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 인공위성, 빙하 따위의 과장된 스펙터클을 자제한 <007 카지노 로얄>에서
제작진이 말하는 ‘현실감’은 매우 육체적인 느낌을 준다. 영화는 첫 시퀀스에서 제임스
본드가 무식하고 거칠게 타깃을 암살하는 순간을 입자 거친 흑백 클로즈업 화면에
담아 보여준다. 이어 시리즈의 식순대로 감각적인 오프닝 크레딧 시퀀스가 흐르고,
다음에 무려 5분에 달하는 추격 시퀀스가 덜컥 붙는다. 본드는 두터운 몸집으로
종이벽을 뚫는 반면 상대방은 좁고 얇은 테이블 사이를 사뿐히 넘어다닌다. 대조의
의도가 확연한 이 추격신은 정글에서 벌어지는 사자와 초식동물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기발한 무기와 장치의 도움이 없는 <007 카지노 로얄>은 즉각적이고 본능적인
방식으로 과제를 해결하는 집요한 성격의 본드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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