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드의 금빛 도약 <007 카지노 로얄>의 대니얼 크레이그
■ 본드 팬들은 싫어했었다. 숀 코너리, 로저 무어, 피어스 브로스넌 등의 뒤를 이어 대니얼 크레이그가 제6대 제임스 본드로 확정됐을 때 팬들은 “촌스럽게 생겼다”, “키가 작다”, “금발이다” 따위를 이유로 들면서 본드와 크레이그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있음을 주장했다. 지난 11월17일 미국과 영국에서 동시 개봉한 <007 카지노 로얄>은 개봉 3주차 주말까지 미국 내에서만 1억1600만달러의 흥행수입을 올렸고 평단에서도 굉장히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제 크레이그는 6대 본드로서 전세계 다수의 인정을 받았다. 21번째 시리즈물 <카지노 로얄>에서 전례없이 거칠고 말썽 많은 스파이로 분한 그를 지난 12월1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만났다. 까다롭고 완고한 인상과 달리 대니얼 크레이그는 어눌한 말투와 천진한 웃음소리를 이어가며 인터뷰에 응했다.
■ 많이 받은 질문일 텐데, 한국에 처음 온 소감. 이전에도 한국에서 열리는 영화제 등의 행사 때 와달라는 초청을 받았는데 일정이 맞지 않아 못 왔었다. LA에 한국인 친구들이 있다. 가끔씩 그들과 만나 밥도 먹고 하면서 들었던 나라를 직접 와보게 되어 기쁘고 신기하다.
■ 두껍게 잘 가꾸어진 몸이 인상적이었다. 본드 역할을 위해 더 신경써서 관리한 부분이 있는가. 그랬다. 가능한 한 육체적으로 잘 다져지고 건강한 몸으로 보이길 원했다. 이번 영화를 준비하면서 담배를 끊었다. 계속 운동을 해야 했기 때문에 끊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에서 본드가 육체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이 (관객 눈에) 가능해 보이기를 원했다. 높은 곳에서 점프를 한다든지 치고 받는다든지 할 때 내가 그것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것 말이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나의 만족이고, 또 하나는 내가 본드 역을 소화하기 위한 실질적 필요다.
■ 많은 본드 팬들이 당신의 캐스팅을 반대했었는데, 결국 영화는 흥행했고 미국 언론의 리뷰도 좋게 나왔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 영화가 잘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기쁘다. 나를 비난하던 사람들이 있는 것도,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당황스러웠던 건 사람들이 나를 비난한 시점이 내가 이 영화를 하기 전이지 이후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그것도 이해할 순 있다. 007 시리즈에 대한 엄청난 애정이니까 이해한다. 어쨌거나 지금은 다들 좋아해주니 행복하다. 영화를 보기 전에 나를 비난했던 사람들도 일부는 마음을 바꿨을지 모른다. 그것 역시 어찌 되든 상관없다.
■ 당신의 캐스팅을 반대하던 사람들의 이유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이 했던 말들은 그들의 의견이기 때문에 내가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나는 내 할 일을 했을 뿐이다. 팬들은 내가 제임스 본드를 내 맘대로 해석해서 망쳐놓을 줄 알고 걱정하고 반대했던 것 같다. 근데 내 입장에서 보면 내가 그럴 이유는 전혀 없었다. 내가 본드 역을 수락한 건 이번 영화가 원작에 충실한 주인공을 보여준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 혹 머리를 갈색으로 염색할 생각은 없었나. 없었다. 절대 없었다. (웃음) 이미 최근에 다른 영화에서 그렇게 했었고(<인퍼머스>) 이번 영화에서는 그러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 시나리오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대목은 어떤 것인가. 본드가 사랑에 빠지면서 변화를 겪는 대목이었다. 카지노 경기에 참여하기 전의 제임스 본드는 한 가지 면만 보였던 인물이라면 카지노 경기 이후의 본드는 다른 면들까지 드러낸 인물이 된다. 그때부터 아, 저게 바로 제임스 본드, 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 본드 역에서 가장 큰 도전으로 느꼈던 것은. 육체적인 부분이 컸다. 카지노 게임 장면을 예로 들면, 본드가 카지노를 하다가 중간 휴식시간에 계단 참에서 몸싸움을 하고 여기저기 멍들고 상처입은 꼴이 되어 돌아와 다시 카지노를 한다. 촬영할 때도 계단 액션신을 찍고 난 다음 바로 메이크업을 수정하고 돌아와 카지노 경기신을 찍었다. 그 대목이 육체적으로 제일 힘들었던 부분이다.
■ 정신적인 부담감을 느낀 대목들은 없었나. 있긴 있었을 텐데, 음, 나는 선택적으로 기억을 하는 사람이라, 잊어버렸다. (웃음) 육체적인 고통이 컸기 때문에 그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물론 지금은 다시 괜찮아졌다. (웃음)
■ 독서나 글쓰기나 그림 그리기, 음악 등 다른 문화예술 분야에 취미를 갖고 있는지. 음악 듣는 것과 책 보는 걸 좋아한다. 그림은 그리지 않는다. 책은 매우 빨리 읽는 편이다. 그러나 웬만하면, 시간이 있을 땐 가족이나 친구들과 있으려고 한다.
■ 최근에 읽은 책은 무엇인가. <눈먼 자들의 도시>라고 작가가 주제….
■ 사라마구. 맞아, 사라마구. 사실 그 소설의 전제는 매우 간단하다. 인간이 감각 하나를 잃으면 동물과 다름없어진다는 아주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한 거다. 굉장히 아름답고 시적인 책이었다. 그리고 무서운 이야기였던 것 같다. 읽으면서 무서웠다. (웃음)
■ 현재 크리스 웨이츠 감독의 신작인 판타지물 <황금 나침반>과 댄 해리스가 연출하는 <아이, 루시퍼>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황금 나침반>은 맞고 <아이, 루시퍼>는 아니다. 그 영화는 안 하기로 했다. idbm(해외영화 DB 사이트 IMDb를 잘못 말함)이 쓰레기다. (웃음) 원작이 매우 유명한 판타지 소설이고, 성장 이야기인데 내용이 아주 좋다. 내가 맡은 역은 좀 작긴 하지만 괜찮다. 니콜 키드먼과 에바 그린이 함께 출연한다. 니콜 키드먼은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배우라서 더 좋다.
■ 시리즈 차기물인 <본드22>에도 캐스팅됐다. 언제 결정된 내용이며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카지노 로얄>에 캐스팅될 때 동시에 캐스팅되었다, 고 생각하고 싶다. (웃음) 아직 결정된 건 하나도 없다. 계속 얘기 중이다.
■ 더 이상 기반으로 할 원작도 없고 완전히 새로 쓰는 내용일 텐데, 본인의 의견이 많이 반영될 수 있는 프로젝트인가. 그럴 거다. 그렇다고 믿고 싶다.
<씨네21-2006년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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