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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걸>[왕의 춤]권력, 춤, 음악 그리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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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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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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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1-14 오후 7:3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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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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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넬리>와 <가면속의 아리아>등 주로 클래식 음악이 인상적이었던 영화를 만들어 왔던 벨기에 출신의 영화감독 제라르 코르비오. 그가 17세기, 태양왕 루이 14세의 절대 권력, 예술에 대한 사랑과 열정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왕의 춤>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것은 오랜만에 음악이 영상과 제대로 맞물리는 꽤 완성도 있는 프랑스 시대극을 만나는 기쁨으로 다가왔다.
언젠가 말하였던 것처럼 난 시대극을 좋아한다. 시대극의 묘미라 함은 주로 비극적인 내용에 역사적인 아이러니를 다룬다는 데 있다. 그 내용이 픽션이던 논픽션이던 시대극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영화는 웅장함과 장엄함을 느끼게 하며 시대극의 분위기에 맞는 음악 화려한 또는 웅장한 음악으로 보는 이들의 영화적 갈등을 충족시키곤 했다. 또한 시대극에선 현실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멋진 의상과 말투, 그리고 드라마틱한 사랑을 볼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이 영화 <왕의 춤>은 프랑스 왕 “루이 14세”의 시대를 다룬다. 아마도 시대극이라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왕조가 영국은 헨리 왕조이며 프랑스는 루이 왕조였을 것이다. 왕실과 관련된 시대극은 대부분 비극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왕권을 둘러싼 암투, 암살, 그리고 사랑이 없는 결혼, 비극적 사랑이 그 내용의 대부분이었으니…. 하지만 요즘에 나온 시대극은 예전의 그 감각을 느낄 수 없어서 안타까운 점이 없지 않았다. 최근에 접한 시대극인 기사 윌리엄은 픽션을 바탕으로 신세대의 입맛에 맞춘 약간은 펑키한 시대극이어서 그런가 ? 재미있긴 했어도 내가 늘 시대극에서 기대한 그 무언가는 빠진 느낌이었다. 그러나 모처럼 <왕의 춤>을 보면서 오랜만에 예전 60, 70년대 정통 고전 시대극에서 맛보았던, 내가 늘 시대극을 접할때마다 기대를 하는 그런 감동과 흥분을 맛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예전 나에게 고전 시대극의 재미를 느끼게 해 주었던 프랑코 제페릴리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찰스 자롯 감독의 <천일의 앤>을 생각나게 한다. 특히 <왕의 춤>의 루이 14세의 권력에 대한 고민이 <천일의 앤>의 헨리 8세의 그것과 비슷하여 그런 느낌이 더욱 강하였다. 교회와 결탁한 어머니, 어머니라고 하기엔 아들이 아닌 왕의 권한만을 생각하는 너무도 비정한 모습, 왕이라는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어머니, 재상들, 교회의 교황들과 외롭게 싸우는 모습 그리고 한 왕이기 이전에 아들로 고민하는 모습 등등….
허나 이 영화는 전혀 고전적이지 않다. 전체적으로 고전적인 느낌을 주지만 어찌보면 현대적 감각이 다분하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옳겠다. 2001년이라는 시대적 감각에 맞아 떨어지는 멋진 영상과 그 멋진 영상에 어우러지는 새로운 느낌의 바로크 음악 등은 이 영화가 과연 고전영화가 아닌 현재에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륄리라는 다소 생소한 음악가의 음악이어서 그런가 ? 고증에 충실하였다는 배경음악이 더욱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 영화의 연출 또한 현대적 지닌다. 예전의 시대극처럼 이 영화는 이제는 나이가 든 주인공이 과거 자신의 화려했던 권력이나 사랑, 음악에 대한 정열등에 대한 회상의 형식을 띠고 시작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것에만 머무르지 않고 과거와 현재의 교차 편집을 감행한다.그러니까 감독은 “현재-과거-현재” 형식의 고전영화 스타일을 과감히 파괴를 한다. 처음에 륄리가 자신의 발등을 찍으며 과거, 청년시절 어린 루이와 우정을 나누었던 것을 회상하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 륄리의 상황을 보여주고 다시 과거로 넘어가는 과거와 현재가 쉴새없이 교차되지만 그것은 전혀 어지럽지도 않으며 자신의 육체적인 아픔이 더해 갈수록 자신의 처지가, 왕과의 관계가, 자신의 권력이 극으로 치달았다가 이내 사그라드는 자신의 인생역경을 자신의 발에 대한 고통과 동일시 표현한다. 물론 그런 과정들을 통해서 권력이라는, 왕의 지위라는, 왕의 권력을 등에 업고 있는 그리고 그것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인생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프랑스의 절대 군주였던 태양왕 루이 14세이다. 그리고 그의 궁정 작곡가 장 밥티스트 륄리, 그리고 희극작가 몰리에르. 영화 ‘왕의 춤’은 춤과 음악을 축으로, 한 시대의 권력을 지배한 세 남자 이야기다. 이 세 사람은 음악과 춤 그리고 예술로 얽혀있는 공생관계였다. 5살의 어린나이에 왕의 지위에 올라 이름뿐인 왕의 모습이 얼마나 공허한가를 뼈져리게 느낀 루이 14세가 자신의 자유를 위해 택한 춤과 음악. 그리고 그의 자유를 맘껏 발산하게끔 도와주는 젊은 음악가 륄리. 왕의 교회에 대한, 그리고 재상 세력들에 대한 세력 견재를 위 풍자극으로 젊은 루이의 왕권을 공고히 해준 몰리에르.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 대한 두터운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마치 그들은 한 몸인 것처럼 늘 같이 생각하고 같이 웃고 같이 아파하였다. 하지만 권력에 점점 물들어 가는 그들의 모습은 사랑하는 사람들도, 같이 아파하난 사람들의 모습들도 아니었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 어쩌면 권력에 의해 순수한 사랑이, 왕을 사랑한, 몰리에르를 사랑한, 아내를 사랑한 륄리의 모습들이 퇴색되는 모습을 보인다. 왕, 루이의 모습도 마찬가지. 자신의 왕의 입지를 강화 하기위해서 어머니에 대한 입지를 무너뜨리고 삼촌을 경멸하며 자신의 왕권 유지에만 급급한다. 자신의 가장, 생명과도 같은 동료 륄리의 추태가 왕의 지위에 누를 끼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륄리에 대한 신뢰를 하루아침에 거두어 버린다. 왕의 권력이란 그런 것이고 왕의 권력아래 있는 사람들이란 왕의 신뢰를 잃는 순간 그의 인생은 암흑이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권력 때문에 사람들을 져버리고 권력 때문에 스스로 무너져 가는….
순수하게 예술을 사랑하던 왕과 자신의 예술을 알아주어 너무 고마워하던 음악가는 이렇게 등을 돌리고 말았다. 자신과 동고동락했던 몰리에르를 배신하면서 까지 왕에 대한 신임을 지키고 싶었던 륄리, 그는 자신의 발등을 찍은(그는 스스로 왕이 자신을 변심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왕을 원망하며 스스로 태양왕을 문양의 지팡이로 자신의 발등을 찍는다. 그리곤 그간의 모든 일들을 회상하며 조용히 죽음을 맞는다. 상당히 교육적이며 세련되고 멋진 영상이 어우러진 왕의 춤. 고전 시대극의 묘미까지 한껏 즐길 수 있는 멋진 영화였다. 더구나 미국이 아닌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의 유럽자본으로 만들어진 프랑스어로 된 전혀 미국적이지 않은 제대로된 프랑스 역사극을 본 느낌은 나에게 뿌듯함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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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춤(2000, Le Roi danse)
배급사 : 브에나비스타 인터내셔널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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