 풍자영화를 관람하면서도 심각하기를 원하는 일부 관객에게는, 영화 속에서 보랏이 야기시키는 각종의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는 해프닝들이 행여 그로써 사회적으로 어긋난 사고와 언행들을 옹호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한 몫 하겠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또 어느것이 바람직하고 어느것이 바람직하지 않은지, 심지어는 저게 보랏이 그러니까 우습게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지향적인 사회현상인지, 흑인들의 힙합문화를 조롱하는 건지, 아니면 그런 힙합문화와 주류사회의 부조화를 꼬집은 건지. 정색을 하고 파고들면, 난해한 요소들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아니, 유태인들을 정말 십자가에 매달아도 되나?

이렇듯 풍자영화가 가지는 한계를 인정해 주는 것, 또한 영화라는 매체가 가지는 장점이겠다. 저마다 자유로울 수 있는 제각각의 견해들이 공존을 할 수 있다는 것, 또 그것이 스크린을 통해 모종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 너무 따져 들어가면 골치아파지지만, 과연 내가 저놈의 유머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한건가, 라는 질문을 한번쯤 던져본다고 해서 그리 나쁠 것도 없겠다. 그마저도 귀찮으면, 왜 하필 보랏이 미국문화를 풍자의 대상으로 한건지.

하필이면 왜 카자흐스탄인지. 이런 질문 한다고 해서, 아무도 뭐라 하지는 않을 테니까.

- 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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