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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불짜리 미소 허브
kharismania 2006-12-28 오후 4:16:05 607   [2]
꽃도 아닌 것이 좋은 향이 난다. 허브는 그렇다. 그 작고 보잘 것 없는 잎파리는 깊고 은은한 향을 퍼뜨린다. 마치 세상의 구석까지 은은하게 울려퍼지듯. 그 작은 잎파리는 연약해보이지만 섬세하고 차분한 힘을 지녔다. 꽃처럼 화려하진 못해도 그 향이 강렬하진 못해도 허브는 가까이에 두고 종종 맡고 싶은 그런 향을 지니고 있다. 나약하지만 자신이 지닌 미세한 힘으로 세상의 일부가 되는 아름다움을 허브는 지니고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그 다양한 사람들은 몇가지 기준에 의해서 어떤 사람들로 나뉘곤 한다.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비인격적 어투의 기준이 때로 대입되기도 하는데 장애우는 아마도 그 기준에서 튕겨져나가는 하나의 비주류일 것이다. 정상에 속하는 이들은 그 비주류에 대한 보호적 관심을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차별에 가까운 무시로 오용되는 경우도 많다.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편협한 오해가 지나친 동정을 부르고 결과적으로 필요이상의 관심으로 발전한다. 그것은 약자에 대한 보호라기 보다는 강자라는 우월성에 대한 증명일 수도 있다. 때론 보호라는 명분으로 그들을 안전한 곳에 밀집시키려 하지만 그것 역시 가둔다라는 의미로 여겨질 때가 있다. 다수라는 권력은 그렇게 장애라는 이유로 소수가 되는 그들을 관심이라는 명목의 횡포로 다스리곤 한다.

 

 영화는 시작부터 동화속 공주님들에게 만연한 행태를 지적한다. 백설공주나 숲속의 잠자는 공주, 인어공주 같은 동화에서 공주들은 행복해보이지만 그녀들이 얻은 행복은 스스로의 노력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 왕자님이 가져다 준 행복이라는 것. 그리고 그 고전적 진실에 찬물을 끼얹는 이는 상은(강혜정 역)이다. 지체장애3급이라는 사회적 소통과는 무관하게 그녀 자신은 스스로 씩씩하고 멋있는 삶을 꿈꾼다. 그리고 그녀의 단순솔직한 꿈의 원천은 바로 그녀의 어머니, 현숙(배종옥 역)이다.

 

 그리고 조카뻘 정도 되어보이는 어린아이들 틈바구니에 앉아있는 다 큰 처자는 그네들의 이모도 고모도 아니다. 오늘은 그녀의 생일이고 그 조카뻘 정도 되어보이는 어린아이들은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러 온 친구들이다. 스무살의 몸이지만 일곱살의 마음을 지닌 상은은 분명 비정상이다. 그런 그녀를 정상인들의 세계안에 설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는 것은 그녀의 어머니 현숙이다.

 

 '말아톤'과 '맨발의 기봉이'는 실화를 소재로 했다는 면에서도 동일한 성향을 보이지만 그것이 장애우들을 다룬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동일한 코드를 지닌다. 다만 두 이야기의 차이점이 발생하는 지점은 돌봄의 행위를 하는 자가 누군가라는 점이다. '말아톤'의 어머니라는 울타리안에서 미숙아와 같은 초원이의 성장과정에 초점을 맞춘다면 '맨발의 기봉이'는 미숙아와 같은 기봉이가 어머니를 돌본다는 효심에 초점을 맞춘다. 전자가 약자에게 줄 수 있는 배려심이라면 후자는 약자간의 상호보완적인 의지이다. 초원이와 기봉이는 똑같이 달리지만 그들이 달리는 의미는 위의 차이점과도 연관된다. 

 

 '허브'는 위의 두가지 성향이 고루 녹아있다. 극중 실제나이는 스무살이지만 일곱살의 정신연령에 머물러 있는 지체장애인 상은(강혜정 역)은 분명 어머니 현숙(배종옥 역)의 품안에서 보살핌을 받는 동시에 성장한다. 전반전이 어머니에 의한 상은의 레이스 준비라면 후반전은 홀로서기를 위한 맨발달리기의 실전과도 같다. 현숙에 의해 급반전되는 상황은 상은의 현실이 더이상 보살핌안에서 안주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녀는 자전거를 타야하고 머리를 묶어야한다. 누군가가 대신 해주던 시절이 지나가고 있다. 그녀가 보호받을 수 있는 시기가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보호의 대상이 아닌 존립의 대상. 약하기 때문에 방치시키는 것이 아닌 적응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 그리고 그 훈육을 맡는 것은 어머니, 즉 모성애다. 상은이 세상에 영역을 구축하는 것은 가정이라는 기반, 그 기반을 지탱하는 어머니 덕분이다. 모성애는 이 영화와 비슷한 연관성을 지닌 두 영화, '말아톤'과 '맨발의 기봉이'에서도 나타나는 코드이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지니는 모성애라는 믿음은 21세기가 지나도 변치 않는 일종의 신앙심과도 같다. 어머니는 세상안에서 상은이 직면할 현실의 비정함을 걸러내는 필터가 되고 그녀가 그 현실안에서 견뎌낼 수 있도록 보좌하는 교관이 되기도 한다.

 

 동화를 부정하는 상은에게 왕자님이 찾아오는 것은 영화가 의도한 딜레마다. 마치 세상이라는 거대한 현실안에서 일곱살에 머문 상은은 네버랜드의 피터팬같기도 하고 작은 체구의 엄지공주같기도 하다. 그녀는 스무살의 신체에 비해 모자란 일곱살의 지능을 지녔지만 일곱살의 순수함도 지니고 있다. 상은이 종종 타인들의 말에 담긴 함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표면적 의미를 해석할 때 그것은 오해의 소지가 되어 관객에게 웃음을 쥐어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그녀의 짧은 생각이 모든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뜻이 된다. 꾸미지 않고 과장되지 않은 본질적인 의미만을 바라보는 상은에게 비유처럼 거짓스러운 세상의 추상적 소통은 이해불가능한 이야기들일 뿐이다. 그녀에게 불현듯 찾아오는 왕자님은 그녀가 세상을 이해하게 되고 한발 내미는 계기로 작용하는 일종의 기회이자 경험이다. 물론 로맨스의 시작은 종범(정경호 역)의 오해덕분이지만 그것이 그 오해의 틀을 깨고 진실이 드러나는 상황은 얄팍하던 감정이 진솔하게 무르익어가는 계기로 작용한다. 물론 이것은 영화의 판타지이고 보편적이지 않은 영화속의 독단적 바람이다. 하지만 그것이 허구라는 이유로 간과되지 않는 것은 영화가 그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지점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성장이라는 코드는 어머니를 통해서도 이뤄지지만 상은의 개별적인 로맨스를 통해서도 이뤄진다.

 

 사실 이 영화를 확대해석하자면 페미니즘의 성향까지도 맞닿는다고 필자는 개인적으로 생각했다. 시작부터 동화속의 공주들의 안위적 삶에 질타를 날리는 태도부터가 그렇다. 상은의 장애는 단순히 장애우라는 하나의 소재의 수용이지만 어찌보면 상은의 존재는 단순히 장애우라는 것 외에도 여성이라는 하나의 조건에도 봉착하게 된다. 사회라는 환경안에서 여성이라는 존재는 마치 장애를 지닌 것과도 같다. 물론 여성 상위시대의 프랜차이즈가 특수를 누리기도 하지만 여성은 분명 포관적인 범위에서 남성에 비해 여전히 불공평한 환경에 지배당해야 한다. 마치 굴절되듯 오해로 시작된 로맨스처럼 그녀에게 현실은 그대로 소통되기에는 버거운 것이다. 오해가 있어야 혹은 착각이 존재해야 이해되고 달가워지는 것이다. 정체를 탄로나면 안되는 신데렐라처럼 자신을 숨기는 것이 가장 효과적으로 세상에 드러나는 법이다. 장애는 그 자체만으로 영화의 뿌리를 지탱하는 중심소재이기도 하지만 은밀한 여성의 사회적인 위치를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이 노골적으로 표현되는 것은 동화를 통해서이기도 하다. 또한 재미있는 것은 상은은 아버지를 추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이 영화보다 먼저 장애를 다룬 '말아톤'과 '맨발의 기봉이'도 마찬가지인데 이는 모성이라는 효과가 지니는 영역의 위력을 보여줌과 동시에 부성이라는 코드가 이야기내에서 유효하지 않음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웃음이 가미되기도 하고 로맨스에서 기인된 가파른 심리적 수직선이 그려지기도 하지만 전반부는 대체적으로 아기자기한 웃음으로 채워진다. 그러나 영화가 의도적으로 노린 페이소스가 넘실거리는 후반부는 눈물의 클리셰로 메워진다. 죽음이라는 상징적 구조물을 통해 건져지는 슬픔의 몰입은 눈물샘을 자극하는데 확실히 효과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확실한 효과를 거두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상은을 연기하는 강혜정과 그녀의 어머니인 혜숙을 연기하는 배종옥의 연기는 그 특별한 모녀의 절절한 사연을 완벽하게 표현해낸다. 다만 감정을 고조시키는 과정에서 필요 이상으로 상황을 지연시키는 몇몇 순간은 아쉽다. 감정의 고조를 필요 이상으로 지연시켜 감정이 필요이상으로 과잉되는 모양새가 중간중간 눈에 띠기 때문이다. 점차적으로 감성의 탑을 쌓아가던 영화가 눈물샘이 넘치는 타이밍을 조심스럽게 기다리지 못하고 애원하는 듯한 모양새는 영화의 매력을 미세하게 반감시킨다.

 

 허브밭에서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배웅하는 상은의 모습은 홀로서기에 대한 의지와도 같아보인다. 물론 현실에서 사는 수많은 상은들은 영화속 상은처럼 해피엔딩의 웃음을 머금고 살아갈 수 있다고 쉽게 단정지을 수는 없다. 다만 살아간다는 방식에는 공감하고 싶다. 살아가는 조건은 달라도 삶의 무게는 공평하니까. 스무살의 세상에 다다르지 못한 일곱살 지각생의 삶이라도 그것이 살아가야 한다는 의지를 꺾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동정심이나 편애보다도 우리가 지녀야 할 바람직한 시선의 눈높이는 그것을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에 있다. 아름답진 않아도 좋은 향이 나는 허브처럼 별볼일 없어보여도 그 겉보기와는 다른 가치가 그들에게도 있다. 단지 그 향을 맡기 위해 다가가야 하는 수고가 필요할 뿐이다. 그것이 초원이가 백만불짜리 다리만큼이나 사랑스러운 상은의 백만불짜리 미소가 보여주는 향긋한 내음이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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