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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짓이라고 말하기엔 결혼은, 미친짓이다
tadzio 2007-01-07 오후 8:45:12 1140   [1]
 결혼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만큼 결혼이라는 식상한 소재에 ‘미친 짓’이라고 간판을 단 이 영화는 결혼=해피엔딩(현실과 전혀 동떨어진)이라고 믿길 강요하는 듯한 TV 드라마들이나 여타의 멜로 영화에 테러를 가하는 시나리오로 관객을 맞이한다. 

 

대학 시간강사 준영(감우성 분)은 조명 디자이너 연희(엄정화 분)와 따분한 첫 만남을 가진다. 말 그대로 38번 맞선 본 사람처럼 굴던 연희와 그 장단에 적당한 미소로 따라가던 준영도, 솔잎주를 앞에 두고는 점차 솔직해 진다. “교통비 보다 여관비가 더 싸다”는 그럴 듯한 말에 술도 마셔주었으니, 원나잇 스탠드에 이만큼 좋은 변명이 어디 있겠는가. 그 이후로도 연애 같은 밀고 당기기와 엔조이 같은 섹스를 계속하며 관계를 유지하지만, 그들이 가는 길에 나타난 ‘결혼’의 문제. 본격적인 이야기에 돌입한다.

 

잠시 이 인물들을 보자면. 준영은 철저한 연애지상주의자로, 연희의 결혼 후보 리스트에서 “가난한 남자들은 다 빼”라고 선뜻 말할 만큼. “결혼해서 거짓말 하고 살 자신 없어”라고 말하는 그는 현실을 잘 알고 있는 남자다. 연희는 흔히 볼 수 있는 커리어 우먼으로, 맞선에서 바로 직업, 가족 환경, 학력을 물어볼 만큼 ‘조건 킬러’인, 영리한 여자다. 하지만 의사와 준영 중 누구와 결혼할지, 즉 사랑과 조건 중 무엇을 택하느냐인 고전적인 질문 앞에 고민하는데. 연희는 결혼 후에도 준영과 만남을 지속한다. 적당한 내숭에 귀여움까지 갖춘 그녀의 대사는 앙큼하고, 도발적이다. “자신 있어. 들키지 않을 자신.” 라고 말한다니까. 준영 역시 연희를 잊지 못해 그녀의 일상을 그려보기도 하고, 연희에게 휘둘리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그도 연희와의 만남을 계속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준영의 옥탑방에서 신혼살림을 차리고, 신혼여행을 가고, ‘새댁’이란 소리에 웃는 그들은 “주말부부”라는 거짓된 이름으로 여느 연인과도 다를 바 없는 코스를 답습하며 행복해한다. 그렇다고 연희는 의사 사모님으로서의 의무를 잊는 건 아니다. 준영과 스윗한 키스를 즐기던 연희는, 남편으로부터의 전화에 무료한 일상으로 도배된 고급 빌라에서 된장찌개를 끓여주는 연희로 착실히 돌아간다.

 

평범한 연인의 행복한 모습을 그리면서도, 결혼생활의 현실과 거짓됨을 이야기의 전개와 대사에서 끊임없이 보여주려고 하는 연출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울타리이며, 아슬아슬한 줄타기이다. 모든 연인이 예쁜 연애를 하고, 타협이라는 결혼에 필요한 절차를 차근차근 밟아가는 길에 급브레이크를 밟게 하는 현실. 결혼이라는 폭탄을 조심스럽게 비켜가듯이 색다른 관계의 그들이지만, 그 아슬아슬한 생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거기에 처음 그들을 만나게 해준 친구 규진의 ‘외도의 결혼생활’이 샘플처럼, 준영과 연희 앞에 다가온다. 너무 변두리로 그려져서 스토리에 뭔가 큰 파장을 남기지도,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하지도 못하지만, 준영과 연희의 균열에 힘을 보탠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도 설마 콩나물 비빔밥이라는 소소한 일 때문에 파국을 맞이하게 될 줄이야. 연희가 떠난 후 준영은 연희가 만든 앨범을 처음으로 본다. 사진 속의 애틋하고 행복한 자신과 연희를 보며, 그녀를 그리워한다. 엔딩은 연희가 다시 준영의 옥탑방으로 들어가면서 끝이 나는데, 사실 어떻게 된 건지 알 길이 없다. 몇 년이 지난 후인지, 그들이 관계를 다시 시작한다는 것인지.

 

파격적이었던 제목이나 설정만큼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의 ‘진정 결혼이 미친 짓이냐’에 대해 조명은 강렬하지 않다. 헤어지는 그들의 모습에 아픔이 없을 수 없는 건 아니지만, 결혼에 대한 것보다 이별을 힘들어하고 관계를 되짚어보는 개인의 사정에 몰입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저 이런 연인도 있더라, 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으로 바라보는 영화는 세태를 아주 맵게 꼬집지도, 끝까지 쫓아가지도 않는다. 그저 ‘현 세태의 반영’에 그친 것 같아서 아쉬웠다.

 

물론 젊은 연인이 결혼을 시작하는 단계를 그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조금 협소한 자리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 듯 했다. 결혼이 진정 미친 짓이 되는 건 생활이 얼마간 지속된 이후인 경우가 많고, 준영과 연희의 관계처럼 결혼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보다 결혼으로 이루어진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일어나는 미친 짓은 더 많다. 무궁무진하고 복잡한 결혼의 ‘미친 면’에 대해 다양하게, 집요하게 다루지 않은 점도 안타까웠다.

 

꽤나 아쉬운 부분을 꼽게 했던, 제 24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시인 유하가 메가폰을 잡은 영화. 엄정화의 노출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던데, 내가 보기엔 그저 섹스 신이 너무 빈번한 것 같았다. 준영의 문어체적 독백이 조금 거슬리기도 했고. 눈요기라면 준영과 연희의 스윗한 사진들. 그건 참 예뻤다.

 

개인적으로 리얼한 대사와 현대의 결혼 생활의 모순을 보여준 점이 좋았다. 결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결혼을 앞둔 연인에게 결혼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라고 소개하진 말길. 영화는 절대로 ‘결혼이 미친 짓이냐’에 대한 통쾌한 답을 들려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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