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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자기파괴성에 대한 숨막히는 방관 복수는 나의 것
sieg2412 2006-12-27 오전 2:49:29 1704   [2]

여기 억세게 운이 나쁜 두 남자가 있다. 청각장애인인 한 남자는 신부전증 환자인 누나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수를 써 보지만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를 방해한다. 급기야 그는 한 아이를 유괴하기에 이르지만 정작 유괴의 동기인 누나는 자살하기에 이르고 역시나 운이 나쁜 그는 의도와 달리 유괴한 아이가 죽는 것을 막지 못한다. 또 한 남자, 그는 사업이 어려워진 것도 모자라 딸아이를 유괴당하고 그의 딸은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온다. 남자는 자신을 속인 장기밀매업자를 찾아 나서고 다른 남자는 유괴범을 찾아 나선다. 꼬리를 무는 복수. 꼬리를 무는 폭력.


박찬욱은 <복수는 나의 것>을 통해 끝없는 폭력의 순환을 복수에 맞물려 아름답게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그 수단은 적나라한 폭력이고 이는 하드보일드라는 생소한 장르를 통해 낯설음의 표피를 뒤집어썼다. <복수는 나의 것>은, 절망적인 사건을 통해 삶의 굴레가 연쇄적으로 무너져 버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는 간단한 진리를 설파하는 영화다. <킬빌>이 복수의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하는 데 치중하고 <사마리아>가 언제나 그렇듯 감독의 인간에 대한 동정어린 경멸적 시선을 말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면 <복수는 나의 것>은 그보다 일이년 정도 앞서 복수의 논리학을 집대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잔인한 복수극이 아름다울 수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박찬욱의 복수극은 분명 아름답다. 박찬욱은 잔혹한 칼부림을 최대한 미화하기 위해 미니멀리즘이란 표현방식을 택했다. 즉, 과잉을 철저히 배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에서 필요없는 대사는 거의 없다. 게다가 주인공인 류는 심지어 청각장애인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런 이유로 이 영화에서는 필요불가결하게 극단적인 침묵이 꽤나 오래, 자주 반복된다. 그러다 보니 필요없는 대사를 줄이는 과정에서 생겨난 침묵의 반복이 도리어 관객을 불편하게 한다. 여기서의 불편함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왜냐하면 <복수는 나의 것>은 인간 스스로의 본성에 내재된 잔혹성과 복수심에 대한 날카로운 반문이기 때문에 관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영화의 일차적 목적을 철저히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최소주의는 또 다른 어드밴티지를 챙긴다. 영리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미니멀리즘이 성공적인 장치로 작용한다고 해서 <복수는 나의 것>의 모든 대사가 유효한 것은 아니다. 영미라는 캐릭터의 대사량은 나머지 모든 캐릭터의 대사를 합한 것과도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영미는 첫 등장부터 죽는 그 시점까지 끊임없이 입을 놀린다. 그러나 그러한 대사가 모두 유효한가? 영미의 말을 하나로 집약한 신은 아마도 머리가 두 개라고 믿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영화의 흐름에 있어 불필요해 보이는 이 이야기는 류가 '왼쪽? 오른쪽?'과 같은 터무니없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종료되고 그 이야기는 두번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즉 영미는 영화 전체에 있어 과장하여 말할 때 불필요한 인물로 오브제에 지나지 않는다. 조금 완화하여 말하자면 대체가능한 기능적 인물이다. 박찬욱이 영미란 인물을 통해 구사하고자 한 것은, 마지막 반전의 용도를 제외하자면 아마도 대사의 불필요성과 과잉의 폐해 따위가 아닐까.

 

 

지극히 모순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복수는 나의 것>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진정 복수의 궁극적인 개념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이는 과연 류와 동진의 복수가 끝이 맞닿은 순환고리를 이루었는가 하는 질문으로 연결될 수 있다. 류는 기어코 장기밀매업자들을 수소문해 살인으로 통렬한 복수를 이룬다. 옆구리의 상처는 그러나 피를 흘린다. 수백명을 죽여도 이 자리는 채워지지 않는다는 듯이. 동진의 경우는 더욱 극명하다. 류를 강가로 끌고 가 마치 유선이 그랬듯 최대한 절망적인 상황을 만든다. 그러나 유선은 돌아올 수 없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복수는 상실된 것을 복구해주지 않는다. 오직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채워줄 뿐이다. 그리고 그 가치는 타인, 복수의 대상에게 있어 또 다른 상실의 의미로 찾아간다. 복수는 일방통행이다. 돌아오는 것은 없다.


따라서 그들의 결말에 비추어 볼 때, 복수의 정당성에 대해 논하고자 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가 복수를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나는 죽고 신장은 잃고 유괴한 아이를 본의 아니게 죽게 한 류나, 아내는 떠나고 사업은 망하고 아이는 잃게 된 동진이나, 복수에 성공했다고 말하면 복수는 처단의 동의어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까 정작 박찬욱이 가감없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복수의 동기를 가진 순간 처절히 무너지는 인간의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무너짐의 의미는 ‘괴물’이 되는 것이다. 영화는 류의 사연이 나오는 라디오와 그 방송을 듣는 류 남매의 평안한 모습으로 시작하지만 후반부에서 최반장은 류를 일러 “보통 잔인한 새끼가 아니라”며 괴물이 된 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동진도 다를 바 없다. 딸을 누구보다 사랑하던 동진은 류를 죽이고 난 다음 팽 기사의 아들이 죽었다는 전화를 받고 매몰차게 전화를 끊는다. “전화 잘못 거셨다”는 그의 말은, 자신의 죄의식을 덜기 위해 소년의 보호자를 자처하던 동진은 류를 처단한 지금의 동진과 다른 인물이라는 감독의 변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복수는 나의 것>은 한 인간이 괴물이 되어가는 모습을 중첩시켜 보여준다. <복수는 나의 것>의 가제가 <파괴된 사나이>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복수는 나의 것>에 이은 복수 3부작의 두 번째 이야기, <올드보이>에 이르면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이우진은 오대수에게 처절한 복수를 가하지만 그것이 복수의 과정임을 모르는 오대수는 자신의 무고함 - 으로 가장한 응보 - 에 대해 재차 - 오대수의 입장에서는 초회의 시도이나 - 복수를 감행하게 된다. 이우진은 그러나 "왜 가두었느냐"가 아니라 "왜 풀어줬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가둔 이유도 풀어준 이유도 아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미 자신의 복수를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처절히 망가졌다는 사실이다. 혀를 잘라 낸 오대수는 딸에게 줄 천사 날개를 달고 주정을 부리던 오대수일 수 없다. 복수를 마치면 이전의 오대수로 돌아갈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지만 그것은 철저한 오산. 복수를 - 당하는 것이 아닌 - 하는 과정에서 얻은 피폐함은 급기야 한 사람을 바꿔놓고 말았기 때문이다. 복수가 만들어 낸 그는 더 이상 오대수가 아니다. 하나의 괴물일 뿐이다. 그래서 오대수는 '오대수'와 '몬스터'를 분리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이우진은? '올드 보이'의 성장이 멈춰버린 이유를 주체할 수 없는 복수심에서 찾아도 무리는 아니리라. 자연의 섭리조차 복수심으로 멈춰버린 인간은 괴물로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렇다면 이처럼 한 인간이 냉혈한으로 변해가는 살떨리는 모습을 전달함에 있어 과연 관객이 눈을 떼지 않게 할 수 있느냐 하는 과제가 남는다. 류와 동진은 말 그대로 끔찍하게 변해가며 정해진 수순에 따라 끔찍한 최후를 맞는다. 이 점에 있어 박찬욱은 중간중간 코미디를 끼워넣는 방법을 선택한 듯 싶다. 분명히 말하건대 그가 시도한 것은 개그가 아니다. 혹자는 한국영화에서 코믹 영화를 표방한 작품 중 <반칙왕>을 제외하면 진정한 코미디를 구사한 영화는 없다고 한다. 코미디와 개그의 간극은 크다. 개그는 순간적인 불일치가 몇초간의 실소라도 유발할 수 있다면 그 목적을 달성하지만 코미디는 그러한 일시적 현상으로 대체될 수 없다. 코미디는 오히려 특정 신을 놓고 볼 때 차라리 웃음을 유발할 수 없다. 코미디는 서사 전체의 맥락에 있어, 혹은 이전 장면과 대치되어 좀 더 총체적인 부조리에 기초하며 거기엔 페이소스, 혹은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박찬욱이 극을 끌어가기 위해 선택한 코미디를 보자. 가령 이런 것이다. 영미는 무정부주의 동맹 소속이다. 장기밀매업자들에게도 재벌을 해체하자며 안내문을 넘기는 그녀는 말하자면 좌파적 사상을 가졌다고 하겠다. 그런데 영미는 유선을 유괴하기 위해 고무줄놀이를 하며 "무찌르자 공산당" 같은 가사를 그것도 매우 흥겹게 읊조리는, 말하자면 이런 부조리다. 또 다른 장면. 팽기사는 자신을 해고한 동진에게 항의하기 위해 할복을 시도한다. 그런데 칼을 못 찾는다. 연필 없이 등교한 학생에게 "군인이 총 놓고 전쟁 나간다"고 핀잔을 주는 경우는 있어도 자해하려는 사람이 칼이 없다는 것은 끊임없이 긴박감을 주다가 어느 순간 숨통이 트이도록 한다. 팽기사의 코미디는 아직 끝이 아니다. 기어코 칼을 찾아낸 그는 마침내 할복을 시도하지만 잠시 후 러닝셔츠를 걷어올린 그의 배는 끝내 깊숙이 찌르지 못하고 여기저기 그어놓은 칼자국만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을 뿐이다. 그야말로 더 이상 살 수 없을 지경에 몰려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뛰쳐나온 사람이 정작 실행의 순간에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여기저기 깔짝댄 모습은 고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공통점이 발견된다. 박찬욱의 코미디는 분명 웃음을 유발하지만 그것은 폭소도 미소도 아니다. 결코 생각없이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웃음을 던지지 않는 것이다. 그가 주는 웃음은, 분명 우습지만 관객의 심리 한가운데에 불쾌함 혹은 불편함을 던져 놓는다. 그래서 박찬욱의 코미디는 블랙코미디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구약성서 신명기에는 “복수는 내 것이라 그들이 실족할 때 갚으리로다.”라는 문장이 있다. 즉 복수는 신의 영역이니 제목은 역설적으로 복수하지 말라는 의미가 된다. 강물 속에서 동진은 말한다. “너 착한 놈인거 안다. 그러니까, 내가 너 죽이는 거 이해하지?” 역시 몹시도 역설적인 말이다. 자기가 죽일 대상에게 동의를 구하는 이들 앞에서 세상의 인과율은 그 효력을 다한지 오래다. 그리고 카메라는 괴물이 괴물을 처단하는 모습을 무심한 익스트림 롱숏으로 담아낸다. 마치 팔짱을 낀 채 관조하듯 말이다. 혹은 잠시 후 살아남은 괴물도 처단당할 것임을 알고 있듯이. 세상의 문법을 저버리고 신의 고유한 영역을 침범한 자에게 신은 어떤 관대한 대우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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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나의 것(2002, Sympathy for Mr. Venge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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